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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 휘트먼 휴렛팩커드(HP) CEO <휴렛팩커드> |
멕 휘트먼 휴렛팩커드(HP) CEO는 글로벌 IT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최고경영자다.
휘트먼은 2004년 경제주간지 포천이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가’ 1위에 오른 뒤 쭉 순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지난 13일 한국을 방문해 이틀 동안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 황창규 KT 회장 등과 연달아 만났다.
그는 요즘 HP를 HPInc와 HP엔터프라이즈로 분사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휘트먼은 분사를 발표하면서 “HP는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며 “HP가 쇄신을 위해 힘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휘트먼은 HP를 위기에서 구해내고 IT업계 최고의 여성 스타 CEO라는 이름을 지킬 수 있을까?
◆ 휘트먼이 HP에서 선보인 ‘여성 리더십’
휘트먼은 HP에 들어오자마자 ‘철의 여인’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그는 2011년 취임한 뒤 지금까지 약 5만 명 수준의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HP 분사를 결정하면서 5천여 명을 더 구조조정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휘트먼은 지난 7월부터 HP 이사회 의장까지 겸직하고 있다. HP는 주주가치 보호를 이유로 경영진과 이사회를 계속 분리했는데 휘트먼은 이례적으로 CEO와 이사회 의장을 모두 맡으면서 강력한 리더십을 손에 넣었다.
게리 라이너 HP 이사회 지명위원장은 “휘트먼은 HP에 온 이후 뛰어난 리더로 활약했다”며 “이사회는 그가 가장 효과적으로 기업혁신을 추구하고 주주들에게 지속적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휘트먼은 기업 내 의사소통 구조를 효율적으로 바꾸는 데 공을 들여왔다. 그는 2012년 5개 분야가 별개로 운영되던 HP 기업구조를 프린팅퍼스널시스템즈(PPS) 및 엔터프라이즈 부문으로 정리했다. 이에 따라 각 부문의 수장과 직접 업무를 놓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었다.
그는 협력사와 관계도 강화했다. HP는 2012년부터 간결화, 수익성, 연대강화라는 세 가지 주제를 앞세워 협력사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업무 의사소통에 들어가는 프로세스를 간소화해 사업의 효율을 높이겠다는 뜻이다.
디온 와이슬러 HP PPS부문 책임자는 당시 “기업구조를 최적화된 상태로 정립해 협력사의 수익성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휘트먼은 이전 CEO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고 평가했다.
휘트먼은 다른 임원들과 비교적 격의 없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라몬 바에즈 HP 최고정보책임자(CIO)는 “휘트먼은 내 직속상사는 아니지만 그와 거리감 없이 의사소통 한다”며 “휘트먼과 신뢰를 구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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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 휘트먼 휴렛팩커드(HP) CEO |
◆ 휘트먼의 여성 리더십에 대한 엇갈린 평가
휘트먼의 리더십은 ‘결단력’과 ‘의사소통’으로 요약된다.
피에르 오미드야르 이베이 창업주는 1998년 휘트먼을 이베이 CEO로 선임하면서 “그는 강한 결단력을 지닌 동시에 타인을 지배하려는 성향이 없는 경영자”라고 말했다.
휘트먼도 “여성 CEO는 말보다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IT처럼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면서 여성의 행동을 방해하는 관습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하고 싶은 것이 있거든 바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휘트먼은 또 여성 리더가 남성보다 신뢰감을 얻는 데 유리한 점이 있다고 본다. 의사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그는 “신뢰를 주는 문제에서 남자보다 훨씬 나은 부분이 있다고 자부한다”며 “엄마로서 아이들이 잘 놀게 돌보거나 사업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은 본질적으로 똑같다”고 말했다.
휘트먼은 “나는 사람들이 말하기 싫어하는 문제를 일부러 이야기하게 만든다”며 “그래야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조직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IT업계 관계자들도 휘트먼의 의사소통 능력을 높게 평가한다. 윌리엄 메이어 US뉴스 기자는 “휘트먼은 결코 보스처럼 굴지 않으나 임직원을 앞에서 이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IT업계의 일부에서 휘트먼이 HP의 기업성향과 잘 맞지 않는 리더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가 재임한 지난 3년간 HP의 실적이 별다르게 좋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휘트먼의 장점인 유연성과 개방성이 전자상거래기업인 이베이에 잘 맞았으나 HP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해 휘트먼을 ‘능력 이하의 성과를 내고 있는 CEO’로 선정했다. 당시 미국 증권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휘트먼은 HP만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며 “그의 리더십이 성과를 낼지 지금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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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 휘트먼 휴렛팩커드(HP) CEO(왼쪽)가 지난 2월27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 2014'에 참석해 최진성 SK텔레콤 ICT기술원장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
◆ 휘트먼, HP 분사 과연 성공할까
휘트먼은 지난달 6일 HP를 둘로 나누겠다고 밝혔다.
분사되는 기업 가운데 HPInc는 PC와 프린터 등 기업대개인(B2C) 사업을 맡는다. HP엔터프라이즈는 기업대기업(B2B) 전문으로 기업용 하드웨어와 서비스관리 사업을 진행한다.
휘트먼은 내년 10월로 예정된 기업분할 뒤 HP엔터프라이즈 대표이사로 취임한다. 디온 와이즐러 PPS부문 책임자가 HPInc의 새 CEO가 된다. 휘트먼은 HPInc에서 미등기이사 회장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HP는 PC와 프린터사업을 기업솔루션 분야와 나누면서 각자의 핵심영역에 집중할 수 있다”며 “빠르게 행동하는 것이 성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휘트먼은 2011년 9월 HP CEO로 취임하면서 전임자인 레오 아포테커가 추진했던 PC사업부 분사를 백지화했다. 당시 그는 “믿을 수 있고 우리가 잘 하는 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약 3년 만에 HP를 분사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휘트먼은 취임 뒤 꾸준한 구조조정과 연구개발 투자로 기업구조가 개선돼 분사를 시행해도 문제없는 상태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직원 5만5천 명을 줄이고 연구개발비를 2008년 수준인 전체 매출의 3%까지 늘려 각 분야의 전문화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휘트먼은 특히 이번 분사 결정으로 HP의 새로운 성장동력인 기업솔루션 분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HP는 PC와 프린터시장에서 지난해 중국 레노버에게 매출 1위 자리를 빼앗겼다. 영업이익도 지난해 48억4천만 달러를 올려 기업솔루션 부문의 58억5천만 달러보다 뒤쳐졌다.
휘트먼은 HP 내부에서 두 사업의 시너지가 적다는 지적도 고려해 분사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모바일컴퓨터와 데이터센터 네트워크가 시장을 주도하면서 두 사업의 연결고리가 약해지고 있다”며 “휘트먼은 HP가 민첩성과 속도를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HP 분사에 대한 시장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HP는 분사 발표 전인 지난달 3일 시가총액이 660억 달러였다. 분사가 발표된 뒤 주가가 크게 뛰면서 시가총액도 780억 달러까지 올라갔다.
HP 기업솔루션 고객인 그레고리 블라트닉 헬스뮤추얼 IT운영책임자는 “HP는 개인과 기업대상 사업을 함께 진행하면서 역량을 집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HP가 분사되면 기업고객 전담 서비스에 더 신경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휘트먼은 분사와 더불어 ‘더 머신’ 연구개발 프로젝트도 계속 추진한다. 이 프로젝트는 HP의 자체 메모리소자, CPU, 운영체제, 데이터전송 기술을 결합한 제품을 2019년 출시하는 계획이다.
휘트먼은 더 머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다양한 협력사들과 접촉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을 만나 반도체부문 협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 휘트먼이 HP를 분할해도 큰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오히려 기존에 존재하던 시너지마저 상실할 것이라고 본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도 “HP가 분사하면 서버를 팔면서 컴퓨터와 프린터를 묶어파는 것도 불가능해진다”며 “연간 10억 달러의 경제적 피해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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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 휘트먼 휴렛팩커드(HP) CEO |
◆ 휘트먼은 어떻게 IT업계 스타 여성 CEO가 됐나
휘트먼은 HP에 오기 전에 이미 IT업계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그는 1998년 이베이 CEO로 취임했다. 그가 재임한 10년 동안 이베이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자상거래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휘트먼은 이베이 CEO가 되면서 처음으로 IT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글로벌 소비재 기업인 프록터앤갬블 브랜드마케팅 부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베인앤컴퍼니를 거쳐 장난감회사인 하스브로의 CEO가 됐다.
피에르 오미드야르 이베이 창업주는 브랜드마케팅 분야의 스타 CEO였던 휘트먼에게 1998년 영입을 제의했다. 휘트먼은 처음에 거절했으나 오마디야르가 지분 6%를 주당 0.022달러에 사들이는 스톡옵션을 제시하자 고심 끝에 요청을 받아들였다.
휘트먼은 “처음에 이베이 CEO가 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며 “그러나 오마디야르의 요청을 받아들인 뒤 외과의사인 남편과 두 아이까지 데리고 5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다”고 회고했다.
휘트먼은 이베이에 들어오자마자 “이곳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거래하는 경매장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곧바로 경매사이트 업포세일닷컴, 전자결제서비스 페이팔, 인터넷전화 스카이프 등을 잇따라 사들였다.
휘트먼이 CEO로 일한 10년 동안 이베이는 전자상거래업계 1위 기업으로 떠올랐다. 이베이는 1998년 연매출이 400만 달러였으나 2008년 80억 달러로 늘어났다. 이베이는 직원 수 30명인 벤처기업에서 1만5천 명을 거느린 대기업으로 규모가 커졌다.
휘트먼도 이베이의 성공에 힘입어 대표적인 IT업계 여성 리더로 명성을 쌓았다. 그는 2004년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 기업가’ 1위에 선정됐다. 그해 월스트리트저널이 발표한 ‘주목해야 할 여성 CEO’ 명단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휘트먼은 2000년대 후반 들어 정계에 관심을 돌렸다. 그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 진영에서 일했다. 매케인 후보는 그때 “대통령이 될 경우 휘트먼을 재무장관으로 임명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휘트먼은 2010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그는 CEO로 쌓은 명성을 기반으로 1500억 원 이상의 선거자금을 동원했다. 그러나 제리 브라운 민주당 후보에게 밀리면서 낙선했다.
휘트먼은 2011년 HP 이사를 거쳐 CEO로 임명되면서 IT업계로 돌아왔다. 그는 정계에서 거둔 실패와 달리 본업인 기업경영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휘트먼은 HP에서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휘트먼이 CEO가 된 이후 HP 주가는 30% 넘게 하락했다. 지난 2분기까지 11분기 연속으로 매출이 감소하는 불명예도 안았다.
그러나 HP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HP는 3분기에 매출 276억 달러를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 늘어났다. 그동안 매출이 연속감소하는 데 제동을 걸었다.
휘트먼은 “HP가 3년 만에 매출부진에서 탈출했다”며 “기업재건의 길은 쉽지 않으나 HP는 이전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