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노사관계가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강환구 사장은 임단협이 조속히 타결되지 않으면 인력 구조조정 가능성도 열어놓으며 노조를 향해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노조는 금속노조와 정치권의 힘을 빌려서라도 회사의 분사를 막을 것이며 그 이전에 임단협 타결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강환구, 왜 노조에 초강수 던졌나
2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따르면 강 사장이 ‘2016년도 임단협’을 놓고 회사의 제시안을 노조가 수용하지 않을 경우 인력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다고 사실상 최후통첩을 한 데에는 경영정상화를 위해서라도 노사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의지가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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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 |
강 사장은 20일 회사 소식지에서 “노조가 회사의 임단협 수정 제시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채권단의 인력 구조조정 요구에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조합에 고통분담의 동참, 기업분할 인정, 상여금의 분할지급을 요청했다.
강 사장은 올해 들어 “설 전에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며 임단협에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노조가 회사에서 분사 추진을 중단할 것을 임단협 타결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임단협 타결은 현대중공업 경영정상화를 위한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임단협이 타결돼야 수주활동에 매진할 수 있고 현대중공업 사업구조개편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강 사장이 20일 회사 소식지를 통해 “배 한 척을 수주하는 것이 시급한 지금 노사문제를 설 이전에 마무리하고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에 나서야 한다는 단 한가지 생각밖에 없다”고 말한 점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 노사가 지난해 임단협을 타결하지 못하고 갈등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는 수주활동도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선사들이 노사갈등을 들어 발주를 고민할 수도 있다.
주채권은행인 KEB하나은행이 현대중공업에 자구안 이행을 촉구한 점도 강 사장이 초강수를 꺼내드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은 19일 현대중공업 계동사옥을 방문해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과 강환구 사장 등 경영진을 만나 자구안 이행상황을 점검했다.
함 행장은 “현대중공업이 현재까지 추진해온 경영개선 작업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장기화된 업황불황과 심각한 수주부진을 고려하면 안심하긴 이르다”며 “특히 노사문제 등 내부적인 문제가 여전히 제자리인 점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KEB하나은행이 현대중공업의 자금줄을 쥐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자구안 이행에 속도를 내려면 노조와의 갈등을 빨리 봉합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 사장이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강 사장이 노조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시각도 있다. 현대중공업은 4월에 비조선사업부를 분사하는데 이 과정에서 노조의 반발이 거세질 경우 지배구조개편 작업이 난항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금속노조가 현대중공업 임단협에 본격적으로 개입할 경우 노조의 반발 추동력이 더욱 커질 수 있는 점을 감안해 강 사장이 그 이전에 노조에 초강수를 던졌다는 말도 나온다.
강 사장은 현대미포조선 사장에 재직할 당시 3년 연속으로 노조와 큰 갈등 없이 임단협을 타결했다. 지난해에도 현대중공업그룹 조선3사 가운데 가장 먼저 임단협 합의를 이끌어내 현대중공업에서도 노사관계의 솜씨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됐다.
◆ 노조, 금속노조 힘 빌려 맞대응
노조는 강 사장의 최후통첩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는 회사의 어려운 경영상황을 감안해 임단협 사항을 최대한 양보하고 있는데 회사가 이를 무시하고 아무런 상의없이 제시안을 내놓으면서 그동안 이어온 협상이 무용지물이 됐다”며 “말도 안되는 제시안을 내놓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감원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니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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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형록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
이 관계자는 “고용보장을 대가로 1년 동안 기본급을 반납하라고 하는 것은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회사가 해서는 안될 사항”이라며 “회사가 노조를 사실상 협박하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중공업은 19일 △기본급 동결 △회사 분사 인정 △올해 1년 동안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 20% 반납 등을 담은 임단협 제시안을 노조에 전달했다.
노조는 금속노조에 지원을 요청해 강력하게 대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임단협 교섭대표로 금속노조를 세워 임단협에서 회사의 입장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다음 주에 진행되는 임단협에서 교섭대표를 금속노조로 변경하겠다고 이미 회사에 통보한 상태”라며 “앞으로 금속노조와 연대를 강화해 강력한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자동차와 철강, 조선 등 230여개 산하 노조를 거느린 국내 최대의 산별노조로 관련기업의 노사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조선업계는 금속노조가 직접 현대중공업 임단협에 개입할 경우 노사관계가 더욱 악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은 현재 분사 등 현안을 둘러싸고 노사의 입장차이가 커 임단협 교섭이 8달 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금속노조까지 노사문제에 개입할 경우 지난해 임단협 협상이 더욱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