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합동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은데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12·3 비상계엄으로 내수가 더욱 힘들어졌다며 추경으로 민생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다.
최 부총리는 비상계엄 사태의 책임 차원에서 경제 상황의 안정적 관리가 마무리되면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윤석열 정부에서 경제수석과 경제부총리를 맡으며 ‘건전재정’의 아이콘 같았던 최 부총리가 퇴임 전 전에 추경 편성으로 정부의 적극 재정에 나설지 주목된다.
1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각종 기금을 제외한 2025년도 세출예산 574조8천억 원 가운데 431조1천억 원(75%)을 상반기에 배정하는 ‘2025년도 예산배정계획’이 확정됐다.
기재부가 이처럼 상반기에 전체 예산의 75%를 집중 배정한 배경은 장기간 고금리·고물가가 지속돼오다 비상계엄 사태까지 겹쳐 내수 경기가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시각이 많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발표한 ‘경제동향 12월’에서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가계·기업 경제심리 위축 등 하방위험 증가가 우려 된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은 정부를 향해 예산의 상반기 집중 배정만으로는 내수 경기를 살릴 수 없다며 추경 편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국 혼란으로 그나마 희망이었던 연말 특수까지 사라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생태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지난 15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추경의 신속한 논의’를 언급한데 이어 민주당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인 허영 의원도 1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추경안 편성을 통해 민생 안정과 경영 회복에 선제 대응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들도 전날 전체회의에서 최 부총리를 향해 추경 편성을 요청했다.
5선의 김태년 민주당 의원은 “시장에서도 내년도 예산이 완성됐다고 보는 경제주체는 아무도 없다고 본다”며 “추경을 통한 (정부) 재정의 역할 없이 지금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나”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호중 의원도 “지금 거시경제 정책 수단의 하나인 금리 조정은 (물가나 유동성을 고려해) 어렵다고 본다”며 “그렇다면 내수 진작을 위해 반드시 추경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물론 예산 편성권은 정부에 있는 만큼 최 부총리가 추경 편성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물론 여야 모두 ‘내수 부진’이 심각하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한 상황은 최 부총리가 추경을 선택할 확률이 높은 이유로 꼽힌다.
더구나 통화정책을 관리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경제의 하방 흐름을 막기 위한 정부 재정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이런 중앙은행의 견해는 최 부총리가 추경 편성을 선택하는데 고려해야 할 부담이 덜 수 있다.
이 총재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내년 예산은 우리 경제에 -0.06%포인트의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경제 하방 위험이 있다"며 "재정을 더 이용해야 할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직접적으로 추경 필요성을 묻는 정태호 민주당 의원 질의에도 이 총재는 긍정적으로 답변하며 “현재 재정은 긴축 수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 민주당의 추경 요구가 있을 때마다 건전재정을 명분으로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던 최 부총리는 일단 2025년도 예산안 집행에 집중하겠다면서도 추경 편성 가능성은 열어뒀다.
최 부총리는 18일 합동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추경 편성 가능성을 묻자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며 “추후 민생상황, 통상환경 변화 등에 따라 적절한 정책 수단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추경이 편성된다면 민주당은 서민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원을 명분으로 ‘민생회복지원금’과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 증액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윤석열 정권에서 민생경제, 특히 소상공인·자영업자 관련 정책이 부재했다”며 “민생경제 회복의 마중물로써 민생회복지원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밖에 이재명 대표가 직접 언급했던 인공지능(AI), 전략 기반시설 투자 예산도 추경 항목에 포함해 줄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예산 편성권을 갖고 있는 정부도 재난 등 위기상황 대응을 위한 예비비 증액이나 정부안에서 약 815억 원 삭감된 R&D 예산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국민의힘의 부정적 기류는 최 부총리의 추경 편성에 정치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추경 편성 요구를 두고 일방적으로 감액 예산안을 통과시키더니 이제와 예산을 증액하자고 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최 부총리를 만나 “(민주당이)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라며 “내년 3월이나 6월 예산 조정 필요성이 있을 때 추경을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권성동 권한대행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여야정 국정협의체 참여도 거부한 채 당정 협의를 통해 여당 프리미엄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만 경제 상황과 감액 예산안의 한계를 고려할 때 최 부총리가 추경 편성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다. 이재명 대표도 이날 자신을 예방하러 온 권 원내대표에게 직접 '민생 추경'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우석진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KBS와 인터뷰에서 “비상한 시국에는 비상한 방안을 동원할 필요가 있는데 감액된 상태로 예산이 통과됐기 때문에 빨리 이 부분을 정상화하는 차원에서 추경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