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정애 LG생활건강 대표이사 사장이 LG프라엘을 양수하며 미용기기 시장에 적극적으로 발을 들이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에이피알은 화장품과 미용기기 양축의 고른 인기를 바탕으로 시가총액 5조 원을 넘기며 LG생활건강을 턱밑까지 쫓아왔다.
이에 LG생활건강은 반격 카드로 ‘LG프라엘’ 미용기기를 품에 안았다. 가격을 기존 대비 절반 이상 낮춘 10만 원대 신제품을 전면에 내세우며, ‘가성비’와 ‘기술력’이라는 두 축으로 시장 재정비에 나섰다. 가정용 미용기기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화장품업계 시가총액 2위 수성을 위한 본격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2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이 에이피알에 업계 시가총액 2위 자리를 내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후 15시30분 기준 LG생활건강의 시가총액은 5조4586억 원, 에이피알은 5조3718억 원으로 불과 수십억 원 차이에 불과하다. 에이피알은 지난해 상장 이후 가정용 미용기기 ‘메디큐브 에이지알’의 폭발적 성장에 힘입어 시가총액이 3배가량 급증하며 LG생활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실제 에이피알의 23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5조3718억 원으로 LG생활건강을 제치고 첫 업계 시가총액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성장률 지표에서도 두 기업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에이피알의 매출 성장률은 2023년 31.7%, 2024년 38.0%을 기록하며 고속 질주 중이다. 반면 LG생활건강은 같은 기간 각각 –5.3%, 0.1%에 머물며 사실상 제자리걸음 횡보를 보이고 있다.
에이피알은 미용기기와 화장품의 ‘투트랙 전략’으로 국내외에서 모두 성과를 내고 있는 반면 LG생활건강은 중국 소비 회복 지연과 기존 브랜드의 정체로 성장 모멘텀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정애 LG생활건강 대표이사 사장으로서는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사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로 사실상 올해가 임기 마지막 해다. 수십 년간 지켜온 시가총액 2위 자리마저 에이피알에 내줄 위기에 놓이면서 경영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이 사장은 반전을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에이피알의 성공 공식으로 꼽히는 ‘미용기기 및 화장품 연계 전략’을 LG생활건강에 과감히 이식했다.
LG생활건강은 최근 미용기기 브랜드 ‘LG프라엘’을 LG전자에게서 넘겨받으며 사업 재정비에 착수했다. 특히 가격을 기존 대비 절반 이상 낮춘 10만 원대 신제품을 전면에 내세워 소비자 접근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단가 높은 프리미엄 전략에서 벗어나 ‘가성비+기술력’이라는 에이피알식(式) 공식을 앞세웠다.
특히 LG프라엘 양수 이후 처음 선보인 신제품 ‘수퍼폼 갈바닉 부스터’는 10만 원대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출시됐다. 에이피알의 대표적 가성비 미용기기 ‘부스터프로 미니’와 비슷한 가격대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새롭게 탄생한 LG프라엘은 첨단 기술 미용기기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며 “고성능 미용기기와 화장품 간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가정에서도 전문가 수준의 피부관리 효과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 LG생활건강이 가정용 미용기기 'LG 프라엘 수퍼폼 갈바닉 부스터'를 선보였다. < LG생활건강 >
일각에서는 LG생활건강이 LG프라엘을 넘겨받은 이후 ‘가성비’ 라인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에이피알이 20만~30만 원대 미용기기로 국내외 시장을 석권한 만큼 같은 전략으로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 LG프라엘의 미용기기는 전반적으로 가격대가 높은 편이다.
멀티코어, 스킨부스터, 워시팝 등의 기기들은 10만~40만 원대에 형성돼 있지만, 대표 제품인 더마쎄라는 100만 원을 웃도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두 가지 기능을 묶은 패키지 제품 역시 50만~60만 원대로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정애 사장은 미용기기를 매개로 화장품과의 ‘연계 소비’ 확대에도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단순한 제품군 확장을 넘어 소비자 지갑을 두 번 열게 만드는 전략이다.
실제로 이는 에이피알이 미용기기를 발판 삼아 화장품 실적까지 함께 끌어올린 핵심 비결로 꼽힌다. 에이피알은 미용기기 구매를 통해 화장품까지 자연스럽게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으로 동반 성장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에이피알의 화장품 매출 비중은 62%로 미용기기 매출 비중 34%를 크게 웃돌았다. 병행 소비가 실적 전반을 견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LG생활건강 역시 이 같은 흐름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미용기기 신제품과 함께 전용 화장품 라인인 ‘글래스라이크’를 동시에 선보이며, 기기와 화장품을 함께 사용하는 소비 구조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기기만 써도 좋지만 화장품과 함께하면 더 좋다’는 메시지를 내세워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업계에서는 LG생활건강이 가성비 미용기기 시장의 상대적 후발주자인 만큼 에이피알의 점유율을 단기간에 빼앗아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시장을 선점한 에이피알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제품 다변화와 가격 경쟁력이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다만 LG생활건강이 그동안 꾸준히 연구개발에 공을 들여온 만큼, 예상보다 빠르게 경쟁력 있는 신제품이 쏟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정애 사장은 실적 부진 속에서도 연구개발 투자만큼은 줄이지 않았다. LG생활건강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2022년 3.0%, 2023년 3.5%, 2024년 3.4%, 2025년 1분기에도 3.2%를 기록하며 꾸준히 3%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LG생활건강은 수천 개의 자사 화장품을 분석한 풍부한 데이터를 활용해 미용기기에 최적화된 전용 화장품을 개발했다”며 “미용기기-화장품 병행 사용에 대한 인체적용시험으로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