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에는 너무 거센 압력이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지난 11월 15일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임기는 아직 1년 4개월이 남아 있었다. 그는 “외풍, 외압은 없었다”고 말했지만, 포스코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 조사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KT 이석채 사장의 사임 직후에 내린 결정이었다.

  정준양은 박태준이 너무도 그립다  
▲ 13일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박태준 명예회장 2주기 추모식에서 추도사를 읽은 정준양 포스코 회장.
그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을 때에 포스코의 CEO 자리에 오른 인물로, 박태준 명예회장 생전에 선임된 마지막 CEO였다. 지금까지 포스코는 김만제 전(前) 회장을 제외하면 모두 내부 인사가 회장직에 올랐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치권에 가까운 인물이 최고경영자로 선임되기는 했으나, 업계에서 비슷한 위치에 있는 KT보다는 상대적으로 외풍을 덜 받는 모습이었다. 정계에 진출했던 박 명예회장이 방파제 역할을 해 주었던 셈이다.
 
그런 박 명예회장이 지난 2011년 별세했다. 정준양 회장은 최초로 박태준 명예회장이 없는 포스코라는 상황에 노출되었다. 새 정권의 외압 속에서 그를 보호해 줄 사람은 없었다. 비록 정 회장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지만, 그래도 KT의 사례에 비추어 보면 곱게 낙마한 것일지도 모른다. 13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박태준 명예회장 2주기 추모식에서 정준양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시간을 앞당겨 후임자를 선정하기로 결심하였다”며 그가 없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 포스코의 방패였던 박태준이 사라진 포스코의 미래는?

박 명예회장은 생전 포스코에 정치적 외압이 들어오는 상황을 막고자 했다.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는 포스코의 독립성을 약속하는 소위 ‘종이 마패’를 받아냈으며, 김영삼 대통령 시기에 자리를 비웠다가 김대중 정권과 함께 돌아온 뒤로부터는 명예회장으로서 포스코의 CEO 선정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

비록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포스코의 회장이 교체되었을지언정 외부 인사가 CEO로 영입된 적은 단 한 번밖에 없었으며, 외부인이던 김만제 전 회장의 임명은 박 명예회장이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불화로 해외를 떠돌고 있었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2000년 완전 민영화 이후 포스코에는 외부 인사 CEO가 등장하지 않았다.

반면 KT에는 박 명예회장과 같은 역할을 할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포스코도 KT도 회장 사퇴를 앞두고 압수수색과 세무조사 등의 수난을 여러 번 겪었지만, 포스코에서는 아직 전 회장이 구속까지 간 사례는 없었다. 
 
◆ 포스코는 내부인사의 후임 CEO 선출을 원하지만 과연?

방패를 잃은 포스코에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미지수이다. 이제부터 외부 인물이 CEO로 선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포스코의 차기 CEO는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선임되지만, 벌써 후임 CEO 후보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문제는 박태준 명예회장 없이 선임되는 첫 포스코 최고 경영자가 낙하산 논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이다.

내부 인사로는 지난 CEO 선임 당시 정준양 회장과 경합을 벌였던 윤석만 전 포스코건설 사장, 사내 등기이사인 김준식, 박기홍 사장, 이동희 대우인터내셔널 부회장, 정동화 포스코건설 대표이사 등이 물망에 올랐다. 외부 인사로는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진념 전 부총리, 김원길 국민희망포럼 상임고문 등이 거론되고 있다.

포스코 내부에서는 내부 인사가 CEO로 선임되기를 바라는 분위기이다. 포스코의 창립 멤버인 여상환 지성300인회 공동회장은 “포스코는 철강분야 전문인이 책임자를 맡아야 한다”며 내부 출신 전문경영인 선임을 선호하는 뜻을 밝혔다. 

포스코의 개혁을 위해서는 외부 인사를 CEO로 선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포스코의 경직된 구조를 혁신하기 위해, 모험일 수 있지만, 시장이 요구하는 전문성, 도덕성, 글로벌 감각 등의 능력을 갖춘 외부 인사를 선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