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신 3사 최고경영자들이여! 삼양식품 본받아 내년 경영화두로 '절치부심'을! <비즈니스포스트>
'내돈내산'이 아닌 삼양식품이 기자 시식용으로 언론사에 돌린 것을 먹어봤고, 그래서 시식이라고 표현했다고 미리 밝혀둔다.
그래서 어떤 맛이냐고?
'라알못'(라면 맛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 솔직히 기존 라면과 맛이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다. 라면 봉지에 '우지로 맛을 낸 고소한 면과 깊고 진한 풍미의 프리미엄 라면'이라고 적혀 있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뭔가 거룩해 보이기까지 하는 라면 봉지 디자인을 통해 '절치부심' 맛이 전달됐고, 덩달아 군 복무 시절 추억이 떠올랐다.
공업용 우지를 썼다는 제보로 불거진 '우지라면 파동' 당시 병으로 군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라면을 엄청 많이 먹은 기억이 있다. 지금 그랬다가는 자식을 군에 보내놓고 노심초사하는 부모들이 들고 일어날 게 뻔하지만, 당시에는 사회에서 식품 파동이 나면 군납을 뚫어 재고를 해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라면이 나오는 날은 식판의 밥과 국을 담는 곳을 다 채울 정도로 푸짐하게 배식이 이뤄졌고, 야간 경계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는 어김없이 라면을 끓였다. 요즘처럼 쌀쌀해진 날씨에 초소에서 덜덜 떨다가 라면을 봉지채 군홧발로 밝아 부순 뒤 죽처럼 끓여 숟가락으로 퍼먹는 맛은, 죽인다. 물론 가을만 돼도 밤 체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전방에서 군 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이 맛을 모를 수도 있다.
참고로 1980년대 후반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한 기자는 라면 뿐만 아니라 햄도 무척 많이 먹었다. 식판 오른쪽 국 담는 곳에 햄을 수북히 담아줄 때가 많았다. 물론 라면과 햄 모두 맛있게 잘 먹었고, 좋았다.
삼양식품은 우지라면 파동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아 고사 지경까지 몰리면서도 '식용 우지를 썼다. 먹는 것 갖고 장난치지 않았다'고 눈을 부라렸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이어진 소송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삼양식품 우지(소고기) 라면이 식품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게 입증된 것이다.
하지만 해당 라면 제품은 이미 단종됐고, 회사 이미지와 식품 회사로써의 신뢰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 삼양식품 창업자 며느리 김정수 대표이사 부회장이 3일 서울 중구 보코서울명동 호텔에서 열린 신제품 발표회에서 '삼양1963' 제품을 내보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그리고 36년 만에 우지라면 파동으로 단종됐던 소고기 라면을 '삼양1963'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시했다. 출시일도 우지라면 파동이 인 11월3일에 맞췄고, '프리미엄 라면'으로 앞세웠다.
김정수 삼양식품 대표이사 부회장은 “1989년 11월,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여론 속에서 공업용 우지라는 오해로 공장의 불이 꺼지고 수많은 동료가 떠났다”며 “하지만 삼양식품은 절치부심하며 다시 일어섰고 불닭볶음면으로 부활했다”고 말했다. 또한 “삼양1963은 단순한 복고제품이 아니고 명예의 복원이자 진심의 귀환”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회장은 삼양식품 창업자 고 전중윤 명예회장의 일화도 소개했다. 김 부회장은 전 명예회장의 며느리다. “1963년 바로 이곳 남대문시장 앞에서 미군 부대에서 나온 꿀꿀이죽을 먹기 위해 줄을 서던 국민들을 보고 ‘지금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한 끼의 따뜻한 밥이다’라고 말씀했다. 그 결심이 한국 라면의 시작이자 삼양식품의 출발점이 됐다.”
절치부심 고사성어를 되뇌며 라면을 시식하다 문득 스마트폰 시장 초기 삼성전자의 절치부심 모습이 떠올랐다.
애플이 아이폰을 선보인 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기기·서비스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애플의 터치 방식 아이폰 출시에 기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서리맞은 꼴이 됐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두 업체 경영진이 보인 자세는 달랐다. 그리고 운명이 갈렸다.
"아이폰을 따라가려면 3년 이상 걸리고, 그나마도 따라잡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지금 당장은 뭘 할 수 있는 게 없다."
LG전자 휴대전화 사업 총괄 사장이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탄식하듯 한 말이다.
기자간담회장도 썰렁했다. 신제품이나 새 기술을 전시하지도, 기자간담회 보도자료를 내놓지도 않았다.
이어 열린 삼성전자 기자간담회. 최지성 삼성전자 휴대전화 사업 총괄 사장이 '독기'를 내뿜었다.
"애플의 터치 방식 기술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우리(삼성전자) 감압식 기술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아니다. 두고봐라. 반드시 감압식 시대가 올 것이다. 특히 투 바이트로 글자를 구현하는 비영어권에서는 감압식이 유용하다."
터치식은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해 쓰게 하는 방식이고, 감압식은 압력을 가하는 방식이다.
"이미 만들어진 콘텐츠를 보거나 이용할 때는 터치 방식이 편할 수 있지만, 콘텐츠를 만들 때는 감압식이 더 정확하고 편하다."
최 사장은 끝까지 '감압식 윌 비 백'을 외쳤다.
삼성전자는 이후 절치부심하며 애플의 터치 방식을 따라갔고, 햅틱(떨림으로 반응을 느끼게 하는) 같은 새 기술을 덧입히기도 했다. 기존 감압식 기술 혁신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 삼성전자 '갤럭시노트 9' 모습. <삼성전자>
몇년 뒤 삼성전자는 대화면에 펜을 갖춘 '갤럭시 노트'를 내놔, 대박을 터트렸다. 스마트폰 시장을 크게 키우고 흔들었다.
이제는 애플이 삼성전자를 따라 대화면을 채택해야 할 지 말 지를 고민하는 형국이 됐다. 이후 스마트폰, 패드(북 리더 등 포함), 노트북으로 나눠져 있던 모바일 기기 시장이 스마트폰과 대화면 노트북으로 재편됐다.
반면 LG전자 휴대전화 사업은 이후 시들시들하다가 구광모 회장 취임 뒤 정리됐다.
갑자기 웬 고사성어 타령이냐고?
통신 3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새해 경영 화두로 절치부심을 권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우리나라는 한때 '디지털 강국' 내지 '인터넷 강국'으로 통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통신망 속도가 빵빵했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수용력도 높았다.
2002년 월드컵 때는, KT가 취재 차 우리나라를 찾은 기자들을 강원도 산골 토마토농장으로 불러 초고속인터넷 이용이 일상화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산골 농장서 초고속인터넷을 통해 방송 생중계도 가능한 모습에 외국 기자들은 입을 딱 벌렸다.
이후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를 개발할 때마다 테스트베드로 우리나라를 찾았고, 전 세계 스타트업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지금은 어떤가.
통신망 속도 순위는 개발도상국에도 밀릴 정도로 떨어졌고, 안정성도 뒤처졌다. 올해 줄줄이 터진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서 드러났들이, 통신망 보안 수준도 엉망이 돼버렸다.
해커들이 조롱하듯 통신망을 뚫고 헤집어놓는 사례가 이어진다.
통신사들이 본분을 망각한 결과다. 통신 문외한 CEO들이 '통신망 고도화' 본분을 저버리고, '탈통신'을 외치며, 스타트업과 벤처기업 몫이 돼야 할 골목상권에 발을 들여놓는 경쟁에 집중해와 이렇게 됐다.
통신 3사 최고경영자와 네트워크 책임자들 모두 쪽팔려하고 절치부심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늘 한발 더 고도화된 통신망 공급으로 전후방 산업 확장과 새로운 기술 흐름 주도'란 통신사 본분 경쟁에서 밀린 것을 한탄하며 독기를 품을 그릇이 못되면,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
특히 국민기업 지배구조를 갖고 '국가 통신사'를 자처해온 KT CEO는 더욱 그래야 한다.
SK텔레콤 새 최고경영자, KT 차기 CEO 선임을 맡고 있는 사외이사들, 연말쯤 선임될 KT 차기 CEO 후보 모두 참고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KT 차기 CEO는 반드시 우리나라 통신망 품질이 곤두박질쳐진 것을 탄식하며 절치부심할 수 있는 인사가 선임돼야 한다.
그래야 이재명 정부의 '모두의 AI' 전략이 빛을 발하고, 'AI 3대 강국' 목표를 이루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KT가 차별화된 통신망 전략을 앞세우면,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딴 생각에 빠진 사이 면이 불었다. 프리미엄 소고기라면 '삼양 1963'의 진짜 맛보기는 다음에 내돈내산으로.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