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심해 광물 채굴'에 고려아연 호응, 공급망 탈중국에 성장 기회 열려

▲ 제라드 배런 TMC 최고경영자(앞줄 가운데)가 4월5일 고려아연 한국 사업장을 방문해 회사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TMC는 심해 광물 채굴업체로 캐나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제라드 배런 X 계정에서 갈무리>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트럼프 정부가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고자 심해 광물 채굴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가운데 고려아연의 수혜 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희토류를 비롯한 광물 공급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 고려아연이 심해 채굴이라는 ‘골드 러시’에 동참할 가능성도 떠오른다. 

16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은 고려아연을 두고 “트럼프 정부가 설정한 심해 채굴 기조에 호응하는 금속업계 첫 사례”라고 평가했다. 

고려아연은 캐나다 심해 광물 채굴업체 더메탈스컴퍼니(TMC)에 8520만 달러(약 1160억 원)를 투자해 지분 5%를 인수하는 계약 체결을 진행한다. 

심해 채굴은 미국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대한 희토류와 핵심 광물 의존도를 낮추는 데 필요하다고 직접 지목한 사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24일 환경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해저 광물 탐사 허가를 간소화하고 국제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겠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심해에서 핵심 광물과 희토류 원소 등 채굴을 지원하겠다는 기조를 명문화한 것이다. 

해당 행정명령은 심해 광물 채굴을 안보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중국이 첨단 제조업과 군수 산업에 꼭 필요한 광물 공급을 통제해 미국으로서는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공급을 늘려야 안보 위협을 줄일 수 있다.

행정명령이 국방물자생산법(DPA)을 재원 마련의 법적 근거 가운데 하나로 꼽은 점에서도 트럼프 정부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국방물자생산법은 국가 안보와 관련한 물품의 생산과 공급을 확대할 수 있도록 대통령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법이다. 

미국 연방해양대기청(NOA)은 이번 행정명령을 두고 “국내 제조업 토대를 마련할 골드러시를 예고한다”며 환영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중국 또한 미국의 약점이 희토류라는 점을 체감한 만큼 앞으로도 대미 관계에서 광물 공급망을 지렛대 삼아 협상력을 높이려 할 공산이 크다. 

미국이 이른바 ‘관세 전쟁’에서 대중 추가 관세율을 낮추겠다고 한발 물러선 배경에 중국발 희토류 공급 통제가 있었다는 분석이 많다.
 
여기에 비중국 기업인 고려아연이 TMC 지분을 일부 인수해 미국 내 공급망 구축 지원 사격에 나선 것이다.

고려아연은 15일 미국 방산 기업에 희토류 안티모니도 수출하며 중국을 대체할 공급망으로서 역할을 더욱 키워나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고려아연을 “소수의 비중국산 아연 공급업체 가운데 하나”로 주목했다.  

TMC는 미국 해양대기청에 태평양 클라리온-클리퍼턴 해역(CCZ) 심해에서 광물을 채굴하겠다고 허가를 신청해 두고 있다. 
 
트럼프 '심해 광물 채굴'에 고려아연 호응, 공급망 탈중국에 성장 기회 열려

▲ TMC 직원이 2022년 클라리온-클리퍼턴 해역에서 광물 시범 채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TMC >

이 해역은 망간단괴를 비롯한 광물 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 알려졌다. 망간단괴는 망간과 니켈, 코발트, 구리 등을 함유한 광물이다. 

CNBC에 따르면 TMC가 미국에서 허가를 받으면 국제 해역에서 광물 채굴 면허를 취득한 첫 사례가 된다.

고려아연과 TMC는 전기차와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첨단 산업에 사용할 핵심 소재를 확보하고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 내 시설 투자와 같은 추가 협력도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

심해저는 그동안 막대한 매장량에도 불구하고 환경 보호를 이유로 상업적 광물 채굴이 사실상 금지돼 왔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기반해 설립한 국제해저기구(ISA)를 중심으로 규제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미국은 UNCLOS를 상원에서 비준하지 않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인사이드클라이밋뉴스는 “트럼프는 국제법을 우회해서 심해 채굴을 하려 한다”라고 짚었다. 

지표면 광물이 소수 국가에만 집중 분포된 데다 최근 첨단 제조업 수요 증가로 일부 광물 매장량이 고갈되고 있다는 점도 심해 채굴 중요도를 키우는 요소다. 

컨설팅회사 아서디리틀은 “2024년 기준 해저 광물의 잠재적 상업 가치는 20조 달러(약 2경7200조 원)”라고 추산했다. 

종합하면 트럼프 정부에서 대중국 광물 공급망 의존을 낮추고자 심해 채굴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기조가 고려아연에도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제라드 배런 TMC 최고경영자(CEO)는 “고려아연의 투자는 단순한 자본 이상의 의미로 미국을 위한 탄탄한 공급망 구축에 공감대 성격”이라며 “고려아연은 중국을 제외하고 TMC가 채굴할 광물을 미국에서 요구하는 금속 제품 형태로 가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라고 말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