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제헌절이 노는 날이야, 출근하는 날이야?"

정부와 여당이 제헌절을 공휴일로 재지정하는 절차를 밟기 시작하면서 제헌절의 '얄궂은 운명'이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계엄 선포로 헌법의 중요성을 일깨워 공휴일 재지정에 한 몫을 단단히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8년 만의 제헌절 공휴일 복귀 급물살, '반헌법 윤석열'이 한 몫 했다

▲ 서범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 위원장이 18일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정치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여권은 제헌절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는 절차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앞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는 17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제헌절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공휴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법률 개정안은 행안위 전체회의와 본회의 등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향후 제헌절은 무난히 공휴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 여론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공휴일 확대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것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주 4.5일 근무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점도 작용한 듯 보인다. 주 4.5일제 논의로 휴식권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제헌절 공휴일 부활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는 9월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를 통해 '국정과제 관리계획'을 확정하고 앞으로 향후 5년간 국정운영의 핵심 로드맵인 123대 국정과제를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이날 확정된 국정과제 관리계획에는 주 4.5일제 지원 시범사업 실시도 포함됐다. 주 4.5일제는 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이기도 하다.

원래 제헌절은 50년 넘게 공휴일이었다. 역설적이게도 2005년 주 5일제 도입 과정에서 공휴일에서 '탈락'하는 비운을 겪었다. 

제헌절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6월30일 시행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안에 따라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최경수 당시 국무조정실 차관은 2005년 3월2일 이해찬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에서 "공무원의 주 40시간제가 도입되면서 공휴일을 2~3일 축소하자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며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검토하고 의견을 수렴한 결과 이처럼 기본적인 가닥을 잡은 것"이라고 제헌절의 공휴일 제외 사유를 밝혔다.

당시 재계는 제헌절뿐 아니라 공휴일을 더 없애야 한다며 강하게 요구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5단체는 2005년 4월11일 개천절을 공휴일에서 제외하고 2012년부터 어린이날과 현충일도 공휴일에서 빼는 내용의 정책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역사적으로 제헌절은 귀중한 대접을 받아왔다. 1950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58년간 공휴일로 이어졌다. 심지어 '대체 휴일'이란 개념이 생소하던 1960년에 대체 휴일로 적용될 정도였다.

3·1절, 광복절, 개천철과 함께 '절'로 끝나는 중요 국가 기념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의 중요성에서 비롯됐다.

일찍이 대한민국 초대 국회는 헌법을 제정한 제헌 국회였다.

1948년 5월10일 미군정법에 근거해 유엔 감시 아래 선거 가능 지역에서 자유총선거가 처음으로 실시됐다. 그 결과 198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제헌 국회가 구성됐다. 

이후 헌법기초위원회가 설치되었고 헌법학자들이 초안을 작성했다.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헌법기초위원회에서 작성한 헌법안을 3회독하며 최종 성안했다. 그리고 마침내 1948년 7월17일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됐다.

그리고 1949년 10월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공포돼 국경일 및 공휴일로 지정되고 1950년 7월17일부터 시행됐다. 
 
18년 만의 제헌절 공휴일 복귀 급물살, '반헌법 윤석열'이 한 몫 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3일 밤 서울시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며 계엄령을 선포하고 있다. <대통령실>


그런데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상황이 15년 넘게 이어진 가운데 2024년 '중대 변수'가 등장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국회는 이를 즉각 물리쳤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2025년 4월4일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반헌법적이라고 판단해 그를 파면했다.

이렇게 헌정질서가 회복됐고, 국민은 새삼 헌법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제77주년 제헌절인 올해 7월17일 서울시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지난해 12월3일 군사 쿠데타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국민은 그야말로 헌법이 정한 주권자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 민주 헌정질서를 회복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제헌절은 헌법이 제정·공포된 것을 기념하는 날임에도 이른바 '절'로 불리는 국가기념일 가운데 유일하게 휴일이 아닌 것 같다"며 "이를 특별히 기릴 필요가 있기 때문에 휴일로 정하는 방안을 검토해봤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