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 방산비리를 겨냥한 검찰수사가 지지부진하다.

검찰이 방산비리 의혹을 규명하는 데 실패할 경우 방산기업에 흠집만 내 해외사업에 부정적인 영향만 끼쳤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 수사 지지부진, 용두사미로 끝날까

▲ 한국항공우주산업 서울사무소.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이 한국항공우주산업 비리를 조사하면서 전현직 임원들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잇달아 기각돼 체면을 구기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이용일 부장검사)는 채용비리와 관련한 업무방해와 뇌물공여 혐의로 한국항공우주산업 경영지원본부장인 이모씨에 대해 4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8일 새벽에 법원으로부터 영장이 기각됐다. 

검찰은 8월 초에도 한국항공우주산업 전 생산본부장인 윤모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은 7월14일 한국항공우주산업 압수수색을 실시하며 수사를 개시한 지 8주가 됐지만 검찰이 얻은 것은 한국항공우주산업 옛 협력기업 D사의 대표를 사기대출 혐의로 구속한 것밖에 없다.

이마저도 검찰이 2015년 D사의 비윤리적 행위를 적발하자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청렴거래계약을 위반했다고 판단해 외주계약을 해지한 기업으로 밝혀져 과거 일을 빌미로 삼아 한국항공우주산업을 압박하고 있다는 말도 듣고 있다.

검찰은 2년 동안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방산비리와 관련해 내사를 벌이다가 7월 초에 한국항공우주산업이 데이터 삭제 전용프로그램인 ‘이레이저’를 대량으로 구매해 증거를 인멸하려는 시도를 포착해 공개수사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설치한 ‘이레이저’ 프로그램은 국방부 방위산업 보안업무훈령 97조에 따라 방위산업을 하는 곳에서 필수로 설치해야 하는 프로그램으로 밝혀졌다. 검찰의 설명과는 반대로 이레이저 프로그램은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누구나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다.

이에 대해 검찰은 “훈령에 맞게 삭제 프로그램을 사용했는지와 범죄흔적을 지웠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해명했다.

분식회계 문제도 의혹만 있을뿐 구체적인 단서를 잡는 데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항공우주산업 수사 지지부진, 용두사미로 끝날까

▲ 한국항공우주산업 구매본부장 공모씨가 8일 오전 고등훈련기 T-50 개발과정에서 원가를 조작한 혐의를 받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분식회계 의혹이 터져나온 직후부터 회계부정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 뒤 △선급금에 대한 매출인식 기준 변경 △해외사업의 예정원가율 조정 등을 반영해 2014~2016년 재무제표를 수정했고 감사회계법인으로부터 ‘적정’ 의견도 받아냈다.

검찰이 방산비리 수사라는 칼을 야심차게 빼들었지만 구체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법조계 일각에서 나오는 이유다.

검찰이 방산비리 수사에 진척을 보이지 못하면서 수사의 핵심인 하성용 전 사장의 소환이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검찰은 수사 초기단계부터 하 전 사장의 개인비리 의혹도 향후 수사대상에 포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전현직 임원들의 구속영장 청구가 법원에서 번번이 가로막히면서 수사 본류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감사원으로부터 과거에 모두 지적된 사항들을 토대로 한국항공우주산업 수사를 개시할 때부터 수사목적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현재 수사 진행상황을 두고 볼 때 검찰이 불리한 상황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이 방산비리 수사를 반전할 만한 기회를 잡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원은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의 개발과정에서 원가를 조작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한국항공우주산업 구매본부장 공모씨의 영장실질심사를 8일 오전 실시했다. 법원이 구속영장 청구를 받아들일 경우 개발비리와 관련한 수사가 급물살을 타게 될 수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