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의 뒤집어보기] 단통법 22일 폐지, 경쟁은 활성화하되 호갱은 없는 새 이동통신 시장 열릴까](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503/20250307154723_184388.jpg)
▲ 단말기 유통법이 22일 드디어 페지된다. 정부는 "이동통신사 간 경쟁 활성화와 가계 통신비 부담 완화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또한 단말기 유통법(단통법)이 폐지되는 날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7일 합동 보도자료를 통해 "22일 단통법이 폐지된다"고 안내하며, "이동통신사와 유통점의 경쟁이 활성화돼 이용자 혜택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보도자료에는 "단통법 폐지는 이동통신 시장 경쟁 촉진과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를 목표로 한다"는 설명이 담겼다.
단통법이 폐지되면 무엇이 달라지나.
첫째, 이동통신사의 단말기 지원금(이하 보조금) 공시 의무가 없어지고, 공시 지원금의 15% 이내로 제한됐던 유통점의 추가 지원금 상한도 사라진다.
다시 말하면, 이통사와 유통점이 단말기 보조금을 마음대로 줄 수 있게 된다. 단말기를 공짜로 주는 것은 물론 현금을 추가로 얹어주는(페이백)도 가능해진다.
번호이동·신규가입 등 가입 유형별 보조금과 요금제별 보조금에 대한 엄격한 차별 금지 규정도 없어진다. 이통사와 유통점이 다양한 형태로 단말기 보조금을 앞세운 마케팅 경쟁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보조금과 현금을 '듬뿍' 줘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둘째, 그동안은 요금할인 혜택(선택약정 할인)을 선택한 경우에는 유통점으로부터 추가 보조금을 받을 수 없었으나, 앞으로는 요금할인 혜택을 받으면서 추가로 보조금도 받는 것도 가능해진다.
다만, 이통사와 유통점은 이동통신 가입 계약서에 보조금 지급 주체와 방식, 보조금 지급과 관련된 요금제나 부가서비스 이용 조건, 초고속인터넷 등과 결합 조건 등을 상세하게 명시해야 한다.
문득 의문이 든다.
단통법을 폐지하면 이동통신 시장 경쟁 촉진과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하면서 왜 좀 더 일찍 폐지하지 않았나.
아니 애초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과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를 가로막는 단통법을 왜 만들어 시행했나.
단통법은 2014년 10월부터 시행됐다. 11년 만에 폐지되는 것이다.
단통법 제정은 '호갱'(호구+고객, 어수록한 소비자를 가리키는 말)을 없애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이통사의 단말기 보조금 지급 구조와 절차를 투명하게 만들어 누구나 차별 없이 누릴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이용자 편익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단말기를 구매하더라도 정보력의 차이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 상황이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른바 '성지’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최신 단말기가 공짜로 건네지기 일쑤였다. 반면 어르신 등 정보력이 떨어지는 가입자들은 제 값을 다 주고 단말기를 구매하는 등 호갱 취급을 받았다.
단말기를 좀더 싸게 구입하려는 가입자들을 새벽 시간에 전국으로 오픈런시키는 사례도 빈번했다. 새벽 4시에 서울이나 부산 뒷골목에 병개처럼 긴 줄이 늘어섰다가 사라지곤 했다.
이통사들이 필요에 따라 가입자 수나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특정 유통점에 리베이트(가입 유치 수수료)를 책정하는 방식으로 수만명을 '땡기고 빠지는'방식이다.
불법인데다 사회적 논란도 컸지만, 뽐뿌 같은 오픈 사이트의 채팅방을 이용해 치고 빠져 단속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이용자 차별 해소를 위한 특단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단통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통사와 유통점이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할 때는 투명한 공시 절차를 거치도록 했고, 요금제 연계를 제외한 다른 이유로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또한 단말기를 구매하지 않으면서 가입하는 경우에는 보조금에 상응하는 수준의 요금 할인(초기 12%였다가 25%로 상향)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단말기 과소비 억제란 명분도 달렸다.
단통법 시행 이후 단말기 보조금을 통한 가입자 차별은 크게 줄었다. 오픈런도 거의 사라졌다.
대신 이동통신 3사의 독과점이 고착됐다. 마케팅에 앞서 '패'를 까야(지원금 사전 공시) 해 경쟁이 크게 둔화했다. 지원금을 질러 가입자를 빼와봤자 경쟁사가 질러 빼가면, 모두 돈만 쓸 뿐 얻는 것은 없어서다.
2013년 1116만여건에 이르던 번호이동 건수가 2022년에는 453만건으로 대폭 감소했다.
이통사들의 마케팅이 위축되며 단말기 출고가 대비 보조금 액수 비율도 크게 줄었다.
가입자 쪽에서는 그만큼 새 단말기를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셈이다.
당연히 법 시행 초기부터 논란이 일었다. 국회를 중심으로 법 시행 첫 해부터 개정 요구가 쏟아졌다.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 규제는 글로벌 규제 기준에 맞지도 않는다. 경쟁을 제한해 소비자 편익을 해치는 탓이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단통법 22일 폐지, 경쟁은 활성화하되 호갱은 없는 새 이동통신 시장 열릴까](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411/20241126144221_54945.jpg)
▲ 정부는 22일 단말기 유통법 폐지로 이동통신 간 경쟁이 활성화하고 가계통신부 부담이 완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신 3사의 독과점 상태에도 금이 갈지 주목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관리 경쟁' 정책을 꺼내들었다가 '사업자 보호' 함정에 빠진 정부 쪽도 마찬가지였다.
곧 법 시행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하며 국회와 소비자단체 쪽의 법 개정 요구를 외면했다.
그러는 사이 이동통신 시장에서 경쟁이 사라졌다. 또한 이동통신 3사의 독과점 구조는 굳어졌다.
가입자들은 통신비 부담을 호소하는데, 이통사들은 해마다 크게 늘어나는 영업이익으로 배당잔치와 성과급 파티를 벌이는 상황이 이어졌다.
급기야 시장에 '메기'를 넣어 경쟁이 활성화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며 제4 이동통신 사업자 허가 정책이 추진됐으나 번번이 허사로 끝났다. 요금 경쟁 활성화 명분으로 띄워진 알뜰폰 역시 이동통신 요금 인하 요구 상쇄 수단으로 전락했다.
단통법 폐지에 힘이 실렸고, 드디어 내일 폐지된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이통사 간 경쟁이 활성화하고 가계통신비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호갱을 어떻게 막을 거냐다.
내일부터는 '공짜폰'을 넘어 '마이너스폰' 등장도 예상된다. 추가로 쥐어주는 것도 가능해진다.
유통점에 따라 지원금이 달라지고, 같은 기기를 싸게 혹은 비싸게 살 수 있는 구조가 다시 생겨나는 것이다. 소비자 쪽에서는, 여러 매장을 비교해 조건을 따지면 보다 유리한 가격에 휴대전화를 구매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반대로 요금제 구조에 익숙하지 않거나 이통사 마케팅 정보 획득에 소홀한 소비자들은 호갱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욱이 고액 지원금을 내세우며 고가 요금제 장기 유지, 각종 부가서비스 가입 등을 요구하는 상황도 예상된다. 단통법 시행 이전에도 휴대전화를 음성통화 용도로밖에 쓰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유통점 꾀임에 넘어가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구입하며 고가 요금제에 가입하고 후회하는 사례가 잦았다.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는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단통법 폐지 공백을 메꿨다고 밝혔다.
이용자 권익 보호를 위해 이통사와 유통점은 이용자 거주 지역과 나이와 신체적 조건 등에 따른 지원금 차별 금지, 지원금 정보 오인을 유도하는 설명 금지, 판매점이 이통사로부터 판매 권한을 승낙받은 사실을 표시할 의무, 이통사·제조사의 특정 요금제나 서비스 이용 요구·강요 금지 등의 규정을 준수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용자 차별 금지'와 '이용자 권익 침해 금지'는 단통법 시행 이전 전기통신사업법에도 있었다.
새 전기통신사업법 조항 만으로 경쟁은 활성화하면서 호갱과 오픈런은 없는 새 이동통신 시장이 열리기를 기대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의 강력한 단속 및 처벌 의지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지만, 주무 기관인 방통위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황이다.
하필 단통법 폐지 시점이 일년 중 가장 무덥다는 대서와 겹쳤다. 무더위란 습도가 높아 불쾌감이 느껴지는 더위를 가리킨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