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에서 늘어나는 특허침해 소송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반도체·통신 등 경쟁 기업들의 특허 소송뿐 아니라, ‘특허 괴물’(Patent Troll)로 불리는 특허관리전문기업(NPE)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되면서 소송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두 기업의 미국 내 매출이 늘어남에 따라 소송을 제기한 NPE가 요구하는 배상액 규모도 커지면서, 소송 패소에 따른 비용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다.

25일 관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에서 NPE들의 급증하는 특허침해 소송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NPE는 특허권 등과 같은 지식재산권을 행사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이나 조직을 말한다. 주로 중소기업들로부터 특허권을 사들여 대기업을 상대로 특허 소송을 진행해 배상금을 뜯어내는 ‘특허괴물’로 불린다.

로이터는 최근 텍사스 동부지방법원 배심원단이 삼성전자가 미국 반도체 기업이자 NPE로 분류되는 넷리스트의 메모리 데이터 개선 기술을 침해했다며 1억1800만 달러(약 1650억 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8월에는 삼성전자가 넷리스트의 클라우드 컴퓨팅 특허를 침해했다며, 3억315만 달러(약 4200억 원)의 배상금 지급하라는 배심원의 평결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 법 전문 매체 로닷컴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9월 전동차 특허 관련 NPE로 분류되는 모조모빌리티에 1억92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또 지난 4월에는 통신특허 NPE 지플러스(G+)커뮤니케이션과 5G 특허 소송에서 패소해 1억4200만 달러의 배상금 지급 판결을 받기도 했다.

LG전자는 지난 6월 미국 NPE 프록센스와 생체 인증 관련 6개의 기술 특허 침해로 소송에 휘말렸다. 프록센스는 2021년에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삼성페이에 적용된 기술을 문제삼으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승소하지 못하고, 합의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소송을 마무리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한 미국 특허 소송 건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미국 기업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 텍사스 동부지방법원을 중심으로 소송이 몰리고 있다.

미국 특허분석업체 유니파이드패턴츠에 따르면 이날까지 삼성전자를 상대로 텍사스 법원에 제기된 특허침해 소송은 총 572건이며, LG전자는 280건이다. 현대자동차 45건, SK하이닉스 7건 등에 비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현재 텍사스 법원에서 심리 중인 특허 소송은 삼성전자가 101건, LG전자가 20건이다.

지난 11일부터 20일까지 단 10일 동안 브릿지컴, 트랜스패런스, 웨이브센스, 클라우드컨트롤, 엔셀리온 등 5개 회사가 각각 통신 특허, 그래픽인터페이스(GUI) 특허, 동작 감지 특허, 클라우드 컴퓨팅 위젯 특허, 센서 특허 등을 침해했다며, 삼성전자를 상대로 텍사스 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클라우드컨트롤, 웨이브센스, 트랜스패런스 등 3개 기업은 NPE로 추정된다.

이같은 NPE들의 특허 소송 비율은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미국에서 제기된 특허 소송 가운데 NPE 소송 비율은 2019년 71.6%에서 지난해 76.2%까지 상승했다.
 

이같은 특허 소송 리스크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막대한 비용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매출이 늘어나면서 소송을 제기하는 NPE가 요구하는 배상금 규모가 커지고 있는 데다, 3년 넘게 걸리는 소송 비용 또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 NPE 데마레이는 지난 2020년 삼성전자를 상대로 40억 달러(약 5조3천억 원)를 요구하는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3년7개월 만인 올해 2월 배심원단이 삼성전자 손을 들어주며, 1심 승소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데마레이는 항소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미국 매출 증가는 NPE의 배상액 규모를 키우고 있다. 특정 기기에 적용된 기술과 관련된 특허 소송이 진행되면, 해당 기기를 통해 벌어들인 매출을 기준으로 배상금이 산출되기 때문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미국의 평균 배상금 규모는 한국과 비교해 69배 가량 높다. 게다가 소송을 진행하기 위한 변호사 고용 등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한국보다 약 40배 비싼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늘어나는 특허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 IP센터에 수백 명의 법률 관련 인력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이번 연말 인사를 통해 늘어나는 특허 소송을 방어하기 위해 특허 전문가 2명을 승진시켰다고 밝혔다.

또 미국 특허심판원(PTAB)에 특허무효화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는 넷리스트가 침해를 주장한 8건의 특허 가운데 7건에 대한 무효 판정을 받았다.

다만 소송 빈도는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반도체 분야와 5G 통신 분야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하나의 IT 제품에 수많은 기술이 탑재되면서 특허 소송에 처할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노트북 등 IT 제품에는 점점 더 많은 기술과 부품이 탑재되고 있어 소송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이 자국 기업 특허를 우대하는 경향이 있어, 많은 기업들은 배상액보다 적은 합의금을 통해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