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에너지 패권을 다시 잡기 위해 이란 전쟁을 벌였다면,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5년 10월30일 부산 김해공군기지 의전실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가진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국의 최대 석유 수입국인 이란을 미국의 손아귀에 넣어서 중국을 압박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개전 며칠 만에 이란 지도부를 제거하고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장담대로라면, 트럼프는 애초 계획된 4월 초 중국 방문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서 양국 관계를 요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란전쟁은 미국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란은 신속히 지도부를 교체했고, 미-이스라엘의 공격을 선방했고, 오히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며 미국 등 세계 경제의 목줄을 쥐었다.
4월8일 휴전 이후 전쟁은 교착 상태에 빠졌고, 종전을 서두르는 쪽은 오히려 미국이 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겨냥해 이란전쟁을 감행했는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만 보면 적어도 중국은 이란전쟁의 파장에 대비한 준비와 면역력을 보여줬다.
트럼프 1기 집권 때 대중국 글로벌 공급망 분리 시도에 이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은 시진핑 중국 주석은 3연임 직후인 2023년 “극단적 상황”을 상정하는 극단 사고를 주문했다. 그는 에너지·식량·첨단기술 수입이 봉쇄되는 최악의 지정학적 쇼크를 상정하고, 경제·산업 체제를 사실상 전시 경제에 가까운 방향으로 재편해왔다.
그 결과 2026년 현재 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임에도 불구하고, 이란전쟁의 에너지 쇼크 속에서 상대적으로 준비된 경제로 평가된다. 중국 석유 수입의 약 40%,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의 약 3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태양광 및 풍력 등 대체 에너지, 배터리 및 전기차 개발, 여전히 높은 석탄 발전 비중 덕분에, 전체 에너지 자급률은 약 80%에 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중국은 수입하는 원유를 러시아로부터 약 17.5%,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약 15% 등 다수 공급원에서 원유를 분산 수입하며 특정 산유국·해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왔다. 이 때문에 중국은 해외로 수입하는 석유의 20% 내외를 이란에서 가져오나, 이는 중국이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1.5%에 불과하다는 계산도 있다.
중국은 지난 10여 년간 화석연료 의존도를 의도적으로 낮추며 에너지 믹스를 재편해 왔다. 비(非)화석연료 비중은 전체 에너지 공급의 약 40% 수준까지 상승했다. 10년 전의 25%에서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태양광·풍력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는 이미 중국 가구 전력의 절반가량을 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원유·가스 가격 급등이 전력망과 산업 전반을 뒤흔드는 충격은 한국·일본 등 이웃 국가보다 아직까지 훨씬 제한적이다.
오히려 중국이 이란전쟁이 야기한 세계적 에너지 쇼크를 완화하는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한다고 블룸버그는 유럽의 주요 투자·금융 회사들을 인용해 평가하기도 했다. 중국은 지난 수년간 전략비축유(SPR)와 상업 비축을 공격적으로 늘려왔다. 일부 추정에 따르면 정부·국영기업이 활용 가능한 비축 규모가 최대 10억~14억 배럴 수준에 이른다는 평가도 있다.
에너지 컨설팅사들은 이란전쟁이 장기화하면 중국이 4~6주 동안 하루 최대 100만 배럴 안팎까지 상업 비축유를 방출해 정제 공장 가동 중단을 피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 국내 시장만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수요를 일부 흡수하고 재고를 시장에 되돌려 보내 유가 상단을 눌러주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중동 전쟁이 길어질수록 유가를 좌우하는 변수는 이란의 미사일이 아니라 중국의 비축유 밸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바클레이즈 은행의 경제분석가들은 “지난 10년간의 재생에너지 투자와 전기화로 중국의 ‘에너지 충격 노출도’가 근본적으로 줄었다”며, 석유·가스는 이제 중국 전력 생산에서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밀려났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도 이란전쟁은 중국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 등 대체에너지 산업의 진출을 가속할 기회를 주고 있다.
이란전쟁에 가장 타격을 받는 한국, 일본, 인도, 동남아 각국은 재생에너지, 전기차, 배터리 산업으로의 전환을 더욱 서둘 수밖에 없게 됐다. 중국은 이미 태양광 패널, 배터리, 전기차에서 압도적인 생산·수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블룸버그는 “아시아 각국이 에너지 안보를 위해 중국 모델을 따라갈수록, 중국 청정에너지 수출은 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도이체방크의 전망을 전했다. 특히 전기차의 확산은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기업의 규모의 경제를 키워 해외 시장에서도 가격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중국 수출의 경쟁력 강화도 예측된다. 이란전쟁과 고유가로 베트남, 타이,인도네시아 등 중동 의존도가 높은 제조·수출국은 생산비와 물류비 상승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반면 중국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와 대규모 비축으로 에너지 충격을 부분 흡수하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생산·수출 여건을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에너지 가격에 민감한 경공업·중간재 분야에서 중국이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고 전망된다. 이란전쟁이 종전이 되더라도, 페르시아만 일대의 파괴된 석유 시설 때문에 유가는 당분한 고공행진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도이체방크, 바클레이즈, 롬바드 오디에 등은 “경제·에너지 구조 관점에서 이번 중동 전쟁의 최대 승자는 중국”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에너지 패권을 다시 잡기 위해 이란 전쟁을 벌였다면,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이란전쟁이 초래한 에너지 쇼크에 중국은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전 세계는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더 줄여나가는 계기가 되고, 이 과정에서 압도적인 경쟁력 우위를 보이는 중국 산업이 더 수혜를 입는 구조가 펼쳐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작된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를 돌파하기 위한 탈달러화 결제도 확산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 인도 등은 이미 상대국과의 무역에서 자국 통화결제를 확산하고 있고, 특히 위안화가 그 중심이 되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며 비달러화 결제를 강요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큰 효과가 없겠지만, 그 상징성은 작지 않다. 중동 산유국들도 이란 전쟁에서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준 미국에 대한 헷징으로 위안화 등의 결제를 확산시킬 것이 분명하다.
희토류를 지렛대로 한 중국의 영향력도 커질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이란전쟁에서 자신들 군사력의 주축인 고가의 고도정밀유도무기 재고의 30~80%를 소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무기 재고들을 채우려면, 6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 무기 제조에는 희토류가 필요하다.
물론 종전이 멀어지고 전투가 재개돼 장기화된다면, 중국 역시 입을 피해는 막대하다. 장기적으로 이 위기에서 누가 승자로 올라설지 역시 불투명할 수 있다. 하지만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중국과 오래된 에너지 패권 패러다임을 고집하는 미국 가운데 누가 미래에 더 대처할지는 쉽게 알 수 있다.
트럼프는 오는 14~15일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 이 방문에 앞서 미국은 지금 이란 전쟁 종전의 틀을 규정하는 양해각서조차도 합의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이란 전쟁이라는 짐을 어깨에 멘 트럼프가 시진핑과 어떤 거래를 할지 두고 보자. 어쩌면 그는 시진핑에게 종전을 위한 노력을 구걸할지도 모른다. 정의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