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준 기자 hjkim@businesspost.co.kr2024-11-05 11: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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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여의도에서 건설 노동자에게 숙련 등급에 따른 임금을 보장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적정임금제 논의에 다시 불이 붙는 모양새다.
최근 원자잿값 상승 및 대외 경제 여건에 따른 공사비 인상으로 인한 갈등에 시달리는 상황 속에서 건설 노임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사업주들의 우려가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 <복기왕 의원실>
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4일) 건설근로자에게 적정한 임금을 보장하도록 하는 적정임금제 도입을 위한 건설산업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복 의원의 개정안에는 공공기관이 발주한 건설공사 또는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공사에서 일하는 근로자에게 적정임금이 지급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토교통부 장관과 고용노동부 장관의 협의를 거쳐 직종별로 산정된 적정임금을 매년 공시하도록 했다. 적정임금 지급 의무를 위반하면 시정명령, 영업정지, 과징금 등의 실질적 행정제재를 내릴 수 있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복 의원은 “다단계 도급과정에서의 노무비 삭감경쟁은 공사비가 줄어들고 다시 노무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며 “적정임금을 보장하고 양질의 전문인력이 양성되는 선순환 구조로 전환해야 건설사와 노동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산업에서 적정임금제가 낯선 제도는 아니다.
앞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국가철도공단은 2017년 12월 ‘건설산업 일자리 개선대책’을 통해 도입 방향이 발표되자 20곳의 사업장에서 적정임금제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적정임금제 시범사업은 무분별한 공사비 삭감 경쟁을 막고 건설 현장의 정상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규섭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 전문위원은 2023년 12월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건설분야 적정임금제 추진성과 및 효과적 확산방안 논의 국회토론회’에서 적정임금제 시범사업이 적용된 곳과 일반 공사 현장을 선정해 비교한 결과를 발표했다.
심 전문위원에 따르면 적정임금제가 적용된 공사에서 숙련 내국인의 우선 고용이 일어나면서 공사 금액 자체는 올랐다.
적정임금제가 적용된 공사 2건의 평균 공사 금액은 333억5천만 원이었고 일반공사 2건의 평균 공사 금액은 277억2천만 원이었다.
그러나 숙련 내국인의 투입을 통해 1억 원당 노동투입량은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일반 공사 현장에서 노동투입량이 1억 원에 5.1명, 107.4일이었으나 시범사업 현장에서는 1억 원에 3.1명, 81.2일이 필요했다.
시범사업 현장의 노동생산성 또한 일반 현장(1인에 1970만 원, 1일에 93만 원)보다 높은 1인에 3200만 원, 1일에 12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공사를 마무리하기까지 평균 1405.5(내국인 965.5명·외국인 440명)명의 노동자가 투입돼 평균 2만9761일을 일한 일반 현장과 달리 적정임금제 공사는 그보다 적은 평균 1043.5명(내국인 921.5명·외국인 122명)이 투입됐음에도 공사 신고일 수가 2만7073.5일로 적었다.
▲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2023년 11월15일 국회 소통관에서 건설근로자 '적정임금제' 안착을 위해 건설산업기본법·건설근로자법·국가계약법·지방계약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적정임금제의 효과가 일정부분 나타나자 제21대 국회 회기 중이던 2023년 11월15일 박주민·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적정임금제 도입 4법’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들은 “건설산업에 여전히 만연한 불법하도급과 임금 체불, 고용불안, 안전사고 등의 현실이 바뀌지 않는 지금 건설산업 개혁을 위한 입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며 “민주당은 주먹구구식이 아닌 정상적이고 투명성이 담보되는 건설 현장을 만들고 모든 부문에 걸쳐 적정임금제를 안착시키고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온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건설업 사용자 단체들은 적정임금제에 부정적 태도를 나타내 왔다.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적정임금제 도입을 뼈대로 삼아 2021년 2월1일 대표발의한 건설산업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의 검토보고서를 살펴보면 대한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정보통신공사협회 등 사업주단체는 적정임금제 도입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이들은 적정임금제를 반대하는 이유로 사업주 부담, 공사비 증가, 산업간 형평성, 미숙련공 일자리 감소, 외국인 노동자 수혜 등의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렇다 보니 적정임금제의 사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건설근로자 기능등급제조차 현장에 제대로 정착 못하고 있다.
2021년 5월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시행된 건설근로자 기능등급제는 건설근로자를 근로일수, 자격, 교육, 포상 이력 등을 기준으로 초·중·고·특급의 4단계 등급으로 나누는 것을 뼈대로 한다.
기능등급제는 적정임금제를 도입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근로자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등급 매길 수 있어야 그에 따른 적정 임금을 지급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능등급제는 다양한 홍보활동에도 불구하고 근로자, 사업주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자료에 따르면 2024년 2월까지의 누적 기준으로 알림톡 52만 건, 건설현장 방문 5399회 등 홍보를 펼쳤음에도 기능등급보유대상자(분기 평균 100여만 명) 가운데 기능등급증 발급자는 2만7621명으로 2.8% 수준에 그쳤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올해 3월 발표한 건설기능등급제 체계 개선 연구용역에는 지금의 경력 중심의 전체 건설 기능 등급별 구분 체계 아래에서는 현장 수용성이 부족하다는 분석이 담겼다. 아울러 활용 방안 법제화 지연으로 인해 안정적 정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최근 국토교통부는 10월 공사비 안정 대책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원활한 건설 인력 수급 방안으로 건설기능등급을 보유한 숙련인력을 채용하면 우대하겠다는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 정책을 발판으로 건설기능등급제 및 적정임금제 도입에 속도가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건설노동자에 적정임금을 지급하려는 시도는 현재도 이뤄지고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부실 공사 근절을 위한 방안으로 건설사업관리 분야에서 기술인 적정임금 지급확인제를 시행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SH가 올해 1월 발표한 SH형 건설사업관리에는 건설사업관리기술인의 적정 임금을 보장하고 장기적으로 건설사업관리 업계의 인력 수급 불균형 해결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자하는 내용이 담겼다.
LH도 최근 발주 건설사업관리 용역에 적정노임 지급 확인제도를 적용하기로 했다. 사업자가 적정노임을 준수하지 않으면 계약해지나 입찰제한 등 페널티를 부과한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