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정말 1천억 안전경영 투자했나, 또 사망사고로 끊이지 않는 '안전 불감증'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책임 회피가 반복되는 노동자 안전사고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시선이 떠오르고 있다. 허 회장이 2023년 12월1일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해 선서를 하는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SPC그룹을 향한 분노가 전방위적으로 끓고 있다. 노동자 사망사고가 반복되면서 말로만 ‘안전경영’을 외치는 것 아니냐는 성토가 쏟아진다.

오너인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안전경영에 적극적으로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SPC그룹의 계속되는 산업재해의 원인을 찾는 시선도 나온다.

20일 비즈니스포스트 취재를 종합하면 SPC그룹이 안전경영위원회를 설치한 뒤에도 노동자 안전사고가 계속되는 것을 놓고 노동계와 정치권 모두 겉치레만 요란한 ‘보여주기식 경영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SPC그룹은 2022년 11월부터 안전경영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그해 10월 중순 경기 평택에 있는 SPL 제빵공장에서 한 직원이 기계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뒤 수습책으로 나온 조치 가운데 하나다.

SPC그룹은 연세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정갑영 위원장을 비롯해 외부 인사 4명을 위원으로 영입했다. 내부 인사가 1명만 참여한 조직으로 구성했는데 이는 그룹의 입김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사업장의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움직임으로 읽혔다.

이 위원회는 출범 초기 SPC그룹의 각 계열사 대표이사들과 상견례를 하며 위원회의 역할과 운영 방안, 향후 계획을 논의했다. 독립성과 중립성,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위원회 운영에 가장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안전경영위원회의 권고 의견을 실행하는 데 계열사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줄 것도 요청했다.

실제로 안전경영위원회는 정기적으로 정기회의를 열고 생산센터 운영현황과 안전경영활동, SPC그룹의 안전 투자 실적 및 산업재해 발생 현황 등을 점검하고 있다.

2025년까지 산업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1천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약속도 위원회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SPC그룹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산업안전에 투자한 금액은 모두 835억 원으로 △고강도 위험작업 자동화 228억 원 △안전설비 확충 225억 원 △작업환경개선 189억 원 △장비 안전성 강화 148억 원 △기타 45억 원 등이다.

하지만 SPC그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전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SPC그룹 계열 공장에서 4년 동안 일어난 산업재해 사건은 572건이다. 다른 제빵공장에서 보기 드문 끼임 사망사고가 유독 SPC그룹에서 많이 일어난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노동계는 바라본다.

대중에게 알려진 사고도 적지 않다. 2023년 7월에는 샤니 성남공장에서 손가락 끼임사고가 발생했으며 그해 8월에는 결국 50대 여성 노동자가 샤니 성남공장에서 반죽 기계에 끼여 숨졌다.

올해 1월에는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쌀 가공 기계를 청소하던 노동자의 손가락이 기계에 끼여 손가락 3개가 절단되는 사고도 났다. 

SPC그룹의 안전경영이 서류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노동계에서 확산하는 이유다.

민주노총 경기본부는 20일 성명을 내고 “SPC그룹은 2022년 사고 이후 안전 투자 확대 계획을 내놓고 3년 동안 1천억 원 투자를 약속하고 주요 생산시설에 표준안전인증을 취득하고 있다고 했지만 이는 말뿐이었다”며 “사고가 발생하면 그때그때 임기응변, 땜질만 하고 폭풍과 같은 질타의 여론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사과하고 사죄하는 시늉만 한다”고 비판했다.

SPC그룹 스스로는 안전경영의 성과를 자화자찬하고 있다. SPC그룹은 홈페이지에 안전경영과 관련한 페이지를 운영하면서 2024년 설정한 과제 382건 가운데 모두 354건을 추진해 진척률 95.2%를 달성했다고 성과로 내걸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안전경영포상 시상식도 열었다. 안전경영 과제 이행 실적 가운데 우수사례를 발굴해 포상금을 전하는 활동인데 공교롭게도 여기에는 19일 노동자가 사망한 SPC삼립 시화생산센터 한 팀이 포함되어 있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안전경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갑영 위원장에게 SPC그룹의 안전경영 활동과 관련해 질의하고자 여러 차례 전화와 문자를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SPC 정말 1천억 안전경영 투자했나, 또 사망사고로 끊이지 않는 '안전 불감증'

▲ SPC그룹은 2022년 11월 안전경영위원회를 설치하고 안전 관련 투자에 3년 동안 835억 원을 집행했다. 하지만 SPC그룹 계열사의 안전사고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안전경영위원회 활동 모습. < SPC그룹 >

허영인 회장이 노동자들의 안전사고에 직접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SPC그룹의 반복되는 안전사고와 무관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허 회장은 2023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에 출석해 연이은 사망사고 발생과 관련한 책임 소재를 묻는 질문에 “회사를 퇴직한지 5년 됐고 그 이후에는 대표이사에게 완전히 위임을 해 책임경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퇴직 이후 5년 동안 한 번도 (공장을)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공분을 샀다.

실제로 SPC그룹 계열사 공장에서 발생한 사고와 관련해 허 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고발됐지만 기소되지 않았다. 그룹 회장이기는 하지만 계열사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이 있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 경영 책임자라고 볼 수 없다는 검찰의 시각이 반영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나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할 의무 등을 부과한다.

문제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서도 허 회장이 책임질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는 점이다.

허 회장은 과거 청문회에 불려 나왔을 때 “공장 사고 이후에 안전경영위원회를 만들었다”며 “해당 위원회에서 (안전과 관련한) 모든 투자에 대한 심의를 하고 상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확보를 명분으로 만들었던 안전경영위원회를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쓸 가능성이 높다고 노동계는 의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3년 전 제대로 처벌했다면, 평택에 이어 반복된 사망과 부상에 제대로 처벌했다면 오늘의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며 “이제라도 죽음의 빵 공장을 멈추고 제대로 된 조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SPC그룹은 19일 발생한 노동자 사망사고와 관련해 김범수 SPC삼립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문을 냈지만 현재까지 허 회장의 직접적 사과와 관련해서는 방침을 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는 21일부터 6월18일까지 서울 서초구 SPC그룹 본사 앞에서 ‘SPC 또 사람이 죽었다’라는 이름으로 옥외집회 개최를 신고한 상태다. 

한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9일 경기도 시흥시 SPC 제빵 공장에서 일어난 사망 사고에 대해 엄정하고 신속한 사고를 촉구했다.
 
이 후보는 이날 SNS에 올린 글을 통해 “2020년 10월에도 SPC 계열 (경기) 평택 제빵 공장에서 노동자 사망 사건이 있었다. 당시 사회적 비판에 SPC 대표이사가 유가족과 국민 앞에 사과했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는데 또다시 유사한 사고가 발생한 데 대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사고 현장 사진을 보면 어김없이 ‘안전 제일’이라는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어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할 일터가 죽음의 터전이 되고, 목숨을 걸고 일터로 가는 세상을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