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레알 출신의 이선주 LG생활건강 신임 대표이사. < LG생활건강 >
하지만 대표 교체만으로는 반등을 기대하기는 이르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화장품 브랜드 ‘더후’에 쏠린 매출 구조, 중국과 면세 채널에 대한 높은 의존도, 임기 내 성과를 중시하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한계 등 뿌리 깊은 구조적 과제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3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이 새로운 대표이사를 앞세워 조직 분위기 반전과 사업 재정비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LG생활건강은 29일 이사회를 열고 이선주 신임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LG생활건강에 따르면 이번 조기 인사는 이정애 전(前) 사장의 자진 사임에 따른 조치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대표 선임을 계기로 LG생활건강의 시장 다각화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글로벌 감각을 갖춘 외부 인사를 내세워 정체된 화장품 사업에 새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구상이다.
이선주 대표는 로레알, 유니레버, 카버코리아 등 글로벌 뷰티 기업에서 다양한 브랜드를 직접 이끌며 현장을 누빈 마케팅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서구권과 아시아 시장을 넘나들며 쌓은 실전 감각과 시장 이해도가 강점으로 꼽힌다.
LG생활건강의 매출 구조가 오랫동안 중국에 집중되어 왔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의 방향성은 분명해진다.
LG생활건강은 높은 중국 의존도가 오랜 기간 리스크로 지적되어 왔다. 지난해 중국 매출은 약 6900억 원으로 전체의 45%를 차지한다. 2021년 68%와 비교하면 비중이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구조는 실적과 주가 불안정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정애 전 사장이 공채 출신으로 LG생활건강 내부에서 성장한 ‘국내파’였다면 이선주 대표는 다국적 브랜드를 진두지휘한 ‘글로벌 전문가’다. 답보 상태에 머물렀던 서구권 시장 공략이 새 대표 체제 아래 더욱 빠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기대만큼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LG생활건강은 장기간 면세와 중국시장 중심의 매출 구조가 이어져 왔다. 이러한 사업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자본이 필요하다.
다만 LG생활건강은 전문경영인 체제 아래 임기 내 성과가 중시되는 구조다. 임기가 정해진 경영진 입장에서는 단기 수익 방어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기존 핵심 수익원인 면세 채널과 중국 시장점유율을 지키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이 전 사장도 취임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섰다. 중국에서는 ‘더후’를 제외한 오프라인 매장을 정리했고 미국 법인도 조직을 축소했다. 음료 자회사 매각도 같은 맥락이다. 투자보다는 수익성 방어에 무게를 둔 결정이다.

▲ 2025년 5월7일 열린 미국 뉴욕에서 열린 ‘프리즈 뉴욕 2025’에서 더후 라운지 환유 라인 체험존. < LG생활건강 >
이러한 기조 속에서 신규 투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 2023년 9월 색조 브랜드 ‘힌스’를 보유한 비바웨이브를 425억 원에 인수한 것이 그나마 눈에 띄는 유일한 거래다. 차석용 전 대표 재임 시절 18년간 28건이 넘는 인수합병으로 외형 확장을 이끈 것과는 확연히 다른 흐름이다.
이는 경쟁사 아모레퍼시픽과도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아모레퍼시픽은 오너 경영 체제로 운영된다. 단기 실적이 부진하더라도 장기 비전을 중심으로 투자와 포트폴리오 혁신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다.
실제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2분기 어닝 쇼크 수준의 실적을 기록하며 주가가 급락했다. 당시 중국사업 구조조정과 총판 사업 재편 등의 여파로 400억 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중국 매출도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44%나 줄었다.
그럼에도 아모레퍼시픽은 서구권 공략 기조를 멈추지 않았다. 북미 시장 내 인지도가 높은 코스알엑스를 인수하고, 라네즈·에스트라 등 중저가 브랜드를 앞세워 점유율 확대에 나섰다. 단기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중장기 성장 기반을 다지겠다는 전략을 고수한 셈이다.
물론 이선주 대표 체제 아래 그룹 차원의 지원이 강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LG생활건강은 최근 변화의 조짐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LG생활건강은 현재 면세 채널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과거처럼 대규모 할인에 의존하지 않고 공급 물량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 단기 수익보다 채널 건전성을 우선시하는 모습이다.
한동안 멈춰 있었던 북미 시장 투자도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지난 4월 북미 법인 LGH&HUSA가 진행한 186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1천억 원은 북미 법인 운영 자금과 재무 구조 개선에, 나머지 860억 원은 북미 자회사 ‘더에이본’에 출자해 운영 자금 등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떠오른 북미에서는 전략 브랜드인 ‘빌리프’, ‘CNP’, ‘더페이스샵’을 중심으로 제품 보강 및 마케팅 투자를 전개하고 있다”며 “특히 북미 온라인 1위 채널인 아마존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광고 활동을 전개하고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마케팅으로 인지도를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