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전병헌은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두루 거친 경험을 바탕으로 청와대와 국회의 소통을 이끄는 역할을 맡았으나
롯데홈쇼핑이 2015년 e스포츠협회에 3억 원대의 후원금을 낸 뒤 홈쇼핑 재승인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는 가운데 2017년 11월16일 정무수석 비서관에서 물러났다.

1958년 3월17일 충청남도 홍성에서 출생했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정책대학원에서 경제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부시절 고대신문 편집장을 지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평화민주당의 당보 편집국장으로 정치생활을 시작해 청와대 정무비서관, 정책기획비서관, 국정상황실장, 국정홍보처 차장 등을 역임했다.

17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갑에 당선돼 내리 3선 의원을 지냈다.

초선 때 열린우리당 대변인, 원내부대표,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지냈고, 재선 의원 시절에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과 민주당 간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등을 맡았다.

판단이 빠르고 재치있는 성격이다. 상황 대처능력과 기획능력이 뛰어나다는 말도 듣는다.

젊은 게임인구에게 인기가 높으며 별명은 '갓병헌', '루통령'이다. 의원시절 루리웹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에서 게임산업을 보호하는 의정을 약속한 뒤 붙은 별명이다.

경영활동의 공과


△정무수석에 임명
전병헌은 2017년 5월14일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에 임명됐다.

오랜 의정활동과 폭 넓은 국회 위원회 경험을 바탕으로 청와대와 국회의 원활한 소통을 이끌 것으로 기대됐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병헌이) 청와대 비서관 등 풍부한 국정경험과 3선의 국회의원을 경험하는 등 정치경륜과 정무감각을 갖춘 중량감 있는 인사로서 대통령의 정당 및 국회 소통과 협력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반영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전병헌은 정무수석이 되고 곧바로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정책 추진을 위해서 추가경정예산에 국회의 동의를 얻는 작업에 들어갔다.

각 당 대표들을 만나서 추가경정예산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설득에 나섰다. 추가경정예산안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당이 동의하면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부 탄생과 동시에 청문회가 이어지면서 후보자들이 더불어민주당이 선거 공약으로 내놓았던 5대 인사검증 기준 가운데 하나였던 위장전입 문제에 걸리자 청문회 도입 이후 위장전입에 대해서만 배제하기로 수정된 인사검증안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투기성 위장전입의 경우 2005년 이전이라도 배제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Who Is ?]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중앙)이 2017년 5월29일 대통령 비서실장, 수석비서관들과 함께 수석보좌관회의 시작 전 티타임을 가지고 있다.<뉴시스>

△한국e스포츠협회 회장 시절
전병헌은 2013년 1월24일 제 5기 한국e스포츠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협회와 대중의 소통, 대한체육회 가맹 추진, e스포츠의 대중화, 정부와의 협조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전병헌은 e스포츠 대중화를 위해 국제대회 국내개최, 프로게임구단 지원, 아마추어와 프로선수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케스파컵대회 부활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국제스포츠종목연맹들이 연합한 스포츠어코드에 가맹 신청하는 등 e스포츠가 정식 스포츠종목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회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정무수석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명예회장으로 있었다.

△19대 국회의원 시절
전병헌은 2012년 5월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민주통합당 소속이었으며 이후 당명이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으로 바뀌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임기 중 위원회가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로 바뀌었다. 2016년 청와대가 공영방송 인사를 장악할 수 없도록 개정한 방송법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려고 했으나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위원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됐고 이름이 바뀐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원내대표를 지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에 올랐고 더불어민주당으로 이름이 바뀐 뒤에도 최고위원을 유지했다.

△18대 국회의원 시절
전병헌은 2008년 5월 제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민주통합당 의원으로 시작했으며 이후 당명이 민주당, 민주통합당 순으로 바뀌었다.

전병헌은 2009년 이명박 정부가 ‘방송법’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 사업법’ 등 3가지 미디어법 제정을 추진하고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주도로 통과시키려 하자 반대에 나섰다. 미디어법으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거대언론기업이 방송에 진출하며 방송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당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 겸 민주당 간사로서 야당 간사들과 함께 국회에서 농성을 벌이고 한나라당 간사들을 만나 미디어법을 처리하는 과정이 불합리하다며 설득했다. 하지만 법안은 통과됐고 대형신문사가 운영하는 종합편성채널이 등장했다.

전병헌은 정책위원회 의장으로서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와 반값등록금 등 이른바 ‘3+1복지정책’을 내세워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과 정책경쟁을 벌였다.

2012년 공휴일에서 제외됐던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는 데 기여해 한글학회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17대 국회의원 시절
전병헌은 2004년 5월30일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17대 국회의원 활동을 시작했다. 후에 당명이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 순으로 바뀌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 겸, 법안심사소위원장, 문화관광위원회 위원, 금융정책연구회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법안심사소위원장으로 2004년 출자제한 해제기준을 부채비율에서 지배구조 개선으로 바꾼 공정거래법개정안을 법안심사소회의에서 통과시켰다.

2004년 장준하 선생의 일본군 탈영 증거를 찾아 10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언론에 공개했다. 장준하 선생은 자서전인 돌베개에서 일본군에 징집된 이후 탈영했다고 적었지만 증명할 자료가 없어 오랜 기간 논란이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통한 정치계 입문
전병헌은 고려대학교 학보 편집장을 지냈던 인연으로 1987년 김대중 당시 총재가 이끌던 평민당의 전문위원을 맡으면서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평민당, 신민주연합당, 민주당에서 당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현재까지 최연소, 최장수 편집국장으로 남아있다.

15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선후보캠프의 홍보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전병헌은 1997년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청와대에 입성해 청와대 정책기획비서관, 정무비서관, 국정상황실장, 국가홍보처 차장 등을 맡았다.

[Who Is ?]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왼쪽 첫 번째)이 2015년 4월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원외지역위원장협의회 출범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뉴시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문재인 정부 첫 정무수석으로서 국회의 협조를 이끌어 국정운영이 원활히 될 수 있도록 돕는 임무를 안고 있다.

전병헌은 이전 정무수석들보다 역할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가 맞이한 국회가 여소야대에 원내진출 당이 5개인 만큼 설득해야 할 대상도 많기 때문이다.

전병헌은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출범했기 때문에 임기시작부터 정책추진과 예산편성을 위해 국회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자유한국당 이외 야당을 설득하면서 추가경정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추가경정예산 외에도 앞으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을 위한 법 개정 혹은 제정 등의 절차에서 국회의 협조를 이끌어낼 전병헌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 평가

오랜 기간 정치권에 몸담은 중견 정치인이자 원내대표, 정책위원회 위원 등을 두루 거친 전략기획통으로 불린다.

정치권에서 상황대처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세균계'로 분류되기도 한다. 전병헌은 김대중 대통령의 평민당에 당직자로 근무하면서 정치에 입문했고 동교동계인 정세균 국회의장과 줄곧 같은 당에서 의원활동을 했다.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간사를 맡기도 했고 한국e스포츠협회 회장도 맡았다.

게임업계의 권익을 보호하는 의정활동으로 젊은 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게임중독을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분류한 ‘중독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 제정에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고 일정시간 이후 청소년이 게임을 하지 못하게 하는 ‘셧다운제’도 비판해 왔다.

의회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원내대표 시절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으로 당내에서 장외투쟁론이 나왔을 때도 원내와 원외투쟁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젊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게임산업 등 젊은 세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대변할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갓병헌’, ‘루통령’ 등으로 불린다. 루리웹이라는 인터넷커뮤니티 이름 첫글자에 대통령의 '통령'을 붙인 것이다.

특히 e스포츠협회 회장시절 게임 캐릭터로 분장하며 젊은 층에 친근한 이미지를 남겼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8년 평화민주당 당보 편집국장으로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 전문위원을 지냈다.

1998년 대통령 정무비서관, 1999년 대통령 정책기획 비서관, 2001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2002년 국정홍보처 차장을 맡았다.

2003년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상임부의장에 올랐다.

2004년 4월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2005년 1월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에 올랐고 열린우리당 대변인을 맡았다.

2006년 6월 국회문화관광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08년 4월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9년 8월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위원장에 올랐다.

2010년 3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간사를 맡았고 같은 해 6월부터 2011년 5월까지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2012년 4월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같은 해 7월부터 2014년 5월까지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13년 1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제5대 한국 e스포츠협회 회장을 맡았다.

2013년 5월부터 2014년 3월까지 민주당 원내대표를, 2014년 3월부터 2014년 5월까지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지냈다.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에 올랐으며 이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맡았다.

2017년 5월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됐다. 11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Who Is ?]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전병헌 한국e스포츠협회 회장이 2014년 8월9일 세빛섬 미디어아트갤러리에서 개최된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2014시즌 결승을 축하하기 위해 스타크래프트2의 게임 캐릭터 ‘멩크스’로 분장했다.

◆ 학력

1981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 경제학 학사를 취득했다.

2000년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경제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 조영아씨 사이에 남매를 뒀다.

◆ 상훈

2002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0년 제8회 의정행정대상 국회의원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2011년 제9회 의정행정대상 국회의원부문 대상을 받았다.

2012년 제1회 대한민국 대표 의정대상을 받았다.

2013년 대한민국우수국회의원대상 특별대상을 받았다.

2014년 제6회 서울 석세스대상 정치부문 정치대상을 받았다.

2014년 제2회 국제평화언론대상 국회의정활동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 기타

2016년 의원시절 공고된 재산은 건물 8억3천만 원을 포함해 13억 원이었다.

1981년 육군학사관장교 1기로 군 복무를 시작해 중위로 전역했다.

2011년 '전병헌의 비타민 복지', 2010년 '전병헌의 비타민 발전소', 2007년 '비타민정치' 등 주로 정치와 관련된 저서를 썼다.

어록


“빚 없이 걷힌 세금으로 추진하는 추가경정예산과 정부가 제대로 출범하기 위한 틀인 정부조직법 최소한 두 개는 국회가 처리해줄 때가 됐다. 청와대의 답에 대해서 국회가 선의를 갖고 응답하기를 요청 드린다."(2017/7/13, 청와대 춘추관에서)

“새로운 협치 문화를 만들고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초석을 까는 게 정무수석으로서 제가 해야 할 핵심 역할이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통해 국민이 편안한 나라, 그리고 나라다운 나라를 가질 수 있게 최선의 역할을 다하겠다.”(2017/5/14, 정무수석으로 임명된 날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지난 10년간 문화부는 e스포츠의 자체 성장에 기대 편승해 왔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토양을 문화부가 만들어 줘야 한다.”(2011/10/27, 국정감사에서)

“표현과 언론의 자유 문제를 다루는 법률을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편법적이고 반칙적인 절차에 의해서 이 부분을 처리하겠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있는 것인가 라는 점을 정말 되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2009/3/1,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이 미디어법 직권상정을 하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며)

“이번 장준하 선생의 기록을 찾아냄으로써 해방 전후 광복군 및 항일유격대로 활동한 많은 분들이 주장하는 '일본군에 강제징집 되었으나 목숨을 걸고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했다'는 증언을 뒷받침할 구체적 사료로 가치가 있다.”(2004/10/6,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장준하 선생의 일본군 탈영 증거를 밝히며)

“사무실에 1평방미터의 가판, 그것도 내 이름 석자도 쓰지 못하는 간판 하나만 달 수 있다. 홍보라고는 현직만 적어놓은 명함 하나 달랑 들고 지역구민들 만나서 인사하는 것밖에 없다.”(2004/01/15,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선거법 개정이 미뤄지는 것에 불만을 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