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민주당이 내란전담재판부 구성을 추진하는 가운데 돌발변수가 등장했다. 

대법원이 갑자기 서울고등법원에 내란전담재판부를 두겠다고 나선 것이다. 여권은 대법원의 움직임을 두고 '꼼수'라 비판하며 본회의 처리 방침을 재확인했다. 대법원이 늑장을 부리다 국민 신뢰도 잃고, 내란전담재판부의 위헌 소지를 스스로 없앴다는 평가가 나온다. 게도 구럭도 잃은 셈이다. 
 
대법원 '예규 급발진' 장고 끝에 악수 뒀나, 민주당 내란전담재판부 추진 탄력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귀엣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법원이 전담재판부 설치와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겠다고 한다. 이제 와서 뭐 하는 짓이냐"며 "내란·외환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당초 계획대로 추진하고 차질 없이 통과시킬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대법원이 서울고등법원에 내란전담재판부를 두겠다고 한 걸음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였으나 민주당은 외려 대법원의 행태를 두고 '꼼수' 지적하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대법원은 그동안 전담재판부 설치 자체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민주당과 대립각을 세워왔다.그는데 대법원은 전날 갑자기 내란전담재판부를 스스로 설치하겠다는 내용의 예규를 제정했다.

대법원은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2025년 12월 18일 개최된 대법관 행정회의에서 '국가적 중요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번 예규에 △형법상 내란의 죄와 외환의 죄, 군형법상 반란의 죄 대상사건만을 전담하여 집중적으로 심리하는 전담재판부 설치 △전담재판부 무작위 배당 △전담재판부의 해당사건 집중 심리를 위한 기존 심리 사건 전면 재배당(일부 사건 재배당 예외 가능) △관계 재판부와 협의를 통한 대상사건 관련 사건 배당 △관련사건 배당 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담재판부에 새로운 사건을 배당하지 않음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를 두고 대법원이 내란전담재판부 구성의 필요성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대법원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자체가 사법권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며 민주당의 입법 움직임에 선을 그어왔다. 민주당의 요구를 두고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고집했다. 그런데 이번 예규는 대법원이 스스로 신속한 재판을 위해 별도의 재판부를 두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실제 대법원은 18일 보도자료에서 "대법관 행정국가적 중요사건 재판의 신속, 공정한 진행에 대한 국민과 국회의 우려에 대하여 이를 해소하기 위한 취지의 예규"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국민과 국회의 우려가 1년 동안 이어졌음에도 '위헌 소지'를 방패로 삼았다고 하루 아침에 뒤집은 셈이다.   
 
하지만 대법원 예규는 민주당의 요구를 전면 수용한 것은 아니다.

먼저 대법원의 예규는 민주당의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과 달리 '기존 법원 조직+무작위 배당'을 핵심으로 한다. 서울고등법원의 10여 개 형사재판부에 무작위로 배당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달라질 게 전혀 없는 것일 수 있다. 애초 내란 재판은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이뤄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은 별도의 '추천위원회'를 통해 전담재판부 법관을 임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사법부 독립' 침해 논란을 고려해 법원 외 인사를 추천위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민주당이 양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여권의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법안은 항소심·상고심 각각 3개월 이내 선고, 재판 과정의 녹음·녹화·촬영 원칙적 허용, 영장전담판사 설치 등을 담고 있다. 이들 내용은 대법원 예규에 들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 대법원이 내란전담재판부를 설치하겠다고 나선 시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22~24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래서 법안 통과가 확실시 되자 대법원이 이를 막기 위해 뒤늦게 예규 제정이라는 '역공'을 펼친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대법원의 이런 행태는 도리어 민주당을 자극한 듯한다. 

정 대표는 19일 최고위원회에서 "민주당이 내란·외환전담재판부 설치 특별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자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놓은 것"이라며 "대법원 예규는 예규일 뿐이고 언제든 변경 가능하다. 예규는 바람 불면 꺼지는 촛불과도 같다"고 못박았다.

대법원이 이 시점에서 예규 제정 카드를 꺼내든 것은 '사법부 권위'를 지키겠다는 계산의 결과로 보인다.  
 
대법원 '예규 급발진' 장고 끝에 악수 뒀나, 민주당 내란전담재판부 추진 탄력

▲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18일 국회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부는 이번 내란 사건에서 국민적 불신을 여러 차례 자초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지귀연 재판부는 '날'이 아닌 '시간' 단위로 구속 기간을 계산해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취소를 결정했다. 올해 말로 스스로 공언한 선고 예상 시기를 내년으로 미루기도 했다.

무엇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며 '대법원의 선거 개입' 의혹을 스스로 샀다.

이런 상황에서 사법부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내란 사건 자체보다 이를 계기로 사법개혁 논의가 본격화할 가능성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내란전담재판부가 국회의 입법으로 설치되면 사법부에도 외부(국회)의 제도적 통제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사실상 최초의 전례가 생긴다. 그동안 사법부는 이른바 사법권 독립을 근거로 '그들만의 왕국'을 구축하고 있었는데 이제 외부의 통제가 들어가기 시작하는 셈이다. 

대법원이 내란전담재판부 구성을 국회의 법안 의결이 아니라 자체 예규로 설치하려 한 점이 이런 사정을 방증한다.

나아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은 법률에 의한 법원 개혁의 물꼬를 트는 계기도 될 수 있다. 법원이 가장 경계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라는 관측이 많이 나온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5일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2025년 정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최근 사법제도 개편을 둘러싼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며 "특히 제도가 그릇된 방향으로 개편된다면 그 결과는 우리 국민에게 직접적이며 되돌리기 어려운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일체의 법원 개혁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법원개혁을 밀어붙일 모양새다.

정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외환죄 전담재판부 설치 특별법과 사법개혁안은 당초 계획대로 차질 없이 통과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