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LG·한화·LS 지주사 저평가 해소 기류, 재계 상법 개정 반대 '대략 난감'

▲ SK, LG, 한화, LS 등 국내 주요 지주회사의 기업가치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담긴 상법 개정으로 재평가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상법 개정 재추진에 속도를 내면서 SK, LG, 한화, LS 등 국내 주요 지주사의 오랜 저평가 상태가 해소될 것이란 기대가 주주들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상법 개정안은 전자주주총회 도입을 제외한 나머지 조항의 시행 시점을 유예 기간 없이 ‘대통령 공포 즉시’로 명시하면서, 재계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일반 주주들의 권익을 폭넓게 보호하는 것이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고, 이재명 대통령이 정권 초부터 힘을 주는 정책인 만큼 재계도 대놓고 반발하지 못하고 있다.

9일 재계와 투자업계 안팎 취재를 종합하면,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뒤 국내 주요 지주사 주가는 신고가 랠리를 이어가며 투자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상법 개정안 처리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오랫동안 저평가를 받았던 지주사의 기업가치가 재평가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도 종가 기준 두산(7.10%), SK(4.65%), LG(2.16%), 한화(1.43%) 등 주요 지주사 주가는 일제히 상승했다.

박건영 KB증권 연구원은 “최근 지주회사 주가는 정책 기대감 반영으로 상승세를 시현 중”이라며 “향후 정책적 제도 정비와 지주회사의 중장기 기업가치제고, 주주환원 확대가 동시에 이루어진다면 최근 주가 상승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이 외에 독립이사, 대규모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 강화, 분리선출 감사위원 이사수 확대, 3% 룰(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의결권 3%로 제한) 등도 포함한다.

국내 지주사는 그동안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이해상충 문제로 높은 할인율을 적용 받아왔다. 

예를 들어 지배주주 보유 주식을 경영권 프리미엄 독점 등의 방식으로 고가에 매각하거나 합병, 분할, 분할합병, 포괄적 주식교환, 영업양수도 등에서 지배주주 또는 다른 계열회사가 이익을 얻고 소액주주는 손해를 보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는 점이 기업 가치에 반영된 것이다.

SK(PBR 0.31배), LG(0.39배), 한화(0.43배), LS(0.88배) 등 주요 지주사의 주당순자산비율(PBR)이 1배에 한참 못 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주주로 확대된다면, 사외이사의 이사회 내부 견제 기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주주 이익과 경영자 이익이 상충할 때 발생하는 ‘대리인 비용’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헌 iM증권 연구원은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이사가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을 위해 소액주주에 불리한 결정을 할 경우, 상법 상 손해배상 책임 또는 형법 상 업무상 배임죄를 물을 수 있다”며 “상법 개정으로 주주의 이해상충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 해소되면, 지주사 기업가치는 할인율 축소로 인해 재평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K·LG·한화·LS 지주사 저평가 해소 기류, 재계 상법 개정 반대 '대략 난감'

▲ 2025년 5월8일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 네 번째)가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5단체장 간담회에 참석해 정책제언집을 들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계는 정부와 여당의 신속한 상법 개정안 추진에 우려하고 있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강화되면 이사를 상대로 한 소송 빈발할 수 있고,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돼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유예기간 없는 공포 즉시 시행은 기업들이 대비할 시간도 주지 않는 것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6개 경제단체는 지난 3월 국회에 상법 개정안이 발의됐을 때와 달리 아직 공식적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이는 재계가 상법 개정에 따른 지주회사 기업가치 상승 효과 등 긍정적 측면이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인 데다, 새 정부와 여당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정책을 당장 반대하긴 힘들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주요 기업들은 이미 상법 개정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경영권 방어 등 대응책 마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학계에서도 상법 개정을 피할 수 없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지배구조가 투자자 신뢰를 높여 자본시장 활성화, 장기적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의견이 많다.

이창민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상법 개정으로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된다면, 기업 이사진이 중장기적으로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기업이 해외 투기자본에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당하거나, 일반적 경영활동으로 소액주주들에게 소송을 당해 패소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김우진 서울대학교 경영대 교수는 “상법이 개정된다 해도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소액주주가 기업의 배당이나 유상증자 문제 등으로 번번이 소송을 걸 수는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계열사 간 불공정 합병과 분할, 개인회사에 일감몰아주기 등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행위를 막는 것이 오히려 기업의 투명성과 성장성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