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글로벌 전문가' 사령탑에 앉히다, 조용철 '지상과제'는 해외시장 비약 확대

▲ 농심은 제2의 글로벌 시장 도약을 이끌 새 사령탑에 조용철 신임 대표이사 사장을 내정했다. 사진은 조용철 신임 대표이사 내정자. <농심>

[비즈니스포스트] 농심이 제2의 글로벌 시장 도약을 이끌 새 사령탑에 삼성 출신 ‘영업통’ 조용철 영업부분장을 내정했다. 

농심은 최근 수출 생산거점을 착공하고 글로벌 마케팅을 강화하며 해외 공략을 본격화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농심은 올해 해외시장을 확장하고 2030년까지 매출과 영업이익을 2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런 때 농심 수장에 오르는 조용철 사장은 해외에서 구체적 실적 성과를 본격화하고 2030 목표의 가시성을 높여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21일 농심은 조용철 영업부문장 부사장을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내정했다고 밝혔다. 

1962년 1월 태어난 조 사장은 서강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12월 삼성물산에 입사해 글로벌 마케팅실과 동남아 총괄 마케팅 팀장, 태국 법인장 등을 거친 ‘해외통’으로 평가받는다. 농심에는 2019년 12월 마케팅부문장 전무로 합류했다. 올해부터 영업부문장 맡아 국내외 영업을 총괄해왔다. 

농심 관계자는 “해외시장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현장 감각을 보유한 글로벌 전문가를 대표이사로 선임함으로써 급변하는 글로벌 트렌드에 대응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지속 가능한 미래 성장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라고 말했다.

기존 이병학 농심 대표이사 사장은 앞으로 고문 역할을 맡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이 사장은 농심에서 36년 동안 생산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생산 관리 전문가다. 

조 사장을 새 대표로 발탁한 것은 해외 확장을 위한 생산거점에 관한 중기적 의사 결정이 부산 녹산 수출전용공장을 짓는 쪽으로 마무리되면서 해외시장에서 가시적 성과를 일궈내는 데 더욱 집중하겠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농심은 국내 라면시장에서 56% 수준의 압도적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지만 해외에서의 위상은 크게 못 미친다. 내수 경기 침체 속에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40%가량을 보이는 해외 매출 비중이 농심 수익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해외 매출 비중이 80%에 이르는 삼양식품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20%에 육박했지만, 농심은 4.7%에 그쳤다. K푸드 열풍이 불고 있는 해외에서는 정부 통제에서 벗어나 수익 극대화를 고려한 가격을 설정하기에도 유리하다.

농심은 최근 해외사업에 있어 일대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회사는 낮은 수익성과 기업가치 저평가에 관한 시장의 지적이 이어지자 5월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통해 2030년 매출 7조3천억 원을 달성하고 영업이익률을 10%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해외매출 비중은 2030년 61%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농심은 해외시장 확대를 올해 최우선 경영 목표로 설정하고 현지 마케팅 강화·증설투자·신제품 출시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다.

때마침 올해 들어 농심 스낵 제품 ‘바나나킥’이 미국 유명 토크쇼에서 화제가 되고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에 농심 연상시키는 제품 등장하는 등 해외시장에 이름을 알릴 호재도 잇따랐다. 

농심은 7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신라면 국내외 통합 브랜드 슬로건(SHIN)을 정하고, 수출용 포장에 한국 1등이라는 뜻의 ‘Korea No.1’을 새기며 해외 판매 확대에 나섰다. 9월부터는 케데헌 협업 제품을 미국에 내놓고 품목과 현지 입점 채널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라면의 첫 글로벌 앰배서더로 걸그룹 ‘에스파’를 발탁했다.

신춘호 선대회장 시절부터 이어온 ‘한국의 맛’ 그대로 해외에서 승부한다는 전략적 방향성도 틀었다. 지난해 10월 해외 소비자 입맛을 고려한 볶음면 ‘신라면툼바’를 출시했고, 올해 말에는 아예 해외시장을 겨냥한 ‘신라면 김치볶음면’ 글로벌 판매를 시작한다. 

한국인 수요가 집중된 국물 라면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에 넓은 수요층을 갖춘 볶음면으로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조 사장은 이 같은 변화의 시점에 농심 운전대를 잡게 됐다.

그의 주요 당면 과제는 외형 축소세를 나타내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의 반등을 이끄는 것이다. 북미 시장은 농심 해외 매출의 약 60%를 차지하는 해외 최대 시장이다. 

농심은 올해 초 신제품 신라면툼바 북미 출시 및 현지 생산을 고려해 북미법인 연간 매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약 30% 증가한 8천억 원으로 잡았다. 하지만 올해 1~3분기 북미 누적 매출은 448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3.4% 역성장을 기록했다.
농심 '글로벌 전문가' 사령탑에 앉히다, 조용철 '지상과제'는 해외시장 비약 확대

▲ 농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신라면 트램 광고 이미지. <농심>

앞서 2022년과 2023년 농심 북미법인 연간 매출은 2022년 5월 미국 2공장이 가동에 들어간 데 힘입어 전년보다 각각 38.3%, 10.3% 크게 신장했다. 하지만 애초 미국 3공장 건설 계획을 부산에 수출전용 공장을 짓는 것으로 변경하면서 현지 판매 확대 동력이 점차 사그라들고 있는 것이다.

증권업계에서는 4분기부터 농심이 미국에서 케데헌 협업 제품 판매를 본격화하며 실적을 회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10월 미국 내 신라면 브랜드 매출은 지난해 10월보다 30%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내년 1분기까지 판매할 것으로 예상되는 농심의 케데헌 협업 상품은 글로벌 전체 500억 원 규모로 3조 원이 넘는 연간 매출과 비교해 미미한 수준이다.

조 사장으로서는 협업 제품 성과를 글로벌 브랜드력 강화로 이어가며 단발성이 아닌 구조적 판매 볼륨 확대로 이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은 셈이다.

올해 3월 현지 법인을 설립한 유럽시장을 키워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해외 매출 비중을 4년 만에 20%포인트 넘게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주력 시장을 키워내는 일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농심은 올해 1~3분기 유럽에서 매출 329억 원을 기록했다. 내년에는 서유럽 판매 확대와 동유럽 신규 채널 진입을 통해 매출 1300억 원을 올리는 게 목표다. 유럽에서도 기존 주요 제품의 입점 확대와 함께 현지 식문화 맞춤 제품을 개발하는 투트랙 전략을 펼칠 계획을 세웠다.

하희지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미국 케데헌 협업 제품 판매 실적이 4분기부터 본격 매출에 반영되고 유럽 법인 거래선 정비도 대부분 마무리돼 내년 서유럽 분포가 확대된다”며 “내년 하반기 녹산 수출 전용공장까지 완공되는 점을 고려하면 농심 해외 확장에 더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농심의 해외사업 확대 전략이 구체화한 가운데 조 사장의 경영 행보에 따라 중장기 기업가치 행방이 크게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3공장 대신 착공에 들어간 부산 수출전용공장이 완공되면 농심의 연간 수출용 라면 생산능력은 12억 개로 기존보다 약 2배 늘게 된다.

조 사장이 최근 농심의 전방위적 투자를 바탕으로 2030년 목표에 다가서는 보폭을 키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