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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성, 이재용체제에서도 2인자로 남나

이규연 기자 nuevacarta@businesspost.co.kr 2014-03-16 19:5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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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지성, 이재용체제에서도 2인자로 남나  
▲ 삼성전자 CEO 시절인 2012년 2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삼성전자 전시관을 방문한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뉴시스>

2012년 6월7일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에 임명됐다. 전임 김순택 실장의 건강상 사의표명이 직접적 이유였다. 연말 정기인사 외에 인사를 잘 하지 않는 삼성에서 이례적 인사였다. 그것도 그룹의 2인자를 교체하는 인사였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직접 최 부회장을 미래전략실장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최 부회장이 미래전략실장에 오른 날은 19년 전 이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한 바로 그날이었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7일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며 신경영을 선언했다.

“글로벌 경영감각을 갖춘 실전형 CEO인 최 부회장을 앞세워 혁신적 변화를 모색할 계획이다." 삼성그룹은 최 부회장의 미래전략실장 임명과 관련해 이렇게 공식발표했다. 이 회장이 그리스의 국가부도 위기, 스페인의 금융위기 등 유럽위기를 직접 살피고 온 뒤 더욱 강력한 혁신을 위해 최 실장을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삼성 안팎의 시선은 이런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전자 사장으로 있던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깊이 관련된 인사라고 해석했다. 당시 이 회장은 형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유산상속을 놓고 소송을 벌이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에게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발판 다지기는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였고, 이맹희 전 회장과 유산소송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의 정통성을 다투는 것이어서 반드시 이겨야 할 숙제였다.

최 부회장은 미래전략실장이 된  그해 말 정기인사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마침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또 지난 2월 이맹희 전 회장이 제기한 유산소송도 끝났다. 이건희 회장의 승리였다. 삼성의 정통성이 이 회장에 있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사상최대의 실적을 거뒀다. 연결기준으로 매출 228조6927억원, 영업이익 36조7850억원, 당기순이익 30조4748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보다 각각 13.7%, 22.6%, 27.8%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이 회장이 최 부회장을 선택한 것은 지금까지 결과만 놓고 보면 옳았다. 모든 결과가 성공이다. 삼성전자의 ‘포스트 스마트폰’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지만 이 과제를 해결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삼성은 전환기다.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주도자가 바뀌는 시기에 있다. 최 부회장은 자연스럽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이재용 시대를 언제, 그리고 얼마나 명분있게 여느냐 하는 무거운 과제가 그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전환기의 2인자 앞에 대개 두 가지 길이 놓여 있다. 첫 번째 길은 후계자의 시대를 열어주는 것으로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법이다. 그 역할을 다하면 물러나게 된다. 두 번째 길은 후계자와 함께 후계자의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다. 이는 현재 권력뿐 아니라 미래 권력의 절대적 신임을 받을 때 가능하다. 최 부회장은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최지성, 이재용체제에서도 2인자로 남나  
▲ 최지성 부회장이 지난해 12월27일 오후 일본 방문을 마치고 김포공항으로 귀국한 이건희 회장을 안내하고 있다. <뉴시스>

최 부회장에게 이재용 시대를 여는 소임이 부여됐다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 부회장은 한결같이 '이건희 회장의 사람'이다. 이건희 회장의 신뢰를 전폭적으로 받고 있다. 그는 미래전략실장을 맡은 뒤 이 회장의 중요한 일정에 빠지지 않고 동행한다.

2012년 9월 이 회장이 중화권 최대의 부자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과 면담할 때도 동석했고, 그해 10월 이 회장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베트남 부총리를 만날 때도 최 부회장은 옆자리를 지켰다. 지난해 12월 일본 방문을 마치고 김포공항으로 귀국한 이 회장을 영접한 이도, 지난 1월 해외로 다시 출국한 이 회장을 배웅한 이도 최 부회장이다.

2008년 삼성 비자금 특별검사 수사 이후 이 회장이 경영에서 일선후퇴를 했을 때 가장 먼저 이 회장 경영복귀의 군불을 땐 사람이 바로 최 부회장이었다. 당시 삼성전자 사장이었던 그는 이 회장이 물러난 그해 말 “경영을 정상화해 해야 한다. 오너경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며 이 회장의 경영복귀를 강하게 주장했다. 미래전략실장이 된 뒤에도 “미래전략실은 이건희 회장의 그림자”라며 “군림하는 곳이 아니라 지원하는 곳이 돼야 한다”고 역설한 것도 최 부회장이다.


이 회장이 최 부회장을 미래전략실장으로 선택할 때 ‘실전 CEO’라는 최 부회장의 역량뿐 아니라 ‘충성심’도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래서 이재용 시대를 여는 소임을 최 부회장에게 맡겼을 것이다.

최 부회장의 능력은 이미 검증됐다. 그는 삼성에서 최고의 영업통이자 삼성전자의 오늘을 닦은 CEO로 평가받는다.

최 부회장은 1951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났다.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서울고로 전학해 1971년 서울대 무역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다닐 때 민주화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7년 삼성에 입사했다. 입사원서 1지망부터 3지망까지 모두 삼성물산만 쓴 일화로 유명하다. 당시는 무역의 시대였고 그룹에서 삼성물산이 잘 나갔던 시대였다. 그는 삼성물산에 배치된 뒤 이쑤시개부터 옷까지 닥치는대로 팔았다.

엔지니어들이 우대받는 삼성전자에서 그가 CEO를 맡을 수 있었던 힘은 1985년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1인 소장’으로 일하며 반도체를 팔던 때 길러졌다. 반도체를 팔기 위해 1000쪽이 넘는 반도체 기술교재를 원문으로 암기했다고 한다. 부임 첫해 100만 달러가 넘는 반도체를 팔아 ‘디지털 보부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프랑크푸르트는 나중에 이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했던 지역이 됐다.

삼성전자에서 최 부회장이 만들어낸 성과는 열거하기 힘들다. 즐겨 마시던 보르도 와인에서 따온 '보르도 TV'를 앞세워 소니를 누르고 삼성전자를 글로벌 TV 1위로 올려놓았다. 과감한 투자를 통해 만년 3위였던 휴대폰을 2011년 세계 1위로 끌어올렸다. 베트남에 세워진 연간 1억2000만대 휴대폰 생산기지도 최 부회장의 결정에서 시작됐다.

  최지성, 이재용체제에서도 2인자로 남나  
▲ 2011년 1월 개최된 CES 2011 현장에 당시 삼성전자 임원이었던 이재용 삼성 부회장(왼쪽)과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오른쪽)이 기자들과 만나고 있다. <뉴시스>

이건희 회장은 최 부회장의 ‘충성심’과 실전을 통해 검증된 능력이 이재용 시대를 열어주는 역할을 맡는데 ‘안성맞춤’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 부회장은 e삼성 실패 등으로 경영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따라다니는 게 약점이다. 이 회장에게 절대적 신임을 받고 이 부회장에게 부족한 경영능력을 보완할 수 있는 최지성 카드는 이재용 시대를 열어주는 데 최적인 셈이다.

이재용 시대를 열어달라는 이 회장의 주문을 최 부회장은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최근 삼성 안팎의 관심은 이재용 시대에도 최 부회장이 변함없이 삼성의 2인자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곳으로 모아진다.

최 부회장은 이 부회장과 친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입사 초창기에 삼성 비서실 기획팀 과장으로 4년 동안 일하면서 이 부회장과 알게 됐다고 한다. 또 이 부회장이 e삼성사업에 실패하고 2003년 삼성전자로 돌아와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는 동안 최지성 부회장도 삼성전자에서 일하면서 돈독한 관계를 쌓았다. 그래서 최 부회장은 이 부회장의 ‘가정교사’로 불린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최 부회장은 이 부회장과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잘 되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최 부회장이 이재용 시대에도 변함없이 2인자의 자리를 지키며 이재용 시대를 함께 열어갈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은 상당히 존재한다.

올해 들어 이 부회장은 최 부회장과 함께 주요 계열사 업무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계열사 업무 조정은 최 부회장의 몫이었다. 이 부회장이 최 부회장과 함께 업무보고를 받는다는 것은 삼성그룹에 대한 이 부회장의 장악력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또 이 부회장에 대한 최 부회장의 보좌역할이 더욱 확대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이재용 시대를 열어가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삼성의 실적을 올려 이재용 시대를 여는 명분과 정통성을 쌓는 것이다. 이재용 시대 개막 이후에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해줄 사람은 기획과 영업통으로 실전능력을 갖춘 최 부회장이 최적이다.

최 부회장이 미래전략실장이 된 뒤로 보여주는 모습이 더욱 이런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최 부회장은 미래전략실장이 된 뒤에도 끊임없이 현장경영을 강조한다. 그는 2012년 10월 삼성사옥에 있는 딜라이트숍을 방문해 “그냥 한번 들러보러 왔다”며 제품 등을 시연했다. 지난해 9월 울산의 삼성그룹 석유화학 계열사 사업장을 방문해 점검했다. 최 부회장은 이 회장이 국내 없을 때 지방 사업장을 자주 돌며 현장점검을 한다. 이런 최 부회장의 모습은 이 부회장의 ‘보완’ 역할로 삼성그룹 내에서 그 누구도 대신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최 부회장은 겸손하다. 그는 미래전략실장으로 첫 출근하는 날 승용차를 본관 앞에 대지 않았다. 임원 주차장에 대고 30~40미터를 걸어 본관으로 들어왔다. 또 사원증을 직접 꺼내 찍고 게이트를 통과했다. 이런 최 부회장의 모습은 이재용 시대가 전개될 때 불필요한 의심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삼성 경영자 출신의 한 인사는 "최 부회장은 이 회장으로부터 이재용 시대를 열고 그 이후에도 삼성을 변함없이 반석에 앉히라는 소임을 받았고 이를 잘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최 부회장이 그런 소임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은 갖췄지만 이재용 시대가 열린 뒤에도 최 부회장을 쓰는 것은 결국 이 부회장의 몫"이라고 말했다. 최 부회장도 역시 쓰임을 당하는 2인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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