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시행되면 국내 철강업계가 CBAM 인증서 비용만 10년 동안 3조 원을 부담해야 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28일 ‘CBAM 도입이 철강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보고서를 통해 CBAM 도입 뒤 국내 철강 부문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 2026년 851억 원 수준에서 점차 증가해 2034년부터 5500억 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대한상의 "EU 탄소국경조정제 앞둔 철강업계, 인증서 부담만 10년간 3조"

▲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으로 국내 철강업계가 인증서 비용만 10년 동안 3조 원을 부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이는 국내 핵심 기간산업인 철강 부문에서 글로벌 환경 규제로 인한 재무적 부담이 향후 급격하게 증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CBAM은 EU가 탄소비용이 반영되지 않은 수입품에 EU 생산제품과 동일한 수준의 탄소비용을 CBAM 인증서 구매를 강제함으로써 부과하는 제도다.

EU는 역내 기업의 경쟁력 약화에 대응하고 탄소누출을 방지하고자 2026년 관련 제도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CBAM 적용 대상 6개 품목 가운데 EU 수출 규모가 가장 큰 품목은 철강(2023년 기준, 6개 품목 46억 달러, 철강 42억 달러)이다.

국내 철강산업은 조강 생산량 기준 세계 6위, 수출규모 기준 세계 3위의 경쟁력을 보유한 주력산업이다. 

한국은행의 투입산출표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철강산업이 전방산업에 미치는 영향(전방연쇄효과 1.52)은 전 산업(1.0)과 제조업 평균(1.05)을 크게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23년 철강제품 수출을 통한 생산 유발액은 약 101조 원, 부가가치 유발액은 약 2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만약 CBAM 본격 시행으로 철강업계 비용부담이 가중돼 생산활동이 위축되면, 다른 제조·서비스업 전반의 생산과 부가가치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SGI는 철강품목을 대상으로 CBAM 인증서 구매 비용을 추정했다. 시행 초기인 2026년에는 851억 원 수준이지만 2030년 이후 빠르게 증가해 2034년부터 매년 5500억 원을 상회해 10년 동안 누적금액이 3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나타났다.

2030년 이후 비용 증가 폭이 큰 이유는 EU가 2030년부터 무상할당을 급격히 줄여 2034년에 유상할당 비중을 100%로 높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박경원 SGI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제시한 비용은 CBAM 도입으로 가장 큰 재무적 부담을 지닐 철강산업이 부담해야하는 인증서 가격만 의미한다”며 “추후 철강 외에도 알루미늄 등 다른 산업이 부담해야 하는 인증서 비용과 이들 산업의 생산품을 중간재로 활용하는 연관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까지 고려한다면 CBAM 도입으로 인한 산업계의 부담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CBAM 대응을 위한 근본적 대책은 철강 등 주요 제품의 내재 배출량 자체를 낮추는 것이다.

특히 EU에 수출하는 주력 제조업의 저탄소 제품 라인업 구축의 중요성과 저탄소 제품의 국내 시장 안착을 위한 정책 마련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또 2025년 이후 기업은 EU 규정에 따라 탄소배출량을 보고해야하기 때문에 제품의 내재 배출량 국제 표준을 설계하는 과정에 정부 참여가 요구되고 있다. 

CBAM 인증서 구매부담을 낮추기 위해 우리나라의 무상할당 비율을 낮추거나, 탄소가격을 높이는 것은 신중해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CBAM 대응 목적으로 무상할당 비중을 EU 수준으로 조정한다면 EU에 수출하지 않는 기업이나 CBAM 대상이 아닌 제품에까지도 부담이 급증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도 무상할당 비율 조정에 앞서 수입 철강재와 비교해 국내 제품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장치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