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세협상 D-2, 경제부총리 구윤철 투자규모·비관세장벽 조정하며 '마지막 승부'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2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상무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통상협의에 앞서 악수하며 인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미국의 25% 관세 유예 종료를 이틀 앞둔 상황에서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측이 우리 정부에 '최선의 협상안'을 언급하며 추가적 양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경제사령탑으로서 미국을 찾은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과 간극을 좁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3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는 31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만남을 앞두고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구 부총리와 베선트 장관의 회담은 그간 이어져 온 양국 통상 논의를 최종적으로 조율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구 부총리는 전날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미국 측 고위 협상 파트너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에 있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만나 2시간 동안 통상 협상을 진행했다.

베선트 재무장관을 만나기 전 우리 정부의 대미 투자 규모와 한미 제조업 협력 방안 등을 기반으로 미국 측을 설득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와 압박이 높아지고 있어 우리 정부가 협상 타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트닉 장관이 최근 스코틀랜드에서 한국 당국자에게 관세 협상과 관련해 "최선의, 최종적인 무역협상안을 테이블에 올려달라"고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의 대미 투자 계획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우리 정부가 기존보다 대미 투자 규모를 대폭 늘리는 방안을 제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대미 투자액으로 언급되던 액수는 '1천억 달러 + 알파'였는데 이를 일본의 투자규모에 맞추지 않겠냐는 것이다.

일본의 2024년 기준 명목 GDP 총액은 4조2137억 달러인데 미국과 관세협상을 타결하면서 제시한 투자액은 5500억 달러로 GDP의 13% 정도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나라 지난해 GDP(1조7900억 달러)의 13%를 적용하면 약 2327억 달러가 된다.

다만 우수한 국내 조선 인력과 인프라 투입 등을 포함해 낙후된 미국 조선업 생태계 복원에 마중물이 되는 이른바 '조선 협력 펀드' 조성을 통한 투자 방안에 힘을 싣고 있다. 조선업은 우리나라는 제조업 중에서도 미국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구 부총리는 29일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인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한국이 준비하고 있는 프로그램, 그리고 한국의 상황을 잘 설명하고 조선업과 한미 간 중장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분야도 잘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지난 28일 미국에 도착했는데, 김 부회장은 우리나라가 핵심 의제로 미국 측에 제안한 조선 산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와 관련해 한국 협상단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우리 정부가 비교적 협상테이블에 올리길 꺼려 했던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같은 비관세장벽 분야도 협상의제로 다뤄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30일 KBS뉴스에서 “아직은 한미 양국 사이에 이견이 좀 있어 보인다”며 “미국이 요구하는 것보다 조금 낮추기 위해 (우리 정부가) 다양한 카드를 고심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대미 투자 규모를 늘리는 대신 쌀과 소고기 시장 개방은 최소화하려는 전략을 펼칠 공산이 크다. 정치적 압박이 큰 데다 현실적으로도 시장 개방이 어려운 요인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관세협상 D-2, 경제부총리 구윤철 투자규모·비관세장벽 조정하며 '마지막 승부'

▲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0일 서울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 미국의 농축산물 추가 개방 요구를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미애 의원실>  

임미애, 윤준병,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서울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의 개방 압력에 국내 농축수산업계의 불안은 극에 달했고 현장 농민들은 폭염 속에서 목숨을 건 농성에 돌입했다”며 “한국 농축산물 시장에 대한 추가 개방요구는 대한민국의 식량주권을 짓밟는 행위이자 농민의 생존권을 빼앗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은 일본의 미국산 쌀 수입 확대를 근거로 우리나라에도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매년 쌀 의무 수입량 40만8700 톤을 미국과 중국, 베트남 등 5개 나라로부터 나눠 수입하고 있다.

미국의 쌀 수입량을 늘리면 다른 나라 쌀 수입량이 줄어 WTO(국제무역기구) 협정 위반 소지가 있다.

박형배 진보당 전남도의원은 이날 KBS라디오 무등의아침에서 “미국 쌀을 더 많이 사서 다른 나라 쌀 수입량이 줄어들면 WTO에 제소될 것”이라며 “다른 방법으로 40만8700 톤이 아니라 (쌀 수입 총량을 늘려) 미국 것을 좀 더 수입하는 방식도 있지만 이렇게 되면 국회에서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30개월 이하만 수입하는 소고기 수입 월령 제한을 완화하는 문제도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과정에서 겪었던 정치적 갈등을 고려하면 정부가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29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미국 국회의원들을 만났는데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 중 소고기 30개월 이하로 월령 제한을 해놓은 게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어 “예전 MB(이명박) 대통령 때의 여러 가지 일들을 설명하면서 대한민국의 특수성을 좀 이해해달라라고 굉장히 호소했지만 정부여당이 가진 가장 큰 어려움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바라봤다. 

결국 구 부총리는 남은 48시간 동안 미국의 추가 양보 요구에 대한 우리 나라의 최종적 수용 범위를 결정하고 국익을 최대한 지키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구 부총리는 2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무역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베선트 장관을 만나러 왔다"며 "미국에서 관심 있어 하는 조선 등을 포함한 한미 간 경제 협력 사업에 대해 잘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만일 구 부총리가 관세협상 타결을 이끌어낸다면 결과를 발표하기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이 협상 타결 직전 트럼프 대통령과 50분 동안 면담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와 미국 고위 협상 관계자들이 만남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오는 8월1일 이전에 협상이 타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석영 전 외교통상부 FTA 교섭대표는 이날 KBS뉴스에서 “협상의 큰 방향성이 잡히고 나면 협상 빈도가 굉장히 잦아지게 된다”며 “고위급이 자주 만난다는 건 (협상이) 거의 막바지에 왔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