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저널] 신한금융지주 밸류업에 진심인 이유, '대주주' 재일교포와 관계도 고려됐나](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503/20250313164719_74729.jpg)
▲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오른쪽)이 2025년 1월12일(현지시각)부터 나흘 동안 진행된 일본 기업설명회(IR) 일정 도중 오기노 아키히코 다이와증권 사장(왼쪽)과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올해 첫 해외 기업설명회의 목적지로 일본을 방문했다.
진 회장은 2025년 2월12일부터 나흘 동안 일본 기관투자자 등을 만나 국내외 업권 동향을 공유하며 투자자 불안감 해소를 위해 힘썼다. 신한금융지주의 밸류업 정책의 충실한 수행을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이런 진 회장의 행보를 놓고 임기 3년차를 맞아 연임을 위한 사전 준비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금융권에서 나온다.
신한금융지주에서 재일교포의 영향력이 사실상 오너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신한금융지주, 밸류업에 왜 진심인가
신한금융지주는 지난해 자사주 매입에만 7천억 원을 사용했다. 이에 더해 2025년에는 추가로 1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신한금융지주가 강력한 밸류업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기조에 발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각에서는 대한민국 기업 주식의 저평가 현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을 위한 밸류업 정책이 신한금융지주에서는 재일교포 주주의 실질적 지분율을 높이는 부가 효과를 거두는 데 활용되는 것이 아니냔 말도 나온다.
지분율 증가에 더해 주가 부양 효과도 있는 만큼 재일교포 주주들은 신한금융지주의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환영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신한금융지주의 자사주 매입이나 유상증자는 재일교포의 지분율을 각각 늘이거나 줄이는 효과로 나타났다.
조용병 전 회장 시절 신한금융지주는 2019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모두 1조9천억 원을 유상증자해 발행주식 수를 5660만 주 늘렸다.
다만 조 회장 시절에 진행됐던 신한금융지주의 유상증자 이후 기대됐던 추가 인수합병 등이 이어지지 않았다.
두 차례의 증자를 통해 재무적투자자(FI)가 신한금융지주 사외이사로 진입하게 되면서 신한금융지주의 사외이사가 9명에서 12명까지 늘었다.
조 회장은 이후 2022년 신한금융지주 회장 3연임을 시도했다. 그러다 회장추천위원회 사외이사들과의 면접 도중 돌연 후보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히며 용퇴했다.
◆ 진옥동은 어떻게 재일교포들의 신뢰를 받았나
신한금융지주 밸류업을 통해 재일교포 주주들의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 회장은 재일교포들로부터 공고한 신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 회장은 1997년 오사카 지점으로 발령받으면서 일본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5년 동안 근무한 뒤 2002년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2008년에 다시 오사카지점장을 맡으며 일본 고객과의 관계를 이어갔다.
이후 일본 SH캐피탈 사장, SBJ은행 법인장등을 역임하며 일본에서만 약 18년 동안을 머물었다. 이 기간 진 회장은 일본 금융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인맥을 쌓았다. 신한금융지주 재일교포 주주 원로들의 모임인 재일교포간친회와도 친밀한 관계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에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신한은행의 경영담당부행장,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을 거쳐 2019년에 신한은행장이 됐다.
진 회장은 신한은행장으로 내정되던 시점까지 행장 후보자로 유력하게 거론되지 않았다. 당시 위성호 신한은행장이 분기마다 호실적을 이끌면서 연임이 확정적이라는 말이 나오던 상황이었다.
진 회장의 신한은행장 취임은 위 행장이 이른바 '산한 사태'에서 자유롭지 않은 데다 진 회장을 향한 재일교포 대주주들의 지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신한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에서도 진 회장을 향한 재일교포 주주들의 지지가 영향력이 컸다는 후문이다.
현재도 진 회장과 재일교포의 관계는 돈독한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진 회장은 2024년 주주총회 하루 전날인 2024년 3월25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신한금융지주 본사 사옥에서 재일교포 주주들을 직접 만나 회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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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2024년 11월1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한상의 금융산업위 제41차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한금융지주와 재일교포의 긴밀한 관계는 신한은행이 창립하던 시절부터 시작한다.
신한은행을 세운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은 재일교포 사회의 대부로 불리는 인물이다.
경북 경산 가난한 농가에서 6남매 가운데 2남으로 태어나 15세가 되던 1932년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명예회장은 단순 노무자로 일하는 와중에도 공부에서 손을 놓지 않는 노력가였다. 이러한 성품 덕분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명문사립대학인 메이지대학교를 졸업했다.
광복 이후에도 일본에 남은 그는 전후의 혼란 속에서 쓰루하시 상점가동맹의 초대회장이 되며 교포사회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후 쓰루하시 상점가동맹을 중심으로 한 민간금융기관 설립을 주도했다. 1955년 33세의 나이로 오사카홍은을 만들며 금융인의 삶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금융인으로서 큰 성공을 거둔 뒤 1982년 신한은행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재일교포 340여 명에게서 신한은행을 만들기 위한 출자금을 모았다.
신한은행 설립을 위해 자신의 지갑을 흔쾌히 열었던 재일교포 원로 주주들은 이후 재일교포간친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전체 지분의 약 15%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재일교포 주주들의 대표자로서 이들이 공통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발생한 신한 사태 때도 재일교포간친회의 영향력이 두드러졌다.
신한 사태는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2009년 9월 이 전 명예회장의 경영자문료에 손을 대는 횡령을 저질렀다며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고소하며 시작했다.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도 신 전 사장을 횡령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
이에 신 전 사장은 라 전 회장의 지시로 정치권 실세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 축하금을 건너기 위해 현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주장하며 맞불을 놨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과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자 재일교포 주주들이 전면에 나섰다.
재일교포간친회는 라 회장, 신 사장, 이 행장을 모두 일본 나고야로 불러들였다. 라 회장과 이 행장은 비행기에서 직원이 건네준 자료를 받아 읽었는데 이 자료의 표지에는 ‘간친회 자료’라고 쓰여 있었다.
이후 재일교포 주주들은 문제를 일으킨 세 명이 모두 사퇴해야 한다며 셋 모두에게 신한 사태의 책임을 물었다.
재일교포 주주들은 2010년 10월14일 일본 오사카 뉴오타니호텔에서 모임을 열고 “라응찬 회장과 신상훈 사장, 이백순 신한은행장 등 3명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즉시 사임하라”고 요구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작성해 발표했다.
이후 라 전 회장, 신 전 사장, 이 전 행장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전부 신한금융지주를 떠나게 됐다. 이후 내홍으로 깊은 내상을 입은 신한금융지주의 회복은 갑작스럽게 회장으로 취임한 한동우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몫으로 돌려졌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