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권선주 IBK기업은행장
권선주 IBK 기업은행장.


권선주는 IBK기업은행장이다. 행원부터 지점장을 거쳐 차근차근 승진한 국내 은행산업 최초의 여성수장이다.

권선주는 1956년 11월12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다.

문학소녀였던 권선주는 경기여고를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방송국에서 일하다가 신문사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은행원이 많았던 집안의 영향을 받아 중소기업은행에 입사했다.

서울 방이역 지점장, CS센터장, 외환사업부장, 중부지역본부장을 역임했고 카드사업본부 부행장을 거쳐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 겸 금융소비자보호센터장을 맡았다.

기업은행 은행장으로 선임되면서 한국 은행산업 역사상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 됐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한국 시중은행 역사상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다. 꼼꼼한 메모와 관리로 디테일에 강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취임 후 2년 동안 리더십 있는 경영으로 기업은행으로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통을 통해 조직원들의 의견을 수평적으로 수렴해왔다. 조용한 리더십을 표명하며 명함에 개인 휴대폰까지 게재했다.

취임하고 1년 동안 비용절감을 꾸준히 강조해 2014년 연간 당기순이익을 9천억 원대로 끌어올려 당기순이익 1조 원 달성을 코앞에 두고 있다. 취임 1년 동안 알찬 경영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중소기업대출은 7조 원의 순증을 기록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또 기술금융 실적에서 2014년 말 은행 가운데 1등을 기록했다. 그러나 기술금융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을 담보로 해서 대출을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리스크가 높아져 부실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도 받는다.

첫째 아이를 낳고 한 달 만에 복직하고 둘째 아이를 낳을 때는 출산 전날까지 출근할 정도로 열정과 끈기, 대담함과 도전정신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여성 중시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남성들을 물리치고 행장에 올랐다는 시각도 있어 ‘청와대 인사’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니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고 있다. 그는 그동안 정부의 기술금융과 핀테크 정책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성과를 냈다. 박 대통령은 “기업은행장이 기술금융이라든가 핀테크에 앞장서고 있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다른 많은 분들도 이 여성 은행장을 좀 본받으라”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성실하고 꼼꼼한 성품을 지녔다. 1978년부터 기업은행에서 35년 동안 여러 부서에서 일해 은행 실무에 정통하다.

남성들 틈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했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동료들보다 항상 10분 먼저 사무실에 도착했고 틈날 때 마다 신상품개발이나 은행약관 등 업무에 필요한 공부를 했다. 금융연수원에서 진행하는 통신연수 교육과정도 모두 마쳤다.

강단있는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칙을 벗어나는 일에는 예외를 두지 않는다.

지점장으로 근무할 당시 악덕하기로 잘 알려진 사채업자들이 권선주가 일하던 지점에 매일 수억 원을 예탁한 뒤 여러 가지 부정한 특혜를 요구했다. 그러나 권선주는 이들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2015년 12월부터 성과주의 도입에서는 기업은행 노조 등 내부 구성원과의 이해조정과 갈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8년에 중소기업은행 대졸공채 17기 행원으로 입사했다.

1998년 서울 방이역 지점장을 맡았다.

2008년 여신 및 외환지원센터장을 지냈다.

2010년 중부지역 본부장을 지냈다.

2012년 리스크관리본부장에 임명됐다.

2013년 12월부터 IBK기업은행 은행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2016년 취임 3년차를 맞아 2500여 명에 이르는 최대 규모의 임직원 승진인사를 실시했다.

2016년까지 글로벌 100대 은행에 진입하겠다는 비전을 세우고 총자산 260조, 중소기업대출 125조 원, 중소기업고객 수 130만 개 달성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 학력

풍문여자중학교를 졸업했다.

1974년 경기여자고등학교를 거쳐 1978년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아버지가 상업은행 지점장을 지냈다. 언니와 동생도 은행원이었다.

남편은 아웃소싱 전문기업인 윌앤비전의 이화택 대표로 연세대 선후배 사이다. 권선주는 영문과를, 남편은 법학과를 졸업했다. 두 사람은 1남1녀를 두었다.

남편 이화택 대표는 효성그룹의 상사맨 출신으로 효성물산에 입사한 후 효성그룹 계열사인 텔레서비스와 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즈, 효성 ITX 등에서 CEO를 지냈다. 2009년 효성ITX 대표에서 물러난 뒤 콜센터 위탁운영, 인재파견, 시설관리 등 아웃소싱 전문기업인 윌앤비전을 설립했다.

◆ 상훈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Fortune)이 선정한 기업부문 파워 여성 50인에서 47위를 기록했다.

2014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게 2014년 ‘올해의 여성상’을 받았다.

2014년 ‘2014 아주경제 금융증권대상 종합대상(기관상)’을 받았다.

2015년 ‘2015 대한민국 여성인재 경영대상’을 받았다.

2016년 ‘2016 이데일리 대한민국 금융산업대상’에서 금융감독원장상을 받았다.

◆ 상훈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Fortune)이 선정한 기업부문 파워 여성 50인에서 47위를 기록했다.

2014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게 2014년 ‘올해의 여성상’을 받았다.

2014년 ‘2014 아주경제 금융증권대상 종합대상(기관상)’을 받았다.

2015년 ‘2015 대한민국 여성인재 경영대상’을 받았다.

2016년 ‘2016 이데일리 대한민국 금융산업대상’에서 금융감독원장상을 받았다.

어록


"아무래도 (외부행장이 들어왔을 때와 내부에서 승진하는 것 가운데) 내부에서 승진하는 쪽이 업무파악을 하기 쉬울 것이다." (2016/10/04, 국정감사에서)

“전경련 탈퇴에 대해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검토하도록 하겠다.” (2016/10/04,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비대면 상품 판매 비중 40%, 자회사를 포함한 비이자이익 비중 20%, 해외이익 비중 20%를 향해 나아가자.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은행원의 역할이 고객의 성공과 행복을 돕는 ‘금융 컨설턴트’로 바뀔 것이다. 자산관리 역량을 키워 창업·성장초기 기업에 대한 컨설턴트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금융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자.” (2015/08/01, 서울 을지로 본점에서 창립 55주년 기념식에서)

“문화콘텐츠산업 육성을 위해 영화 투자를 늘리고 있다.” (2016/07/26, 인천상륙작전 기업은행 임직원 시사회에서)

“서서히 빠져드는 늪지형 위기를 맞았다. 건전성, 수익성 제고와 함께 부단한 자기계발로 새로운 혁신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2016/07/22, 지역본부별 영업점장회의에서)

“기업은행은 국내 은행권 가운데 최초로 중소기업대출 130조원을 달성했다. 이번 업무협약을 계기로 국토교통 분야 중소기업의 성장·지원에 더 힘쓰겠다.” (2016/07/20, 한강홍수통제소에서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자녀의 학업성취는 ‘부모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가 중요하게 작용하므로 최선을 다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가정과 일 모두 완벽히 하려 하기보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2016/07/15,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는 직원 77명과 대화하며)

“도관은행 역할을 한다는 것은 발표를 보고 알았으나, 실무차원에서는 검토했다.” (2016/06/30, 국회 정무위원회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지급보증과 관련해)

“한국에서 육아와 가사는 전적으로 여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 이런 문화가 지금은 많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성공적인 경력을 개발하기 힘들다.” (2016/6/20, 올리버 와이만과 인터뷰가 담긴 '금융업계 내 여성'보고서에서)

“기업은행에서 도입하려는 성과주의는 무엇보다 절차적인 피드백을 강조하고 있다. 일방적인 결정이 아니라 소통을 통한 설득으로 해결하겠다. 성과연봉제 기준 가안이 나왔지만 그대로 추진하지 않겠다. 해당 기준을 수정하고 보완해 진행하겠다.” (2016/05/11, 기업은행의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해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나는 은행 일에 적합한 사람이다.” (2016/02/2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정계진출에 대해)

“은행의 실력은 단기적으로 수익성으로 나타나고 장기적으로는 건전성으로 증명된다. 건전성 노하우를 시스템에 담아 ‘조기경보 시스템’과 ‘워치 리스트’를 업그레이드하고 점검 결과에 따라 조기 구조조정으로 연계해 ‘기업을 살리는 구조조정’을 하겠다.” (2016/01/28, 한 매체와 서면 인터뷰에서)

“경쟁심화로 은행사업이 레드오션화 되는 가운데 향후 수익창출 전망 또한 불투명한 상황이다. 게다가 핀테크 출현과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나 비대면 실명확인제 도입 등 금융환경과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상황을 맞고 있으며 한계기업과 가계부채와 같은 구조적 문제점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2016/01/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비대면 채널 강화 등 금융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성장 기반을 쌓자.” (2016/01/23, ‘2016년 전국 영업점장 회의’를 열고 올해 경영 전략을 발표하면서)

"인터넷 전문은행은 큰 그림이 어떻게 잡히느냐에 따라서 방향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현재로서 어떤 형태로 갈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관심을 가지고 모니터링하고 있다." "모뉴엘 사태와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한다는 것은 단순히 여신심사를 강화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스템을 정비해 제대로 된 대출을 하겠다는 의미다."(2016/01/20,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성과주의 도입을 위해 TF를 구성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노력해 나갈 것. 올해 업무계획에 성과주의 도입이 들어가 있다." (2016/01, ‘2016년 범금융 신년인사회’에 참석하면서)

"기술금융과 평생고객화를 꾸준히 추진해나가겠다"며 "이런 희망경영의 의지를 IBK캐릭터에 담았다." (2015/02, 기업은행의 새로운 로봇 캐릭터 ‘기은센’을 소개하면서)

“진정한 내실이란 은행의 기본인 성장성, 건전성, 수익성 모두를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굳건히 다지는 것. 그 출발점은 바로 고객이다.” (2014/12/09,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지점장시절이나 부행장 때도 마찬가지로 비밀에 부칠 것을 전제로 승진이나 진로, 가족문제에 대한 고민도 서슴지 않고 나누고는 했습니다. CEO가 권위적이고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고민을 듣고 공감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조직을 창의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4/0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3년 임기 동안의 경영방침을 '희망의 금융'으로 정했다." “내실성장으로 3년간 다른 은행 대비 50조 원 이상의 자산 성장을 이루겠다.” (2014/02/12, 취임 후 열린 첫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말 107조 원 규모인 중소기업 대출을 2016년 약 125조 원으로 확대해 시장점유율을 23%까지 높여 나갈 것이고, 중소기업 고객 수도 130만 업체로 확대해 350만 국내 중소기업 중 3분의 1 이상을 고객으로 모실 것이다." “시장점유율 1위를 확고히 할 것이다.” “앞으로 3년간 매년 6% 수준의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한다면 100위권 진입은 충분히 달성가능하리라 생각한다.” (2014/02/12, 취임 후 열린 첫 기자간담회에서)

“제게 주어진 사명은 IBK기업은행을 대한민국 1등 은행의 반열에 올리는 것이다.” (2013년 12월 취임식 자리에서)

“여기서 칼을 휘두르면 내 인생이 아니라 당신 인생이 망가지는 겁니다. 정말 그러고 싶으세요?” (1992년 워커힐 지점에서 근무할 때 영업이 끝나고 찾아온 부도난 중소기업 사장이 대출을 거부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칼을 들이밀며 위협했을 때 대처하던 중에)

◆ 평가

한국 시중은행 역사상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다. 꼼꼼한 메모와 관리로 디테일에 강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취임 후 2년 동안 리더십 있는 경영으로 기업은행으로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통을 통해 조직원들의 의견을 수평적으로 수렴해왔다. 조용한 리더십을 표명하며 명함에 개인 휴대폰까지 게재했다.

취임하고 1년 동안 비용절감을 꾸준히 강조해 2014년 연간 당기순이익을 9천억 원대로 끌어올려 당기순이익 1조 원 달성을 코앞에 두고 있다. 취임 1년 동안 알찬 경영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중소기업대출은 7조 원의 순증을 기록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또 기술금융 실적에서 2014년 말 은행 가운데 1등을 기록했다. 그러나 기술금융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을 담보로 해서 대출을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리스크가 높아져 부실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도 받는다.

첫째 아이를 낳고 한 달 만에 복직하고 둘째 아이를 낳을 때는 출산 전날까지 출근할 정도로 열정과 끈기, 대담함과 도전정신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여성 중시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남성들을 물리치고 행장에 올랐다는 시각도 있어 ‘청와대 인사’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니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고 있다. 그는 그동안 정부의 기술금융과 핀테크 정책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성과를 냈다. 박 대통령은 “기업은행장이 기술금융이라든가 핀테크에 앞장서고 있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다른 많은 분들도 이 여성 은행장을 좀 본받으라”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성실하고 꼼꼼한 성품을 지녔다. 1978년부터 기업은행에서 35년 동안 여러 부서에서 일해 은행 실무에 정통하다.

남성들 틈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했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동료들보다 항상 10분 먼저 사무실에 도착했고 틈날 때 마다 신상품개발이나 은행약관 등 업무에 필요한 공부를 했다. 금융연수원에서 진행하는 통신연수 교육과정도 모두 마쳤다.

강단있는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칙을 벗어나는 일에는 예외를 두지 않는다.

지점장으로 근무할 당시 악덕하기로 잘 알려진 사채업자들이 권선주가 일하던 지점에 매일 수억 원을 예탁한 뒤 여러 가지 부정한 특혜를 요구했다. 그러나 권선주는 이들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2015년 12월부터 성과주의 도입에서는 기업은행 노조 등 내부 구성원과의 이해조정과 갈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 기타

2010년 처음으로 내부 승진으로 조준희 행장이 임명된 이후 이뤄진 두번째 내부에서 행장에 올랐다.

여성 최초의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이성남 민주통합당 의원이 ‘롤모델’이자 ‘멘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편이 외국발령을 나갔을 때도 한국에 아이들과 남았는데, 경력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것이었다.

스스로 슈퍼맘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아들과 딸에게 공평하게 집안일을 분담시키며 일을 나눈다고 한다. 가족들과 대화를 많이 하지만 예의나 규칙에 엇나간 행동에는 자식들에게 크게 야단친다고 한다

남편이 해외발령으로 떨어져있어 혼자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아팠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이어가기를 잘했다고 고백했다.

2015년 3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발표한 ‘2015년도 정기 재산변동사항 신고내역’에 따르면 권선주의 총재산은 51억3071억 원이다. 이 가운데 21억 원이 부동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