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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사진=뉴시스> |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달라졌다. 연일 새누리당 초선의원들을 만나 ‘식사정치’를 하고 있다. ‘은둔의 왕실장’이란 평가를 받아온 김 실장이 왜 갑자기 스킨십을 확대하고 나선 것일까?
◆ 연일 계속되는 김기춘의 식사정치
김기춘 비서실장이 지난 17일 새누리당 초선의원들과 만났다. 김 실장은 청와대 인근의 한 음식점에서 약 한 시간 동안 오찬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 국회 국방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초선의원 10여 명이 참석했다.
김 실장은 이날 회동에서 규제개혁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동에 참석했던 한 의원은 “의원들이 정부에 쓴 소리도 하고 규제개혁에 의견을 냈다”면서 “몇몇 의원들은 야당 의원들과 소통 확대를 주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김 실장이 민생안정이 시급한데 법적 뒷받침이 잘 안돼 좀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실장의 식사정치는 이달 들어서만 벌써 네 번째다. 지난 7일 기획재정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를 시작으로 11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와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점심을 했다. 다음날인 12일 안전행정위원회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초선의원들 9명과 만났다.
김 실장은 이런 회동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비서실장이 의원들과 밥도 못 먹냐”며 “의원들과 소통하고 친교하고 의견을 들으려는 것일 뿐 다른 뜻은 없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실장이 그동안 의원들을 자주 못 만났는데 요즘 시간이 맞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지난해 8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취임 이후 네 차례 정도 여당의원들과 회동을 했다. 당시 여당 지도부나 중진의원들과 주로 자리를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은 지난해 9월 여당 의원들 중 검사나 해군 또는 해병대 경력이 있는 의원들과 만찬을 했다. 경력이 비슷한 의원들을 만난 것이다. 10월 초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과 회동했다. 그 뒤 열흘쯤 지나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등을 비롯한 당 지도부와 만났다.
하지만 김 실장이 여당 지도부들을 비서실장 공관으로 불러 만찬을 한 것 대해 권위주의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행정부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직접 부르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는 뒷말이 있었다. 김 실장은 그 뒤 의원들과 만남을 자제했다.
◆ 시급한 법안 처리...‘왕실장’이 직접 나섰나
김 실장과 초선의원들의 회동은 단순한 만남이라는 해명이 나왔지만 정치권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우선 법안 입법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분석이 있다. 주요 입법에 속도를 내기 위해 의원들을 찾아 부탁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박근혜 정부의 주요 법안들은 현재 처리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기초연금법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장애인연금법 등 ‘복지 3법’이 처리되지 못했다.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안도 국회통과에 난항을 겪고 있다.
안보와 외교관련 법안도 답보상태다. 청와대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4월 말 방한하기 전 ‘방위비분담특별협정 동의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지난 2월 7일 제출된 후 아직 처리되지 않고 있다. 해당 동의안은 우리 정부가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일부를 분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자력 방호방재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 개정안은 핵 범죄자 처벌과 핵 범죄행위 범위의 확대 등을 담은 것인데 유엔협약에 호응하기 위해 발의됐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이달 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법안을 마련해 체면을 세우려고 한다.
이런 법안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면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난관에 봉착한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실세라는 평가를 받는 김 실장이 직접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정책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국회의 입법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김 실장이 직접 나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실장이 주로 초선의원들을 만나는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새누리당 소속 초선의원은 전체 156명의 소속 의원 가운데 80명이나 된다. 초선의원들의 마음을 잡아야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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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춘 비서실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도운 ‘정치적 멘토’이자 ‘좌장’이다. 사진은 왼쪽부터 박흥렬 경호실장, 정홍원 국무총리, 박 대통령, 김 비서실장 <사진=뉴시스> |
◆ 박 대통령과 당의 가교역할, 정무 기능 대신하는 김기춘
김 실장이 박 대통령을 대신해 여당 의원들과 소통에 나섰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박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부족한 소통능력을 지적받았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당 대표와 원내 대표가 바뀌는 등 권력지형이 바뀌는 시기를 맞고 있다. 6월 지방선거와 7월 전당대회 등 숨가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역할을 하지 못하면 여당과 관계에서 ‘레임덕’을 조기에 맞을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당과 소통에 실패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청와대의 정무기능이 사실상 돌아가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박준우 전 벨기에 유럽연합대사관 대사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발탁됐지만 외교관 출신인 탓에 여당 및 정치권과 제대로 손발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에게 정무장관직 부활을 거듭 요구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따라서 김 실장이 정무기능을 수행하면서 박 대통령과 당의 다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실장은 당의 원로이기도 하다. 김 실장이 특히 재선이나 중진 의원들에 비해 다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은 초선의원들을 집중적으로 만나는 것도 이런 역할과 연결해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실장의 거취를 놓고 한때 사퇴설이 나오기도 한 만큼 이를 잠재우겠다는 의도도 다분히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은 지난 11일 만남에서 “요즘 나에 대한 소문들이 나도는데 대체 출처가 어디냐”고 물었다. 참석한 의원들이 “청와대발이 아니냐”고 말하자 김 실장은 “난 여의도발로 들었다”고 응수했다고 한다. 김 실장은 이런 응수를 통해 사퇴설을 일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1월 언론에 김 실장의 사퇴설이 보도됐다. 만 74세로 연로한데다 아들이 당한 불의의 사고로 마음의 고통이 심해 박 대통령에게 사퇴의 뜻을 밝혔다는 내용이었다. 정호성 대통령실 제1부속비서관과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으로 대표되는 ‘문고리 권력 3인방’과 불화설도 사퇴설의 배경으로 나왔다.
당시 청와대는 신속하게 사퇴설을 부정했다. 청와대는 “김 실장이 불의의 사고에도 여전히 빈틈없는 업무를 하고 있으며 갈등설도 억측”이라고 해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사퇴설 직후에도 김 실장의 업무 장악력은 여전히 강하다고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