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미국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 무역 갈등 해소에 나서며 한미 무역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미중 양국은 고위급 협상에서 관세와 희토류 수출 통제 유예에 잠정 합의해 30일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확전 중단 선언 가능성이 커졌다.
 
미중 '무역 전쟁' 경주 APEC서 종전 전망, 한미협상 타결에도 청신호 되나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환영식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미중 무역 갈등의 봉합이 한미 무역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망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상대로 압박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방한을 계기로 '한미 협상 타결'을 또 하나의 전리품으로 챙기려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7일 경주 APEC 정상회의 주간이 개막했다. 정상회의는 오는 31일 예정돼 있지만 이날 최종 고위관리회의를 시작으로 공식 일정에 돌입했다. 최종 고위관리회의는 이날부터 이틀 동안 열린다.

고위관리회의는 APEC 회원 간 협력 사안을 논의하는 고위급 협의체로, 매년 공식 회의 4번, 비공식 회의 1번을 열고 그 결과를 정상회의에 보고하게 된다.

이번 경주 APEC 정상회의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첫 대규모 다자회의다. 공식 일정은 이날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엿새 동안 진행된다.

이번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오는 30일 부산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미중 정상회담도 열린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중 무역 갈등을 일단락짓는 합의가 최종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두 나라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25∼2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고위급 무역 협상에서 잠정 합의안에 도달했다. 앞서 양국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에 이어 미국의 대중국 관세 100% 추가 부과 등으로 무역 갈등이 깊어졌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협상을 진행한 뒤 26일 미국 NBC, ABC, CBS 방송과 나눈 인터뷰에서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가 1년 동안 유예되고 미국의 대중국 100% 추가 관세 부과도 시행되지 않으리라고 예상한다"며 "허 부총리와 함께 (무역 합의) 프레임워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같은 날 "양국은 미국의 중국 해운·물류·조선업에 대한 (무역법) 301조 조치와 상호 관세 중단 기간 연장, (합성 마약) 펜타닐 관세와 법 집행 협력, 농산물 무역, 수출 통제 등 양국이 함께 관심을 가진 중요 경제·무역 문제에 관해 솔직하고 심도 있으며 건설성이 풍부한 교류·협상을 했다"며 "각자의 우려를 해결하는 계획에 관해 기본적 합의를 이뤘다"고 보도했다.

무역법 301조는 외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해 관세 부과나 수입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미국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조항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발동해 미국 항만을 이용하는 중국 선박에 특별 수수료를 부과했다.

양국은 전 세계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무역 전쟁은 피하자는 데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이미 미국의 대중국 관세 인상으로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관세로 대미 수출이 전면 차단되는 상황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아직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첨단기술 경쟁에서 미국과 중국 간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대중국 기술 통제를 확대할 빌미를 주는 것은 손해라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중 '무역 전쟁' 경주 APEC서 종전 전망, 한미협상 타결에도 청신호 되나

▲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희토류 채굴장.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도 희토류 문제에 관해 시간에 쫓기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대응해 호주, 일본 등과 협력해 대체 공급선을 만들려 하고 있지만 자신의 대통령 임기(2029년 1월) 안에 공급망을 완전하게 구축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하지만 미중 협상의 진전과 별도로 한미 협상은 여전히 교착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애초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협상도 타결될 수 있다는 희망적 신호도 있었지만 한미 정부는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4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함께 대미 협상을 마친 뒤 귀국해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APEC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제 추가로 대면 협상할 시간은 없다"며 "APEC은 코앞이고 날은 저물고 있는데 APEC 계기 타결을 기대한다면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다만 미중 무역 갈등이 봉합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미협상 타결에 청신호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아시아 순방의 사실상 마지막 이벤트이자 하이라이트인 미중 정상회담에서 이뤄질 합의를 자신의 '승리'로 대대적으로 홍보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그의 정치·외교 스타일을 고려하면 한국과의 협상도 '전리품'으로 챙기고 싶어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27일 YTN '뉴스UP'에서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취임 후에 아시아의 첫 순방 일정에 아세안, 한국, 일본을 포함시켰다"며 "이 얘기는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용주 맥 정치사회 연구소장은 24일 YTN '뉴스퀘어10AM'에서 "트럼프 자체도 29일 APEC에 와서 이재명 대통령과 그래도 합리적인 결론을 돌출하고 중국과의 협상으로 넘어갈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미중 갈등이 봉합 수순에 들어가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무역협상의 최대 쟁점인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방안 등을 두고 압박 강도를 높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은 미중 정상회담 하루 전인 오는 29일 열린다.

이승훈 전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 부위원장은 27일 YTN '뉴스퀘어10AM'에서 "이번에 미중 협상이 너무 잘 타결돼 버리면 또 한국이 고립될 염려도 있다"며 "그래서 미중 협상의 속도도 봐야 할 것 같다. 그런 것까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보면서 이재명 정부가 협상을 잘 타결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정말 어려운 고비"라고 말했다.

서은숙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같은 날 YTN '스타트경제'에서 "일단은 시장에서는 긍정적으로 관세협상이 타결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면서도 "사실 최근에 10월24일 트럼프 대통령이 멘트한 내용을 보면 '한국이 준비되면 나도 준비됐다', '타결에 매우 가까워졌다'고 얘기를 했다. 직접 언급을 했는데 사실 (이 멘트들은) 트럼프식 테이블에서 쓰는 멘트"라고 짚었다.

한편 우리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 발표'라는 성과를 위해 미국 쪽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칙을 세웠다. 경주 APEC 정상회의를 넘길 수 있다는 시그널을 내놓으며 마찬가지로 부담 느끼는 미국을 압박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24일 싱가포르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과 협상이 한국의 금융시장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상호 이익을 극대화할 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인위적인 시한을 설정해 협상을 밀어붙이는 일은 피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