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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9월13일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에서 열린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제3고로 화입식 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현대제철이 동부특수강 인수에 성공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현대하이스코 냉연부문을 흡수합병하면서 자동차용 강판 생산 및 공급체계를 완성했다. 이번에 동부특수강을 인수하면서 자동차용 특수강 생산라인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현대제철이 동부특수강을 인수하면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현대제철을 일관제철소로 키우겠다는 숙원을 뛰어넘게 됐다. 정몽구 회장은 2006년 제1고로를 착공하면서 일관제철소 건립에 첫발을 뗐다.
현대제철이 사업을 확장해나가면서 현대차그룹에서 위상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현대제철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승계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제철은 정몽구 회장이 등기이사에서 물러나고 정의선 부회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이제 국내 철강업계 맏형 포스코를 위협할 정도로 세력을 키웠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철강본연의 경쟁력 강화를 외치고 있어 현대제철의 공세에 어떻게 대처해나갈지 주목된다.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은 취임한 직후 동부특수강 인수라는 당면과제를 처리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흔들리는 재무구조도 문제고 현대기아차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점도 해결해야 한다.
◆ 강판에 이어 특수강까지 수직계열화
현대제철은 24일 동부특수강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인수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23일 진행된 본입찰에 현대제철과 세아홀딩스가 참여했는데 현대제철은 세아홀딩스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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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2010년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에서 열린 제1고로 화입식에서 고로에 불을 지피고 있다. |
현대제철은 시장예상가를 웃도는 3천억 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동부특수강 인수가격은 2천억 원대에 형성될 것으로 시장은 내다봤다. 매각주체인 산업은행은 동부그룹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동부특수강을 1100억 원에 인수했다.
특수강시장은 봉형강과 선재를 생산하는 상공정시장과 이를 가공하는 하공정시장으로 나뉜다. 현재 상공정시장에서 세아베스틸과 포스코특수강이, 하공정시장에서 세아특수강과 동부특수강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제철이 동부특수강을 최종 인수하면 현대차그룹은 자동차용 강판뿐 아니라 자동차용 특수강을 생산공급하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하게 된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고로 3기를 가동하면서 연간 2400만 톤(고로 1200만 톤, 전기로 1200만 톤)의 조강생산능력을 확보했다. 이어 현대하이스코 냉연부문을 합병하면서 현대제철이 생산한 자동차용 강판을 현대차와 기아차에 공급하는 체계를 갖췄다.
현대제철은 현재 당진발전소 안에 특수강 상공정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 공장은 연간 봉형강 60만 톤, 선재 40만 톤을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2016년 2월부터 생산에 들어간다.
현대제철이 하공정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동부특수강을 인수하면서 당진 특수강 상공정공장이 완공되는 2016년쯤이면 현대제철에서 생산한 자동차용 특수강을 현대모비스와 현대위아 등 부품계열사로 공급할 수 있는 구조를 완성하게 된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특수강 수요가 늘어난 데 비해 현대제철의 특수강 경쟁력이 미흡했었다”며 “이번에 동부특수강을 인수하면서 당진 특수강공장과 연계한 공정이 완성되면서 특수강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 정몽구, 쇳물에서 자동차까지 수직계열화 만개
자동차를 완성하는데 필요한 철강재는 차체에 사용되는 강판, 큰 부품 제조에 사용되는 특수강 봉강, 볼트나 너트 등 작은 부품을 만드는 특수강 선재 등 크게 세 가지다.
현대제철이 강판에 이어 특수강까지 사업영역을 넓히면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숙원인 쇳물에서 자동차까지의 일관제철소 건립계획이 무르익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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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
정몽구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못 다 이룬 일관제철소 건립의 꿈을 2006년 현대제철 제1고로를 착공하면서 현실화했다. 그는 2010년 제1고로 화입식에서 “보람있고 감격스럽다”며 “선대회장의 꿈을 드디어 이뤘다”고 밝혔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1977년 현대종합제철을 설립하고 정부의 제2제철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정부는 제2제철 사업자로 포항제철(포스코)를 선정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제철사업에 진출하지 못한 대신 인천제철을 인수하면서 철강사업의 기반을 다졌다.
정몽구 회장은 1996년 현대차그룹 회장에 취임했을 때부터 제철사업 진출 의지를 거듭 밝혔다. 정몽구 회장은 강원산업, 삼미특수강, 한보철강 등을 인수하면서 철강사업을 키웠고 2006년 고로제철소 설립인가를 받으면서 마침내 제철사업에 진출하게 됐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일관제철소의 꿈을 품은 지 딱 30년 만이었다. 이후 정몽구 회장은 조강능력 확대, 냉연부문 합병, 특수강부문 강화 등으로 일관제철소로서 현대제철의 위상을 높여왔다.
현대차그룹에서 현대제철은 현대기아차, 현대모비스와 함께 철강, 자동차, 부품 삼각편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현대제철 서울영업소가 지난 3월 현대기아차 양재동사옥으로 이전하면서 현대제철의 모든 영업조직이 14년 만에 한 곳에 모이게 됐다. 현대제철이 그룹 심장부에 자리잡게 된 건 그만큼 높아진 현대제철의 위상이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현대제철은 정의선 부회장의 현대차그룹 승계과정에서도 결정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얼마전 박승하 현대제철 부회장이 사퇴하고 우유철 부회장이 승진하면서 현대제철은 우유철 부회장의 단독대표체제로 전환했다. 이전까지 박 전 부회장과 우 부회장의 각자대표체제로 운영됐던 만큼 조만간 새로운 대표가 선임돼 다시 각자대표체제로 돌아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과정에서 정 부회장의 영향력이 커지고 승계를 위한 포석이 다져질 것으로 관측된다. 정몽구 회장이 지난 3월 현대제철 등기이사에서 물러나면서 현대제철 등기이사로 있는 정의선 부회장의 입지를 넓혀주기도 했다.
현대제철의 성과는 이제 고스란히 정의선 부회장의 몫이 된다. 정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의 숙원사업 토대 위에서 현대차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는 발판을 다질 수 있게 됐다.
◆ 권오준, 포스코에 맞서는 현대제철 어떡하나
현대제철의 힘은 국내 철강업계 맏형인 포스코의 입지를 흔들 만큼 강력해졌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취임한 뒤 줄곧 철강본연의 경쟁력 강화를 외치고 있어 몸집을 키우고 있는 현대제철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포스코는 실적 면에서 현대제철보다 월등하다. 포스코는 올해 2분기 단독으로 매출 7조4198억 원, 영업이익 5654억 원을 냈다. 반면 현대제철은 매출 4조1745억 원, 영업이익 3589억 원을 올렸다. 현대제철의 매출은 포스코의 56%, 영업이익은 63%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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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준 포스코 회장 |
그러나 성장세는 현대제철이 포스코를 압도하고 있다.
올해 2분기 포스코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4%, 20% 가량 감소했지만 현대제철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7%, 98%씩 늘었다. 영업이익률도 현대제철(8.6%)이 포스코(7.62%)를 앞섰다.
포스코는 올해 3분기 양호한 실적을 내면서도 현대제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오일환 포스코 철강사업전략실 전무는 지난 23일 3분기 실적발표회에서 “현대제철이 동부특수강을 인수하면 포스코특수강의 물량이 줄어들 것”이라면서도 “동부특수강은 경북 포항에, 현대제철은 충남 당진에 위치해 충남에서 포항, 다시 포항에서 수도권까지 제품을 운반하는 역물류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 전무는 현대제철의 동부특수강 인수하면 포스코 물량 감소가 불가피한 만큼 “글로벌 수요를 늘려 이를 대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매년 35만 톤 가량의 선재를 동부특수강에 공급했다.
현대제철이 동부특수강을 인수하고 특수강 상공정공장을 완공하게 되면 포스코는 선재 생산 부문에서 점유율 하락이 불가피하고 동부특수강이라는 수요처도 잃게 된다. 포스코는 그동안 선재 생산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다.
포스코는 이미 현대제철이 자동차 강판 생산 및 공급 체계를 완성하면서 그 영향력이 예전에 비해 약화된 상태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포스코의 올해 상반기 조강 생산량 기준 시장점유율은 51.5%였다. 포스코의 시장점유율은 최근 2년 동안 높아지다 올해 들어 감소한 것인데 현대제철이 고로 제3기를 가동하면서 조강 생산량을 늘린 것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포스코의 철강재 내수 판매 비중도 계속 줄고 있는데 해외 수출물량이 늘고 있기 때문도 있지만 현대제철이 포스코의 내수 수요처를 빼앗은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현대제철은 현대기아차에 공급하는 물량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지난해 현대기아차가 공급받는 자동차용 강판 가운데 현대제철 물량 비중은 60%에 이르렀다. 현대제철은 70%까지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 현대제철 수장 우유철의 남은 과제들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은 취임한 직후 동부특수강 인수라는 당면과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현대제철이 투자를 늘리면서 약화한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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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 |
현대제철의 부채비율은 올해 상반기 기준 113.9%로 지난해 말 120.1%과 비교해 6%포인트 가량 줄었다. 수치상 재무구조가 개선되긴 했지만 이는 실제로 부채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해 말 현대하이스코 냉연부문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자산이 유입된 덕이다.
현대하이스코 냉연부문이 흡수합병되면서 유입된 자산은 5조 원 가량, 부채는 3조 원 가량이었다.
현대제철이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특수강 상공정공장을 짓는데 8천억 원을 투자했고 이번에 동부특수강을 인수하면서 최대 3천억 원이 추가로 들게 됐다. 업계는 현대제철의 재무구조가 향후 몇년 동안 더 악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제철이 현대기아차 공급물량을 늘려가면서 수직계열화의 부작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자동차시장이 침체를 겪게 되면 현대기아차는 물론 현대제철까지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제철이 현대기아차에 의존하면서 자동차용 강판사업 비중을 늘린 것도 부담이 되고 있다. 현대제철의 자동차용 강판사업 비중은 30%보다 높아 강판가격이 떨어지면 실적에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수익구조다.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에도 강판 공급가격을 톤당 8만 원 인하했다. 자동차용 강판가격이 톤당 8~9만 원 떨어지면 현대제철의 연간 영업이익이 최대 2500억 원 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본다.
현대제철은 현대기아차 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해 글로벌 완성차기업을 수요처로 확보하려 애쓰고 있다. 현대제철은 최근 차량경량화 소재로 내세우고 있는 초고장력강판을 해외로 수출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기아차가 초고장력강판 적용 비율을 늘리면서 차량 무게는 오히려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초고장력강판이 해외시장에 별 인기를 끌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제철이 전방위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데 대한 관련 업계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현대제철이 동부특수강을 인수하게 되면서 파스너회사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파스너회사는 특수강 선재를 가공해 볼트나 너트를 생산하는 회사를 말한다. 국내 파스너회사들이 만든 제품이 현대기아차로 납품되는 비중은 60%를 넘는다.
파스너회사들은 동부특수강과 현대차그룹 부품계열사 사이에 끼어 가격협상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부품계열사들이 파스너회사의 원재료 가격을 알 수 있어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임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