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의 조속한 석방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발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 경영공백 장기화에 대비해 과거 미래전략실과 같은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와 삼성그룹의 선택이 주목된다.
◆ 삼성그룹 경영공백 불안 확산
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그룹 주요 경영진들이 이 부회장 공백상황에서 장기전략 수립을 놓고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CE부문 사장은 최근 가전전시회 IFA2017 기자간담회에서 삼성그룹의 상황을 ‘선단장을 잃은 함대’로 표현하며 한순간에 침몰할 수 있을 정도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삼성전자 등 계열사를 각각 한 척의 배로 비유한다면 전문경영인들이 선장의 역할을 해낼 수는 있겠지만 선단장이 없이는 사업재편과 인수합병 등 주요결정의 방향을 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도 이 부회장의 실형선고 뒤 임직원들에 “회사가 처해있는 대내외 경영환경이 엄혹해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았다”며 “비상한 각오로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 실형 선고 이후 삼성그룹은 계열사별로 독립체제를 강화해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룹 차원의 결정이 필요할 경우에는 책임있게 대응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삼성그룹의 경우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데다 지주사체제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LG그룹이나 SK그룹은 반도체와 전장부품 등 경쟁이 치열한 사업분야에서 오너경영과 지주사를 중심으로 그룹차원에서 역량을 동원하는 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직접 참여해 반도체 소재기업 SK실트론 인수를 마무리했고 LG그룹은 지주사 LG와 LG전자가 공동으로 전장부품업체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삼성그룹의 경우 미래전략실 해체가 이 부회장의 공백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실형을 확정받더라도 과거 다른 재벌총수와 같이 수감 중에 사업현안을 보고받고 주요결정을 내리는 ‘옥중경영’을 이어갈 수도 있지만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면서 ‘시스템의 삼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 컨트롤타워 다시 만들 수 있나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해체가 ‘실수’라는 말이 나오면서 삼성그룹이 다시 컨트롤타워를 구축할지 주목된다.
이 부회장 공백의 장기화가 불가피한데다 당장 지배구조개편으로 지주사체제로 전환도 쉽지 않은 만큼 과도기로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삼성그룹이 뚜렷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미래전략실 해체를 성급하게 결정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김 위원장은 이전에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도 삼성미래전략실의 불투명한 의사결정구조를 비판했지만 삼성그룹과 같은 대기업집단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래전략실 같은 컨트롤타워가 투명한 의사결정구조를 갖춘 조직으로 재탄생한다면 향후 삼성그룹이 지주회사 설립 등 지배구조개편을 추진하는데도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에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명분은 어느 정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문제는 얼마만큼 투명성을 갖춰 사회와 주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과거 비서실에서 전략기획실로, 다시 미래전략실로 이름을 바꾸는 방식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삼성그룹을 포함한 4대 재벌기업이 연말까지 자발적인 개혁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런 만큼 삼성그룹으로서는 그룹차원의 지배구조개편 등 변화를 모색하는 방향을 정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더욱 필요해진 셈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