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J제일제당이 해외 누들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비비고 라면 핫앤스파이시와 스파이시김치, K-BBQ 스위트앤세이버리. < CJ제일제당 >
주요 라면 회사들이 장악한 국내에서 경쟁하기보다는 K푸드의 확산 덕분에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 해외 누들 시장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 깔린 행보로 보인다.
26일 CJ제일제당의 움직임을 종합하면 최근 방영한 tvN 드라마 ‘오싹한 연애’에는 주인공 천여리가 비비고 라면을 먹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해당 제품을 향한 소비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제품의 특징은 해외에서만 판매해 정작 국내 소비자는 구매할 수 없는 라면이라는 점이다. ‘오싹한 연애’가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 시청자에게 공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당 장면을 통해 비비고 라면의 해외 소비자 접점을 넓히려는 시도로 읽힌다.
실제로 CJ제일제당은 미국을 비롯해 태국과 유럽, 중동 등 해외에서 비비고 라면과 누들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2024년 11월 태국에 매운떡볶이와 치즈떡볶이, 김치, K치킨, 스모키K치킨 등 비비고 볶음면 5종을 출시하며 비비고 라면사업을 시작했다. 이어 올해는 미국에 핫앤스파이시, 스파이시김치, K-BBQ 스위트앤세이버리, 스위트앤스파이시 등 비비고 라면 4종을 선보였다.
비비고 라면 사업은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주목하는 사업이다.
이 회장은 14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케이콘 LA 2026’의 비비고 부스를 찾아 미국에서 판매되는 김치 누들을 시식한 뒤 “킥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국내에서는 비비고 라면을 판매하지 않는다. 국내외 식품시장의 서로 다른 경쟁구도가 CJ제일제당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만 라면을 선보이는 배경으로 꼽힌다.
국내 식품시장은 품목별 선두기업과 대표 브랜드가 사실상 정해져 있다.
라면은 농심과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즉석밥과 만두에서는 CJ제일제당이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냉장면에서는 CJ제일제당과 풀무원이 주요 사업자로 꼽힌다.
각 기업이 오랜 기간 생산시설과 유통망, 브랜드 인지도를 구축한 만큼 후발주자가 다른 회사의 주력시장에 진입해 점유율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 CJ제일제당 식품사업에서 해외 시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 CJ제일제당 본사. < CJ제일제당 >
특히 국내 라면시장은 농심과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4개 회사가 사실상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불닭볶음면처럼 기존에 없던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낼 정도로 제품을 차별화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기업이 생산시설과 판촉에 투자하면서 국내 라면시장에 진입해 얻을 실익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국내 라면기업들이 연구개발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CJ제일제당은 역시 국내 면사업에서는 냉장면과 냉동면 등 이미 경쟁력을 확보한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해외에서는 K푸드에 관한 관심이 만두와 김치 등 일부 대표 제품에서 라면과 소스, 가공밥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K푸드를 경험한 소비자들이 특정 제품을 넘어 다양한 맛과 형태의 한국 음식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CJ제일제당은 이런 흐름을 포착해 K푸드에 관한 관심을 라면과 누들로 넓히려는 소비자층을 타깃으로 누들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농심과 삼양식품이 신라면과 불닭볶음면을 앞세워 글로벌 라면시장을 직접 공략하고 있다면 CJ제일제당은 만두와 가공밥 등을 통해 쌓은 비비고의 인지도를 활용해 K푸드 제품군에 누들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실제로 누들은 CJ제일제당이 세계시장을 겨냥해 육성하는 글로벌전략제품(GSP) 가운데 하나다.
CJ제일제당으로서는 해외 라면시장 전체를 놓고 기존 업체들과 정면으로 경쟁하기보다 비비고를 통해 이미 K푸드를 접한 소비자에게 누들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하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
해외 누들 시장의 규모는 적지 않다.
CJ제일제당은 2024년 유럽에 컵우동 제품인 ‘비비고 우동누들’을 출시하면서 글로벌 상온 누들 시장 규모를 약 126조 원으로 추산했다. CJ제일제당이 2025년 CJ대한통운을 제외하고 연매출 17조 원가량을 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매우 매력적인 규모다.
글로벌 상온 누들 시장에는 라면뿐 아니라 우동과 파스타, 아시안 누들 등 다양한 면 제품이 포함된다.
당시 CJ제일제당은 “각 시장 환경과 소비자 성향을 고려한 맞춤형 전략을 통해 누들 라인업을 확대해 약 126조 원에 달하는 글로벌 상온 누들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본격적으로 활약하겠다”고 밝혔다.
CJ제일제당은 시장별 식문화와 소비자 취향에 맞춰 제품의 형태와 맛을 달리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볶음면, 유럽에서는 컵우동, 미국에서는 김치와 매운맛·바비큐맛 등을 내세운 라면을 판매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상온 파스타를 선보이는 방식으로 국가별 누들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CJ제일제당 식품사업에서 해외시장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CJ제일제당의 2025년 해외 식품사업 매출은 5조9247억 원으로 국내 식품사업 매출 5조5974억 원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2026년 2분기 해외 식품사업 매출은 1조5072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1% 증가했다. 유럽 매출은 만두와 치킨, 누들 판매 호조에 힘입어 19% 늘었고 아시아·태평양 지역 매출은 21% 증가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다양한 맛과 형태의 면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며 “비비고 라면도 라면사업 자체에 힘을 싣기보다 K푸드 라인업을 갖추고 글로벌전략제품인 누들 카테고리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