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조지아주에 건설한 보글 원자력 발전소 3호기의 2023년 2월 모습. <조지아파워>
웨스팅하우스는 원전 시공을 외부 업체에 맡기고 원자로 설계와 기술만 제공할 방침을 분명히 하면서 현대건설을 비롯한 한국 협업사의 사업 기회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8월31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 증시에 기업공개(IPO)를 앞둔 웨스팅하우스의 기업 가치는 200억 달러(약 27조4천억 원) 안팎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7월31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IPO를 위한 등록 서류 초안을 비공개로 제출했다.
공모 주식 수와 공모 가격 범위 및 상장 일정은 아직 공개 전이지만 시장에서는 상장이 임박했다는 기대감에 따라 기업 가치 분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펀드 운용사 X펀드의 데이비드 니콜라스 사장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웨스팅하우스는 200억 달러를 웃도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웨스팅하우스는 미국 정부의 원전 확대 목표에 맞춰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를 모두 자체 개발한 가압경수로 AP1000 노형으로 건설할 수 있다는 사업 목표를 제시했다.
가압경수로는 핵연료로 저농축 우라늄을 쓰며 물(경수)을 냉각재와 핵분열 속도를 유지하는 감속재로 사용하는 대표적 원자로 유형이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1월20일 출범 직후부터 데이터센터 확대와 에너지 안보를 앞세워 원전 부흥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5월23일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가속해 2050년 미국 내 원자력 발전 용량을 2025년의 4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러한 정책의 핵심 역할을 맡을 웨스팅하우스가 상장을 눈앞에 두며 원전 확대 정책이 본격적 시행 단계에 접어드는 모양새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6월23일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노형이 적용되는 대형 원전 10기를 대상으로 기자재 구매를 지원하기 위해 175억 달러(약 24조 원) 규모의 저금리 대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를 놓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정부는 웨스팅하우스의 강력한 조력자”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 내 원전을 대거 짓겠다는 웨스팅하우스의 사업 목표 달성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웨스팅하우스가 대형 원전의 건설 수행 경험이 부족하고 미국 원전 가치사슬 경쟁력 또한 약화하며 시간과 비용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다수의 에너지 전문가는 천문학적 비용을 이유로 미국 내에 대형 원자로가 추가로 건설될 가능성을 높지 않게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웨스팅하우스는 2013년 3월12일 착공한 조지아주 보글 원전의 건설비가 애초 예상치였던 140억 달러(약 19조 원)에서 350억 달러(약 48조 원)로 늘어난 전례가 있다. 원전 건설 관련 공급망이 취약하다는 점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따라 보글 원전의 상업 가동도 예상보다 7년 뒤인 2023년에야 시작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웨스팅하우스는 트럼프 정부에서 추진하는 원전 확대 정책에 원자로 기술과 설계만 제공하고 건설사 및 기자재 업체를 함께 참여시키는 분업형 사업 구조를 취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웨스팅하우스는 원전 총괄 시공사 역할을 하거나 발전소 전체를 직접 건설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 (앞줄 왼쪽부터)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 페툐 이바노프 불가리아 원자력공사 사장,엘리아스 기디언 웨스팅하우스 부사장이 2024년 11월4일 불가리아 소피아 국무회의 청사에서 코즐로두이 원자력 발전소 신규 건설공사의 설계 계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현대건설>
한국은 대형 원전의 설계·제작·시공·기자재 공급망을 갖춰 미국 내 부족한 원전 건설 역량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건설은 이미 웨스팅하우스와 협력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2024년 11월5일 웨스팅하우스와 컨소시엄을 이뤄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사업을 수주했다.
현대건설은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노형을 적용한 원전 두 기를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북쪽으로 약 200㎞ 떨어진 코즐로두이 원전 단지에 지을 예정이다.
현대건설과 웨스팅하우스 컨소시엄은 핀란드와 슬로베니아 등에서도 함께 원전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런 협력 사례를 바탕으로 웨스팅하우스의 미국 내 원전 건설이 가시화하면 현대건설이 주요 협업사로 떠오를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한국 원전 건설사를 끌어들이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를 제안했다는 한국경제의 보도를 인용해 “한국의 건설 및 기자재 역량을 활용하려는 의도”라고 보도했다.
다만 한국 산업통상부에서는 지난 8월25일 한국경제의 해당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한국 원전 건설사의 존재감을 보여준 사례로 읽힌다.
웨스팅하우스 상장을 계기로 미국 원전 확대 정책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가운데 원전 건설 경쟁력을 갖춘 협업사 현대건설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원전 기업 테라파워에서 근무했던 닉 투란 전 엔지니어는 미국 매체 카나리미디어를 통해 “한국의 건설 관리와 전문성 및 공급망을 활용해 미국 원전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