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에 '화석연료 기업 책임론' 커져, 기후피해 보상 '기후세' 요구 확산

▲ 인도 구자라트주 딘다얄 항구에서 트럭들이 석탄을 가득 실어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기후변화가 가속화하면서 자연재해로 인한 '기후피해'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화석연료 기업들은 여전히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국제사회에서 이들 기업이 피해를 보상하도록 특별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6일 주요 외신 보도와 국제단체 발표 등을 종합하면 올해 들어 화석연료 기업들에 기후피해에 대한 재정적 책임을 물리자는 주장이 꼬리를 물면서 제기되고 있다.

엘리사 모르게라 유엔 인권·기후변화 특별보고관은 30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인권 이사회에 이른바 기후세 주장을 담은 특별 보고서를 제출했다.

모르게라 특별보고관은 이번 보고서를 통해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 화석연료 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이 2030년까지 석유, 석탄, 천연가스 채굴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고 화석연료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여러 지역 커뮤니티들에 보상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고서에서 2023년 기준 화석연료 기업들이 전 세계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약 5조 달러(약 6789조 원)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독일 재보험사 뮌헨리에 따르면 같은 해 전 세계가 각종 자연재해로 입은 경제적 피해 규모는 약 2500억 달러(약 339조 원)로 추산됐다. 재난 발생 건수는 약 7만4천 건으로 이전 5년 평균과 비교해 1만 건 이상 증가했는데 뮌헨리는 기후변화가 여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유엔 산하 국제실향민센터(IDMC) 보고서를 보면 2023년 기준 자연재해로 인한 이재민은 약 2640만 명으로 집계됐다. 기후변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2천만 명을 웃돌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모르게라 특별보고관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화석연료가 전주기에 걸쳐 사람들에 미치는 심각하고 광범위한 악영향이 상호 연결돼 있고 세대를 거쳐 전해진다는 압도적인 증거가 있음에도 이들 국가는 여전히 화석연료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다"며 "그럼에도 문제를 해결할 결정적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르게라 특별보고관은 화석연료 기업들이 막대한 양의 연료를 팔아 천문학적 수익을 올렸는데도 세계 여러 지역의 에너지 빈곤 현상과 경제적 불평등은 전혀 해소되지 않은 점을 짚었다.

오히려 화석연료 채굴 활동이 증가하면서 기후변화 가속화돼 불평등이 계속 심화되기만 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화석연료 기업들이 막대한 수익을 환수해 기후피해 복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기후세를 부과하자고 주장했다.

국제 시민단체들이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국제 시민사회는 모르게라 특별보고관이 주장한 기후세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각) 옥스팜과 그린피스가 공동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세계 시민 10명 중 8명은 화석연료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G7 등 선진국 포함 13개국 시민 1만5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지구온난화에 '화석연료 기업 책임론' 커져, 기후피해 보상 '기후세' 요구 확산

▲ 지난달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간 멕시코 해안 마을 모습. <연합뉴스>

조사 참여자들 가운데 81%를 폭풍, 홍수, 가뭄, 산불 등 화석연료로 인한 기후재해 복구를 위해 석유, 석탄, 가스 산업계에 특별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에 찬성했다. 또 86%는 화석연료 기업에서 거둔 세수 대부분을 기후위기로 가장 큰 피해를 겪고 있는 지역에 우선적으로 투입해야 한다고 답했다.

아미타브 베하르 옥스팜 인터내셔널 총재는 "초거대 석탄, 석유, 가스 기업들은 기후위기 속에서 이윤을 계속 추구하며 수백만 명의 생계를 파괴하고 있다"며 "이제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부유한 오염기업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하며 새로운 산업 과세를 통해 기후 취약국을 즉각 지원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옥스팜은 올해 4월에도 글로벌 위트니스와 함께 비슷한 취지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옥스팜 본부가 위치한 영국에서는 올해 5월 의회에 리처드 버건 무소속 의원 주도로 화석연료 기업들에 특별세금을 부과할 것을 명시한 법안이 제출됐다. 버건 의원은 특별세금을 통해 확보한 재정으로 기후재무기금을 설립하고 기후피해 대응에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해당 법안은 키어 스타머 총리 등 영국 정치계 주류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하지만 가디언은 "의회에서 화석연료 기업에 재정적 책임을 묻자는 주장이 제기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시민단체 조사에 따르면 영국 국민들 사이에서도 해당 법안을 향한 지지는 꽤 높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글로벌 위트니스가 진보 성향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은 해당 법안을 지지했다. 현재 영국 집권 정당이 진보 성향 노동당인 점을 감안하면 꽤 유의미한 비중의 유권자들이 법안을 지지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플로시 보이드 글로벌 위트니스 수석 캠페인 담당자는 가디언을 통해 "이번 조사에 따르면 진보 성향 유권자 대부분은 기후변화를 우려하고 있다"며 "상당수가 기후변화에 큰 책임이 있는 기업과 개인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길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다른 시민단체 전문가들은 이에 향후 화석연료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기후세가 어떤 방식으로든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루이스 허친스 비영리단체 '스탬프 아웃 포버티' 캠페인 책임자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대규모 오염 유발 기업이 기후피해에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을 향한 대중의 지지가 매우 높다"며 "정부 부처에 있는 책임있는 사람들은 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