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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과 순종 사이에서 줄타는 애널리스트들

장윤경 기자 strangebride@businesspost.co.kr 2014-08-28 21: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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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신과 순종 사이에서 줄타는 애널리스트들  
▲ 모리츠 크래머 스탠더드앤푸어스(S&P) 유럽 국가 신용등급 부문 대표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2012년 유럽재정 위기 때 한 국가의 경제를 좌지우지했다.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의 평가에 따라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거나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의 애널리스트들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때 도산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을 발표했는데 정확한 평가가 알려지면서 업계의 1위 자리를 굳혔다.

무디스는 국제 신용평가사 중 애널리스트에 가장 많이 투자한다. 현재 17개 국에 1천 명의 애널리스트를 포함한 3천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그런 무디스도 수수료에 눈이 멀어 "애널리스트를 경영진의 노예로 만든다"는 비난을 받았다.

한국에서 180명 정도의 신용평가 애널리스트들이 활동하고 있다.

◆ 애널리스트들은 왜 중요한가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들은 기업이나 투자자에게 투자에 대한 지표를  제공해 한 나라의 경제흐름에 영향을 준다.

신용평가사에서 애널리스트들은 신용평가 업무를 담당한다. 이들은 기업에 대한 신용을 평가할 때 기업의 발전 가능성, 업계에서 위치, 기업의 영업력, 경영자의 자질, 기술개발 상황, 재무구조의 건전성, 노사관계 등 다양한 분야의 1차 자료를 토대로 기업의 종합적 신뢰도와 부채상환능력을 주로 평가한다.

이런 정보를 평가할 때 단순한 수치적 자료를 종합하는 것이 아니라 수준 높은 전문가적 통찰력과 판단이 필요하다.

애널리스트들이 내놓은 신용등급이 높을 경우 기업들은 낮은 자금조달 비용으로 필요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는 애널리스트들이 내놓는 신용등급에 따라 여러 자금조달 전략을 짤 수 있다.

투자자들은 애널리스트들의 평가결과를 토대로 기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한다.

투자자들은 기업에 투자해서 수익을 얻고 싶지만 기업에 대한 정보가 항상 부족하다. 이때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들은 투자자들이 알기 어려운 기업의 정보를 파악해 신용정보를 제공한다.

기업은 재무구조나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 예상수익률 등에 관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지만 대개 유리한 정보만을 투자자에게 공개하려 한다. 투자자들이 애널리스트들의 신용정보를 구매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소신

유럽 재정 위기 때 유럽국가 신용등급 강등을 이끈 ‘미스터 가위손’이라 불리는 애널리스트가 있다. 바로 모리츠 크래머 S&P 유럽국가 신용등급 부문 대표다.

2011년 그리스 발 유럽위기가 왔을 때 유럽 여러 나라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떨어졌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들이 모두 유럽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이 때 크래머 S&P 대표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유럽국가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책임자였다.

유로존 부채위기가 본격화된 후 S&P에서 취해진 유럽국가 신용등급 강등 조치는 크래머의 손을 거쳐 결정됐다. 2007년 이후 크래머와 이코노미스트들로 구성된 팀은 유로존 국가들의 신용등급을 36차례나 강등했다.

크래머는 2011년 8월과 2012년 2월 3대 신용평가사 중 유일하게 미국과 프랑스의 최고 신용등급(AAA)을 박탈했다.

업계에서 이런 조처들을 놓고 신용평가사가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 적절하게 분석을 제대로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불명예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 봤다.

신용평가사들은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터진 후 크게 비난을 받았다. 신용평가사가 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위기를 알리지 않아 대형 금융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이었다.

크래머는 객관적 인물로 알려졌다. S&P에서 10년 동안 크래머와 같이 일했던 한 동료는 "크래머야 말로 어려운 때 유럽국가의 신용등급 업무를 다룰 적절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탈리아 정부의 한 재무담당 관리자도 “크래머는 S&P 내의 몇 안 되는 존경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라면서 "그는 항상 이탈리아의 강점보다 약점을 중시하지만 그래도 훌륭하다"고 말했다.

크래머는 유럽국가들이 강등조치에 대한 반발하자 “유럽국가의 신용등급 강등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유럽 지도자들이 유럽 부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미주개발은행에 다니다가 2001년 S&P 런던사무소 국가재정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2006년 S&P 유럽, 중동, 아프리카 담당 수석 애널리스트로 승진했고 S&P 유럽국가 신용등급 부문 대표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 S&P는 유로존 국가 신용등급을 지나치게 강등하면서 유로존 부채위기를 오히려 키우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소신과 순종 사이에서 줄타는 애널리스트들  
▲ 세계 3대 신용평가사

◆ 경영진의 노예가 되는 애널리스트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의 전직 고위 임원은 2011년 수수료 이익에 눈멀어 객관적 평가를 못하는 신용평가사의 구조적 문제를 폭로하기도 했다.

이 고위 임원은 구조적 문제를 폭로하면서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들이 무디스 경영진의 말만 듣는 노예가 된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무디스에서 일선 애널리스트가 내놓은 등급평가 결과는 자주 무시됐다.

애널리스트의 평가와 관계없이 무디스 내 등급판정위원회가 ‘특정회사가 특정등급을 받을 만하다’고 판단하면 경영진은 그 판단을 투표라는 형식적 절차를 통해 추인하는 ‘거수기’ 역할을 한다.

또 무디스 경영진은 입맛에 맞지 않는 평가결과를 내 놓는 애널리스트를 ‘골칫거리’로 여겼다. 그들은 ‘평가대상’이자 자신들에게 수입을 안기는 고객기업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입맛에 맞지 않는 평가결과를 내놓는 애널리스트들은 징계 또는 다른 부서로 인사조치를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했다. 심할 경우는 해고까지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강직한 애널리스트들은 결국 신용평가사의 ‘순종적인 시민’이 된다는 것이다.

◆ 국내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들은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들은 경영학 석사 가운데 재무나 회계 전공자가 많다. 특히 회계사 자격증이 있으면 우대를 받는다. 나이스신용평가의 경우 직원의 40%가 회계 자격증 보유자다.

신용평가회사에 들어가면 일반 전문직이나 연구원으로 시작해 몇 년의 실무과정을 거쳐 애널리스트가 된다. 애널리스트는 경력을 쌓으면 수석애널리스트에 오른다. 그 뒤 회사에 따라 실장이 되기도 하고 수석연구위원으로 진급하기도 한다.

한국기업평가는 매년 하반기에 신입사원 채용을 실시한다. 한국신용평가는 상시 채용을 하고 있다. 신용평가사의 신입사원 초임은 연봉 4천만~5천만 원 정도다. 나이스신용평가의 경우 일 년에 최대 4명 정도를 뽑는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의 인력은 모두 366명이다. 이 가운데 애널리스트는 180명 정도다.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들은 전문 분야를 맡고 있다. 전기전자, 철강, 건설 등 담당 업종이 나눠져 있다.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들은 한 번 입사하면 잘 나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에 비하면 안정적이다.

신용평가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의 경우 증권사처럼 베스트 애널리스트를 뽑지도 않으며 특별히 팀 또는 개인별로 성과급이 나오는 체계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애널리스트 등록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다. 한국금융투자협회는 지난해 9월 신용평가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신용평가 전문인력 자격제도를 도입했다.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들은 금융투자분석사 시험에 합격하거나 금융기관 등에서 기업금융투자상품의 평가분석업무를 1년 이상 수행하는 등 일정요건을 갖춘 뒤 금융투자협회에 등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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