임영록과 임종룡, '임의 전쟁'은 계속된다  
▲ 지난해 7월 열린 금융지주사 CEO 간담회에서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왼쪽)과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오른쪽)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뉴시스>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임종룡 NH농협금융 회장의 제1막은 임종룡 회장의 승리로 끝났다. 두 회장은 우리투자증권 인수를 놓고 불꽃 튀게 맞붙었다. 지난해 12월 임종룡 회장이 우리투자증권을 품에 안았다.

출발부터 자세는 달랐다. 임영록 회장은 신중하게 접근을 한 반면 임종룡 회장은 “인수에 실패하는 경우는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임종룡 회장은 우리투자증권 인수를 통해 은행과 증권, 보험업이라는 삼각편대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에 남다른 각오를 보였다. 하지만 임영록 회장은 합리적 가격이 아니면 포기할 수 있다는 발언을 자주 하면서 KDB대우증권도 함께 넘보는 모양새를 취했다.

임영록(59) 회장과 임종룡(55) 회장은 절친한 선후배 사이다. 하지만 밖에서 어쩔 수 없는 라이벌로 본다. 그래서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을 놓고도 ‘임의 전쟁’이라 부르며 예의주시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임종룡 회장의 승리였다. 임종룡 회장은 우리투자증권 인수로 금융 ‘4대천왕’의 반열에 올라 임영록 회장과 비로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자산규모로 우리 신한 KB 하나를 4대천왕으로 꼽았다. 이제는 NH농협이 우리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임종룡 회장은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 인수 후 “임영록 회장은 존경하는 선배이며 훌륭한 경영인”이라며 “각자 조직을 위해 노력한 것일 뿐이지 양자 대결 구도로 봐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인수 직후 임영록 회장도 직접 임종룡 회장에게 축하한다는 전화를 건넸다고 전해진다.

두 임 회장은 닮은 점이 많다. 둘은 행정고시(임영록 20회, 임종룡 24회)를 거쳐 재정경제부에서 나란히 일한 선후배 사이다. 취임 시기도 임종룡 회장이 지난해 6월, 임영록 회장이 지난해 7월로 거의 비슷하다.

두 회장은 모피아(기획재정부 출신 관료)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모피아 출신들이 금융 CEO로 계속 배제되고 있는데 두 회장은 금융 4대천왕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모피아 출신들이 ‘낙하산 관료인사 관치금융’이라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큼 두 회장은 마지막 모피아 출신이 될지도 모른다.

두 회장이 나란히 금융지주 회장의 자리에 오를 때 모피아 출신이기 때문에 외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눈길을 똑같이 받았다.

임종룡 회장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 기획재정부 1차관, 국무총리실 실장을 지냈다. NH농협금융 측에서 “임종룡 회장은 금융과 경제 분야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췄고 재경부 등에서 은행 증권 금융정책 등 핵심분야를 모두 거쳐 농협금융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 가장 부합한다”고 평가했음에도 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임영록 회장도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 금융정책국장, 재정경제부 제2차관을 거쳐 2010년 3월부터 KB금융에 몸을 담았다 회장에 올랐지만 당시 ‘KB맨이 아니다’는 곱지 않은 눈길을 받았다. “모피아가 잠시 민간에 몸을 담았다고 해서 신분세탁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말도 내부에서 나올 정도였다.

두 회장은 지난해 몸풀기를 마쳤다. 그리고 올해를 맞이했다. 임영록 회장은 ‘향상일로(向上一路)’라는 화두를 던졌다. 지향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매진하자는 뜻이다. 임종룡 회장은 ‘일명경인(一鳴驚人)’을 내놓았다. 한 번 일을 시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일을 해내자는 의미다.

그런데 두 회장이 던진 말이 절묘하게 두 회장이 처해있는 처지에서 가고자 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 신중하고 꼼꼼한 ‘KB 임 회장’의 내우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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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우리투자증권 인수전 고배로 지난해를 끝낸 임영록 회장은 올해 잇단 악재로 악전고투하고 있다. 국내의 카드사태, KTENS 대출사기뿐 아니라 ‘해외발 악재’도 잇따라 맞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민은행의 일본 도쿄지점의 비자금 의혹을 시작으로 올해 2월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딧은행 투자로 9천억 원 대출손실까지 밝혀졌다.

이런 난국을 헤쳐나가는 데 임영록 회장의 고민은 어찌 보면 ‘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임영록 회장이 회장에 올랐을 때 KB금융 내부의 반응은 ‘KB맨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는데 이런 현실이 임영록 회장으로 하여금 내 사람을 더욱 찾게 한듯 싶다.

임영록 회장은 취임 직후 친정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임원 수를 30% 줄이고 부행장 가운데 7명을 퇴진시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올해도 지난달 21일 신임 사외이사 3명을 모두 친분있는 교수 출신으로 채웠다. 이른바 임영록 라인을 통해 향후 경영에 대한 탄력을 얻기 위한 조처였다.

하지만 내부에서 여전히 발목이 잡히고 있다. 새로운 노조가 만들어지고 이런 인사에 격렬하게 맞서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저항에 ‘KB맨이 아니다’라는 KB금융 조직원들의 마음도 뿌리박혀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임영록 회장은 호탕한 어윤대 전 회장과 달리 조용하고 말없는 성격이다. 관료 출신답게 매사에 꼼꼼하고 신중하다. 그래서인지 임영록 회장은 지난해 취임식에서도 기본에 충실(Back to basic)하자는 전략을 내세웠다. 3천만 명에 이르는 고객과 1200개가 넘는 영업 네트워크를 활용해 시장지배력을 높이자고 포부를 밝혔다.

임영록 회장은 “야구든 축구든 빗장수비가 강팀의 전제조건”이라며 “단기적으로 수익을 많이 내더라도 리스크 관리 없이는 성공하지 못 한다”고 강조한다. 철저한 리스크 관리를 통해 잠재적 위험자산의 부실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전략은 한편으로 공격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임영록 회장의 성격 탓도 있지만 ‘어윤대 전 회장의 트라우마’에 눌려 스스로 활개를 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듣는다. 어윤대 전 회장은 ING생명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사회와 마찰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회장직에서 물러났는데, 이 과정을 지켜봐 지나치게 수세적으로 경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임영록 회장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신중하게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투자증권 인수도 마찬가지다. 임영록 회장은 인수전 와중에서도 “대우증권은 업계 1위의 시장 지배력이 있다”며 “사업다각화 전략에 맞는지 검토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투자증권은 여러 후보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게 임영록 회장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에 임영록 회장이 올해 초 지향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매진하자는 뜻의 사자성어롤 내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하면 수익성과 비은행 부문 강화를 향해 한 길을 걸어가는 임영록 회장에게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이라는 1막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더 큰 전쟁을 준비하고 있고, 그 전쟁의 승패가 KB금융 안에서 모든 조직원들에게 ‘KB맨’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 현장 중시하는 ‘NH 임 회장’의 파죽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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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임종룡 회장은 요즘 현장을 방문하며 방방곡곡을 돌고 있다. 현장 경영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임종룡은 20일 서울영업본부의 영업점장 180여명이 모인 가운데 ‘2014년 농협 금융의 비전과 추진전략’을 설명했다. 임종룡 회장은 “정보 유출로 인해 훼손된 고객신뢰를 회복하는 게 농협금융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임종룡 회장은 이 자리에서 사업다각화와 수익기반 확충, 리스크 관리, 선도금융회사로서 경쟁체질 확립 등을 주문했다.

사업다각화나 리스크 관리는 모든 금융 회장들이 짊어진 짐이다. 하지만 임종룡 회장의 말에서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선도금융회사’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범농협 시너지를 더 내고 우리투자증권의 인수로 4대천왕에 올라선 만큼 그에 걸맞는 체질을 만들자는 요구이다.

임종룡 회장은 취임 이후 수익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지난해 8월 지점을 방문하면서 2012년 64개였던 적자점포를 20개 이내로 줄이겠다고 말했다. 임종룡 회장은 “적자점포를 흑자로 만드는 게 첫째 목표이고 여의치 않을 경우 통합하거나 폐지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경영을 통해 수익성 강조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9월 농협은행을 퇴직한 비정규직 직원을 다시 발탁한 일이다. 취임 직후 경기영업본부를 찾아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다 실적이 우수한 비정규직 직원 두 명이 퇴직해 아쉽다는 얘기를 듣자 곧바로 비정규직의 업무성과를 조사하도록 지시했고 두 사람이 정규직으로 재입사하게 했다.

임종룡 회장은 평소 온화한 성격이지만 일할 때는 ‘워커홀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뚝심으로 강하게 밀어 붙이기 때문이다. 임종룡 회장이 청와대 비서관 시절 대통령 주재회의 도중 중간에 나오지 못해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사례는 널리 알려져 있다. 기획재정부 재직 당시 비공개 투표로 진행되는 ‘닮고 싶은 상사’에 세 번이나 선정될 정도로 직원들에게 신망을 얻기도 했다.

임종룡 회장은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에 전력을 쏟았다. 농협금융의 체질을 바꾸는 데 우리투자증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다. 지난해 8월 농협중앙회 이사회에서 조합장들에게 직접 인수의 필요성을 설명하게 해 조합장들로부터 지지를 얻어내기도 했다.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능력을 과시한 것이다. 이는 인사에도 적용된다. 지난해 12월 상무급 임원 15명 중 11명을 교체하는 등 대폭 인사를 단행했는데 지역적 안배와 전문성에 치중해 큰 혼란없이 인사를 마쳤다.

그렇지만 조직문화를 바꾸는 일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아 보인다. 농협금융의 조직문화는 10여년 이상 쌓여 녹아 든 결과물이다. 때문에 임종룡 회장의 여러 시도가 잘 먹혀들지 않고 오히려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했다 해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깝게는 이번에 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태도 겪었지만 각종 시스템 보안에 가장 취약한 게 농협금융이라는 말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

임종룡 회장이 ‘한 번 일을 시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일을 해내자’고 한 말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일 수 있지만 농협금융 전체를 향해 체질을 바꿔보자는 강력한 요구이기도 하다. 그 길은 이제 막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