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이용해도 되는 이동통신 3사 이동통신 서비스를 식재료화해 새로운 맛의 이동통신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알뜰폰이 흥미롭다. 그냥 먹어도 되는 음식에 다른 것을 섞고 새 양념을 가미해 새로운 맛의 음식으로 탈바꿈시키는 '냉장고 털기' 조리법과 닮았다. 알뜰폰이 진정한 MVNO 서비스 모습을 되찾아,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을 이끌 수 있길 기대한다. <알뜰폰사업자협회>
오는 16일 개봉하는 영화 '인턴'의 기호(최민식 연기·같은 이름의 미국 영화에선 로버트 드니로 연기)처럼 환갑을 훨씬 넘겨 칠순을 바라봐야 하는 나이에도 계약직 기자로 일하고 있다.
현장기자 일과 별도로 집에서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먹는 것을 즐긴다. 10여년 전부터 집안 주방을 통째로 넘겨받아 밥상 차리기를 전담하고 있다. 평일에는 아침과 저녁, 주말과 휴일에는 점심까지 하루 세끼 밥상과 간식까지 직접 다 차려낸다.
당연히 집 안 식자재 관리도 내 몫이다. 식자재를 집 안으로 들이거나 냉장고에 넣을 때는 내 허락을 받거나 최소한 뭘 얼마나 들였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집 안 식자재 품목과 재고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소비 기한이 지나 버려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설거지도 직접 한다. 누군가가 설거지를 하러 주방에 들어오려면 내 허락을 받아야 한다. 조리 기구나 그릇의 위치가 바뀌어 손을 뻗었을 때 바로 잡히지 않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서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마스크를 쓰고 음식을 만들어 차려내고 설거지를 했다.
왜 설거지까지 도맡느냐고? 설거지는 조리·식사 때 사용한 기구나 그릇을 씻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음 끼니를 준비하는 과정이 더 크다. 다음 끼니는 어떤 메뉴로 할 것인가를 정해 필요한 식재료를 준비하는 것 역시 설거지 단계에서 이뤄져야 한다.
다음 끼니 준비에 고기가 필요하면 냉동실에 얼려둔 것을 냉장실로 옮겨놓고, 다른 더 필요한 식자재들의 재고도 살핀다. 떨어졌거나 추가로 필요한 게 있으면 메모했다가 시장을 본다. 조리 기구나 그릇을 제 위치에 두는 것도 다음 끼니 밥상을 차리기 위해 준비 작업이라고 본다.
드라마에서 연인이나 신혼부부 사이에 '내가 요리를 했으니 설거지는 자기(너)가 해!'라고 하는 것을 본다. 실제로는 그렇게 될 수 없다. 밥상을 차려내는 사람과 설거지 하는 사람이 각각이면, 주방이 엉망이 되는 것은 물론 다음 끼니 준비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어머니들이 주방에 다른 사람들을 들이지 않으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갑자기 뭔 뜬금없는 소리를 길게 하냐고?
우리은행이 지난 1일 내놓은 새 알뜰폰 요금제 '우리WON셀럽'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다.
10여년 전 50대 중반 나이에 '어떤 상황'을 계기로 주방을 넘겨받은 뒤로는, 직접 만들어먹는 음식이 가장 맛나고 건강하다고 믿는다. 소화와 영양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좋다. 일 하며 쌓인 스트레스와 나쁜 기억이 국·찌개 끓는 소리와 나물을 무치는 손끝을 통해 풀어지고 사라진다.
자연스럽게 외식이 준다. 출근 때도 점심 약속이 없는 날에는 도시락을 싸간다. 속이 편하고 고물가 시대를 살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
밥상을 받기만 하다 손수 차리기 시작한 뒤로는 '참 소중한 경험'을 많이 한다. 무엇보다 그동안 밥상을 차려준 사람에 대한 감사함을 새삼 느낀다. 짜다, 싱겁다, 덜 끓었다, 맛이 왜 이래 등 투정했던 것을 후회한다. "니가 해서 먹어라"란 말을 쏟아냈을 법한데 참아준 분께 감사드린다.
맛을 보는 감각이 늘었다. 그동안에는 눈으로 보고, 코로 맡고, 입으로 느끼고, 귀로 씹히는 소리를 듣는 것에 그쳤는데, 지금은 손끝을 통해서도 느낀다. 갖 지어진 밥을 풀 때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과 밥솥 온도를 통해 손으로 전해지는 따뜻함, 나물을 무칠 때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신선함과 고소함, 조리되지 않은 육류나 생선을 만졌을 때의 서늘함 등을 이전에는 몰랐다.
이 느낌이 좋아 나도 모르게 맨손으로 집어먹는 습관이 생기기까지 했다. 더 맛있고 효율적이다.
살과 열매와 잎과 줄기를 내어준 동물과 식물한테 고마움과 미안함을 갖게 된 것도 새로운 경험이다. 식재료를 욕심내거나 낭비하지 않고, 가능하면 식재로나 음식을 남기거나 버려지지 않게 하려고 한다. 광합성 수고를 통째로 채왔거나 육류의 경우에는 목숨까지 앗아가며 구한 식재료인만큼, 감사하는 마음으로 알뜰히 소비하고, 그 음식으로 얻은 에너지는 자연과 환경에 보탬이 되는 쪽으로 쓰려고 한다.
살 빼는 데는 도움이 안된다.
조리된 음식을 차릴 때 나도 모르게 잘 생기고, 잘 익고, 맛있어 보이는 부위를 타인의 그릇에 담게 되는 것도 좋다. 내 그릇에는 터진 것, 뭉개진 것, 모나고 못생긴 것, 먹을 게 없는 것이 담긴다. 어릴 적 어머니가 왜 '난 생선 대가리(꼬리)가 더 맛있더라', '난 식은 밥이 뜨겁지 않아 더 좋더라', '난 물말아 먹는 게 술술 넘어가 더 좋더라'라고 하며 생선 가운데 토막과 더운 밥을 가족들에게 내밀었는지를 곱씹게 한다. 사랑이다.
양푼에 밥을 비벼 먹는 양푼밥이 시어머니의 며느리 사랑을 담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예전에는 웬만큼 사는 집에서도 집 안 최고 어른 부부와 장남·장손 등 넷을 위한 밥상이 따로 차려지고, 나머지 식구들은 두레반 형태의 너른 밥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며느리는 두레반 밥상에도 끼지 못하고 부엌 부뚜막에 걸터않아 남은 음식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보릿고개란 말이 있을 정도로 넉넉하지 않으니 배불리 먹을 수 없었다. 고추장도 귀해 며느리는 맘대로 먹을 수 없었다.
끼니가 부실해 푸석해진 며느리를 시어머니가 부른다. "며늘아! 내가 입맛이 없다. 비벼먹게 양푼과 고추장 좀 가져오너라." 그리고는 쌀이 좀 들어간 당신의 밥그릇과 꽁보리밥 한덩이 내지 감자 한두개 담겼을 뿐인 며느리 밥그릇을 양푼에 쏟아부은 뒤 다른 반찬들을 얹고 고추장 한숟가락을 듬뿍 떠넣어 쓱쓱 비빈다. 하지만 며느리는 숟가락을 깊게 꽂지 못한다. 시어머니가 한두 숟가락 뜨더니 "입맛이 살아나지 않네. 아이고, 밥에 간을 해놨으니 어쩌나! 두면 삭을텐데"라며 며느리에게 "네가 다 먹어라"라고 명령(?)한다.
시어머니가 명분 있게 며느리에게 쌀과 고추장이 듬뿍 들어간 비빔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한 것이다.
CJ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비버리힐스 입구에 비빔밥 매장을 냈을 때, 해당 업체 대표와 함께 방문한 적이 있다. 양푼밥 속 시어머니의 며느리 사랑 스토리를 매장에 게시하면 현지 사람들이 한국 음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권했다.
다른 경험도 있다. 집 안 식자재 여러가지가 함께 떨어지면(냉장고가 비면) 시장을 보러가기에 앞서 지역에 따로 사시는 어머니를 찾아뵙는다. 냉동식품 포장에 사용됐던 보온 가방과 스티로폼 박스를 버리지 않고 뒀다가 얼려둔 아이스팩을 담아 가져간다. 돌아올 때는 어머니 댁 냉장고와 창고에 있던 냉동 상태 음식과 식재료들이 가방과 박스에 가득 찬다. 홀로 사시다 보니 미처 소비하지 못한 떡·과일·고기·생선 등과 함께 감자·옥수수 같은 제철 식재료까지 잔뜩 챙겨주신다. 심지어 쌀·고추장·된장·참기름·들기름까지 한가지씩 꼽으며 "있냐? 가져갈래?"고 묻고, 대답도 전에 벌써 싸기 시작한다.
졸지에 그득했던 어머니 댁 냉장고는 텅 비어지고 차 트렁크는 가득 찬다. 안방 텔레비전 밑에 용돈 봉투를 놓고 나온다.
아들·손주 오면 주겠다고 일부러 사서 쟁여놓는 게 아니다. 지역에는 어르신을 공경하는 인심이 살아있다. 어르신 집에는 음식과 식재료들이 쌓인다. 농사 짓는 분은 농작물 수확 때마다 일부러 걸음해 한줌 들여놓고 간다. 색다른 음식을 할 때마다 엘리베이터를 통해 접시가 오간다. 어머니 댁에 머물다 보면 주위 분들이 초인종을 자주 누른다. 떡을 했거나 전을 부쳤는데 맛이나 보시라고 접시를 들이밀고, 고구마·감자를 캤는데 맛이나 보시라며 배가 불룩한 까만 비닐봉지를 내민다.
가까이 사는 친척이나 지인들이 어르신께 해드리라며 식재료를 보내오는 경우도 많다. 형 친구 가운데 정육점을 운영하는 분은 정육을 하다 맛있는 부위가 눈에 띄면 따로 한줌 떼어놨다가 형 손에 들려보낸다. 사과 농사를 짓는 분은 새가 한번 쪼아먹어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농부들은 기스짜리라고 한다) 몇 개를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 보낸다. 성한 것보다 더 맛있다. 오죽 단 내가 많이 나면 새가 시식을 했을까.
이렇게 어머니 댁에는 양파, 마늘, 사과, 복숭아, 토마토, 김치, 쌀 등이 쌓인다. 어머니는 도시 사는 자식과 손주들이 찾아올 때마다 냉장고를 털어주기 위해 부산하고, 그 때마다 안방 텔레비전 밑에는 용돈 봉투가 놓여진다.
장마나 폭염 등으로 배추·무 등의 가격이 금값이 돼 사먹기 힘든 상황도 어머니 김치냉장고로 해결한다. 홀로 생활하면서도 석대나 되는 어머니 댁 냉장고에는 자식·손주들 모두가 한두달 정도는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김치가 늘 저장돼 있다. 지난해 담근 김장김치는 물론 몇년 된 묵은지도 있다. 어르신들은 김장김치를 1년 식량으로 준비하는데다 가까이 사는 친척이나 지인들이 어르신 맛이나 보시라며 한통씩 보내오는 게 그 곳에 쌓여있다.
기자가 기사 아이템을 잡고, 취재와 자료 수집을 하고, 기사를 쓰고, 보도 그 후 처리를 하는 과정 등이 주방에서 밥상을 차려내는 것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점도 흥미롭다. 메뉴를 정하고(기사 아이템 발제), 냉장고 뒤지거나 시장을 봐 필요한 식재료를 구하고(취재와 자료 수집), 조리를 하고(기사 작성), 밥상을 차리고(기사 출고), 설거지와 함께 다음 끼니 메뉴를 결정하는(보도 그 후 및 새 아이템 발제) 과정이 그렇다.
그래서, 그게 우리은행이 알뜰폰 새 요금제를 내놓은 것과 뭔 상관이냐고?
10여년간 가족들의 밥상을 차려내며 두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다. 첫째는 한끼 밥상을 차리는데 걸리는 시간이 30분을 넘지 않아야 한다이다. 조리하는데 30분 이상 걸리는 음식이 땡기면 직접 만들지 않고 해당 메뉴로 유명한 맛집을 찾아 해결한다. 두번째는 과일·떡·김치·사과·배·포도와 마른·나물 반찬 등 바로 먹을 수 있는 것들도 가능하면 간편조리 과정을 거쳐 먹는다다. 가능하면 식재료화해 '더 맛있는' 새로운 음식으로 탈바꿈시켜 먹는다.
예컨대, 사과는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대접에 담은 뒤 포도 몇 알 등 다른 과일 조금씩과 삶은 달걀을 추가하고 냉동 떡을 해동해 같은 크기로 썰어 올린 뒤 딸기요거트를 뿌려 우유와 함께 먹는다. 한끼 식사로 충분하다. 돼지고기·양파·김치를 잘게 썬 뒤 간 마늘과 함께 후라이팬에 넣고 볶다가 찬밥 한덩이를 추가해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바가지에 나물 반찬과 잘게 썬 야채를 털어넣은 뒤 더운 밥을 한술 올려놓고 고추장 한숟가락을 더해 비빌 수도 있다. 먹다 남은 치킨 조각과 양념이나 차례상(제삿상)에 올려졌던 삶은 고기 등을 잘게 썰어 곁들이면, 모양은 '개밥'(먹어본 누군가의 시각 평가) 같지만 맛은 '천상의 음식' 수준이다.
맹물에 고형 육수 한알을 넣고 어머니 댁 냉장고서 털어온 묵과 김치와 함께 찬밥 한덩이를 넣고 끓이다 김가루를 더하기만 해도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의 묵밥이 만들어진다. 계란 후라이를 푹 익게 해 부셔서 넣으면 보기에도 좋아지고 맛도 달라진다.
▲ 우리은행이 새 알뜰폰 요금제를 내놨다. 급여 이체와 연급 수급을 하는 가입자에게는 최대 1년 동안 24만~30만원을 할인해준다. <우리은행>
통신 현장을 35년 넘게 누벼온 기자가 보기에, 우리은행의 알뜰폰 새 요금제가 바로 이런 식으로 만들어져 색다른 맛을 낸다.
우리은행은 금융서비스 회사이지만 고객 만족 극대화 차원에서 알뜰폰 서비스도 한다. '우리WON모바일'이란 브랜드를 쓰고 있다. 지난 1일 '우리WON셀럽'이란 이름의 새 요금제 2종을 내놨다. 급여 이체와 연금 수급 등 금융거래 실적을 충족하면 요금 할인이 이뤄지도록 설계됐다.
'우리WON셀럽 15GB+'(다달이 데이터 15GB 기본 제공)의 월 정액요금은 2만 원이다. 금융 거래 실적을 충족한 가입자에게는 월 최대 2만 원을 돌려준다. 사실상 12개월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우리WON셀럽 71GB+'(다달이 데이터 71GB 기본 제공)의 월 정액요금은 3만 원이다. 금융거래 실적을 충족한 가입자에게는 월 최대 2만5천 원을 돌려준다. 12개월간 월 요금을 5천 원씩만 내고 데이터를 71GB씩 쓸 수 있는 것이다.
박희근 우리은행 WON모바일사업부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당장의 수익보다 고객이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을 우선해 요금제를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통장을 통해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나 연금을 받는 은퇴자라면 관심을 가져볼만 하다. 1년 동안 최대 24만~30만 원의 요금 감면 혜택을 볼 수 있다.
알뜰폰은 MVNO(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 서비스다. 이동통신 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 서비스와 비교하면, 통신망을 직접 구축·운용하지 않고 도매가로 빌려 활용하는 게 다르다. 이동통신 3사의 통신망을 식재료화해 새로운 맛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게 MVNO 서비스다.
비유하면, 이동통신 3사는 어머니 댁 냉장고, 도매가로 빌려온 이동통신망은 어머니 댁서 털어온 음식과 식재료, 알뜰폰 요금제는 어머니 냉장고서 털어온 음식과 식재료를 간편조리해 색다른 맛을 가진 음식으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MVNO는 도매가로 빌린 이동통신 3사 통신망에다 나름 경쟁력을 갖춘 자체 서비스·콘텐츠를 더해 고부가가치 서비스 상품으로 내놓고 요금을 받는다. 실제로 알뜰폰 서비스는 모두 이동통신 3사 통신망을 그대로 활용한다. 알뜰폰 요금은 사업자별로 달리 설계되는데, 일반적으로 이동통신 3사 요금제보다 절반 이하 수준으로 싸다.
언더그라운드 음반으로 모은 충성 고객을 기반으로 저가항공에 이어 가상이동통신망서비스 시장에도 진출한 버진이 대표적인 MVNO 성공 사례로 꼽힌다. 미국 디즈니랜드와 각종 스포츠구단 등이 앞다퉈 MVNO 시장에 진출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신세계와 CGV 등이 뛰어든 것도 버진을 본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MVNO 사업자는 20여개에 이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동통신 3사의 이동통신과 같은 서비스를 싼 값에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라는 점을 강조하고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알뜰폰'이란 별명을 붙였다. 알뜰폰을 어장 속 '메기'처럼 활용해 이동통신 3사의 독과점을 깨고 요금 경쟁을 활성화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동통신 3사에 휘둘려, 알뜰폰 시장 활성화를 통한 요금 경쟁 촉진 효과를 살리지 못했다. 우선 MVNO를 너무 늦게 허용했다. 유럽 등에선 이동전화 보급률이 50~60% 상태에서 허용된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이동전화 시장이 포화 단계에 진입한 상태에서 허용됐다. MVNO 사업자들은 이동통신 3사와 경쟁해 가입자를 빼와야 했는데, 마케팅 능력에서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동통신 3사는 장기·가족 결합 등으로 가입자들의 이탈을 막았다.
이동통신 3사가 각각 알뜰폰 사업자를 둘 수 있게 하고, 알뜰폰 사업자 보호를 명분으로 다른 대기업의 알뜰폰 시장 진출과 마케팅에 차별을 둔 것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모두 이동통신 3사에 휘둘려서다.
결국 실패했다. 알뜰폰 시장 활성화 정책이 소비자 편익보다 사업자 보호에 무게를 두는 함정에 빠졌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동통신 3사의 5개 알뜰폰 자회사가 MVNO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이동통신 3사가 자회사들의 알뜰폰 가입자 점유율이 더이상 높아지지 않게 하기 위해 경쟁 중소 사업자들의 마케팅 비용을 지원하는 촌극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동통신 3사 자회사들의 알뜰폰 가입자 점유율은 총 50%로 제한돼 있다. 이를 초과하면 신규 영업을 중단해야 한다. 알뜰폰 사업자 가운데 대기업(공정거래위원회 대기업집단 지정)이거나 대기업 계열사들도 마찬가지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이동통신 3사 자회사들의 알뜰폰 가입자 점유율이 이미 43%까지 높아졌다. 이동통신 3사 알뜰폰 자회사들이 신규 영업 중단 사태를 맞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의 점유율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동통신 3사가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에게 물밑으로 주는 마케팅 지원금이 늘어나며, 월 100원은 물론 월 10원 하는 알뜰폰 요금제까지 등장하고 있다.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은 통신망 도매대가 이하로 요금을 설계해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늦었지만 금융회사들이 MVNO 시장에 뛰어들고, 이동통신에 금융서비스를 더한 상품(요금제)을 내놓고 있다. 자사 모바일뱅킹 서비스를 좀더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단말기 화면과 메뉴를 꾸미고, 금융거래 실적에 따라 요금을 감면해주는 요금제를 앞세우고 있다. 요금 인하와 예금·대출 이자 혜택을 함께 주는 요금제도 등장했다. MVNO 서비스 모습을 제대로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대형 금융회사 중에는 국민은행이 '리브' 브랜드로 가장 먼저 알뜰폰 시장에 뛰어들었고, 우리은행이 뒤를 이었다. 다른 시중 은행들도 뛰어들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금융과 이동통신의 궁합이 좋다고 보는 것이다. 토스 등 온라인 금융회사들도 뛰어든다. 하지만 대기업 차별 규제 대상에 포함될까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마케팅도 조용하게 하고 있다. 언론에 등장하는 것도 꺼리고 있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에 "가입자들을 빠르게 늘려 이동통신 3사의 주목을 받는 순간, 통신망 도매 대가 인하 거부 명분으로 삼아지고, 대기업 차별 규제를 받을 수 있어 조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알뜰폰 시장을 활성화해 이동통신 3사 독과점 구도를 깨고 요금 경쟁을 촉발하기 위해서는 '알뜰폰'을 버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통해 온전한 MVNO 서비스 모습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만나 "나름 경쟁력을 갖춘 서비스·콘텐츠를 가진 대기업의 참여 길을 활짝 열고, 원가 기준으로 이동통신망 도매 대가가 산정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짚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력 이동통신으로 꼽히는 LTE 통신망은 장비 종류에 따라 6~7년으로 잡힌 감가상각 기간이 끝나 이론상으로는 원가가 제로(0원) 상태다. LTE 코어망 위에 데코레이션하듯 올려진 5G 무선망의 감가상각 기간도 이미 종료됐거나 거의 끝나가고 있다.
알뜰폰 요금제 설계와, 이미 완성된 음식을 식재료화해 새로운 맛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나의 간편 요리' 과정이 닮아 있다. 둘 모두 활성화할수록 사회적 편익이 크다. 주방을 넘겨받아 그동안 밥상을 차려온 분의 수고를 덜어주는 동시에 감사함을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다양한 서비스·콘텐츠와 버무려진 MVNO 서비스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를 바란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