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새 수출입은행장 앞에 놓인 과제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최 행장은 기획재정부에서 여러 차례 한국경제의 위기관리를 한 경험을 살릴 것으로 기대된다.
3일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최종구 새 은행장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의 임명을 거쳐 6일부터 임기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이덕훈 행장은 3일 이임식을 열고 행장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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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구 한국수출입은행장 내정자. |
수출입은행은 1976년 설립 이후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적자를 내는 등 산적한 문제를 안고 있어 최 행장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최 행장은 우선 조선업과 해운업의 구조조정에 집중해 수출입은행의 위험성을 낮춰 수익을 정상화하는 데 힘쓸 것으로 보인다.
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해양과 관련해 선수급환급보증(RG)으로 9조 원가량의 위험노출금액(익스포저)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조 원가량의 순손실을 낸 것도 국내 조선업이 부실해지면서 대규모 충당금을 쌓은 데 따른 것인데 대우조선해양이 무너질 경우 대규모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
해운업 지원을 위해 한국선박해양에 4천억 원, 해양보증보험에 1150억 원의 자금을 투입한 데 이어 올해 1조 원 규모로 만들어질 글로벌해양펀드에 산업은행과 함께 출자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해운업의 회생 역시 중요하다.
조선업과 해운업의 구조조정은 현재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최 행장이 오랜 기간 재정경제부와 기획재정부에서 일한 만큼 관료 출신의 장점을 살려 구조조정 과정에서 역량을 발휘할 여지가 충분한 셈이다.
최 행장은 2000년대 초반 북핵위기가 터졌을 때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과장으로 일하며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기관을 찾아 대외신인도를 지키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유럽발 금융위기 때는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을 맡아 환율방어의 최전선에 서는 등 위기관리 경험이 많아 수출입은행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 행장은 국내 기업의 수출을 돕는 수출입은행 본연의 업무인 수출신용기관(ECA) 역할에도 충실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올해 해외수주를 위한 정책금융으로 모두 10조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해보다 2조2천억 원 늘었다.
수출입은행은 국내 수출 정책금융의 선봉장으로 기존에 운영하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과 수출금융자금 외에도 올해부터 원조와 수출금융의 중간성격을 지닌 신흥국 경협증진자금(개발금융)을 새롭게 운영한다.
최 행장은 재무부, 재정경제부, 기획재정부에서 일하는 동안 대부분 국제금융 관련 업무를 맡았다. 국제금융 전문가로 손꼽히는 만큼 수출입은행의 수출지원 업무에서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공직생활을 오래해 경영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은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최 행장은 2014년 말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에서 물러난 뒤 2016년 초 SGI서울보증 사장에 올라 1년 남짓 회사를 이끈 것이 경영경험의 전부다.
경영은 실무와 달리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을 조절하고 정치적인 사안들을 풀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수출입은행은 현재 성과연봉제 도입을 두고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내년에 수출입은행을 공기업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점도 부담이다. 국책은행이 공기업으로 지정될 경우 정부의 입김이 강해진다는 점에서 노조는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 행장은 소탈하고 격식을 따지지 않는 스타일로 재정경제부 과장과 국장 시절 노조가 뽑은 ‘닮고싶은 상사’에 여러 차례 선정됐다. SGI서울보증 사장에 취임한 뒤에도 업무처리 방식 등을 놓고 내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래 직원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과 경영현안을 정치적으로 풀어내는 능력은 다르다. 최 행장은 정부와 노조 사이에서 문제를 완만히 조율해야 할 낯선 과제를 안은 셈이다.
2014년 기획재정부는 21년 만에 수출입은행장에 민간 출신인 이덕훈 행장을 앉혔다가 3년 만에 다시 옛 재무부 출신을 앉혔다.
수출입은행장은 수출입은행법에 따라 사장추천위원회 등의 공모절차 없이 기획재정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수출입은행장의 선임을 위해 임원추천위원회를 의무적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 행장은 수출입은행의 위기를 잘 넘겨 현재 수출입은행장 선임 방식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도 안은 셈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