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란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정부가 제시한 연간 2% 성장률 목표에 비상이 걸렸다. 

경기 방어를 위한 추경 집행 등 재정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물가 안정을 위한 긴축 기조도 필요해 ‘정책적 딜레마’에 봉착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란전쟁 충격에 '2% 성장률 목표' 비상, 정부 물가·금리 고차방정식 풀어야

▲ 22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 앞에 유가가 게시돼 있다. <연합뉴스>


25일 정부와 관련 업계 흐름을 종합하면 국제유가와 나프타 등 핵심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제조업 전반의 비용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특히 석유화학, 정유, 철강 등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업종을 중심으로 수익성 악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기업들은 생산 축소와 투자 지연 가능성까지 검토하고 있어 실물경제 둔화 신호도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에너지 공급 차질은 산업 현장을 넘어 일상 소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나프타 재고가 길어야 2~3주 수준에 불과하다. 나프타는 전체 소비량의 절반만 국내에서 생산하고 나머지는 수입을 하는데 전체 소비량의 절반의 공급이 안되다 보니 지금 난리가 난 것”이라며 “플라스틱 계열 (제품) 거의 100%를 나프타로 만드는데 당장은 종량제봉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아이스아메리카노도 용기가 없어서 사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란전쟁에 따른 위기에 대응해 민생안정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물가 안정과 취약계층 지원에 전방위적으로 나서고 있다.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한 데 이어 조속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과 민생지원금 지급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다만 공급 제약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확장 재정이 수요를 자극하면 생산비 상승 압력이 소비자 가격으로 전이되는 속도를 높여 ‘2차 물가 충격’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으로 번지는 국면에서 재정 지출 확대를 실질 수요가 늘어나면 물가 안정 기조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통화정책 변수도 부담을 키우고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물가와 금융 안정을 중시하는 ‘실용적 매파’로 평가되면서 시장에서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김진욱 씨티은행 연구원은 최근 리포트를 통해 “빠르면 신 후보자가 처음으로 주재하는 5월28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금리 인상 시그널이 나올 수 있다”며 “신 후보자는 인플레이션의 파급효과와 과잉 유동성이 주도하는 완화적인 금융 여건에 관한 명확한 지표를 확인하면 통화 긴축을 선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공급 충격 등 대외 변수에 따라 통화정책을 신중하게 운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나오면서 금리 인상 여부와 시기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큰 상황이다.

문제는 금리 인상이 경기 회복 흐름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금리 부담이 누적된 상황에서 추가 인상은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를 동시에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부채 비중이 높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부담이 빠르게 확대될 수 있다.
 
이란전쟁 충격에 '2% 성장률 목표' 비상, 정부 물가·금리 고차방정식 풀어야

▲ 청와대는 22일 이재명 대통령이 신임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로 신현송 국제결제은행 통화경제국장(사진)을 지명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이에 정부와 통화당국이 물가 안정과 경기 방어라는 상충된 목표 사이에서 정교한 정책 조합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정은 경기 하방을 떠받치고 통화정책은 물가를 억제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지만 두 정책이 서로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는 점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공급 충격이라는 외생 변수에 더해 재정정책, 통화정책, 환율, 글로벌 경기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국면인 셈이다.

이에 따라 단기 처방보다 정책 일관성과 신뢰 확보가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과 경제 주체들이 정책 방향을 명확히 예측할 수 있어야 기대 인플레이션을 안착시키고, 불확실성에 따른 투자 위축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 후보자는 22일 “지금과 같은 엄중한 시기에 통화정책을 이끌게 된 것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물가, 성장, 금융 안정을 감안한 균형 있는 통화정책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지 고민하겠다”고 지명 소감을 밝혔다.

공급 충격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물가와 경기,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지 정책 당국의 대응 역량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