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리포트] 출판 불황기에 기업인을 주목하는 이유

▲ 이강필 세이코리아 본부장이 불황기에 경영자들의 전문성을 담은 책들이 주목받는 이유를 설명했다. <세이코리아>

[비즈니스포스트] 우리 출판사에서 최근 펴낸 책 '무기가 되는 생각법'에 이런 구절이 있다.

‘왜(Why)라는 질문은 초점을 본질에 집중시키고 호기심과 창의성에 불을 붙이는 강력한 힘이 있다.’

꽤 많은 분량을 털어 ‘올바른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책의 저자는 근본적 원인을 분석하는 방법 중 하나로 ‘Why 다섯 번 묻기’를 소개하고 있다. 드러난 현상이 아닌 근원을 파악하는 문제해결 기법으로 이미 그 유용성이 검증된 방법이라고 한다. 

책을 읽은 뒤 나는 이 기법을 통해 출판 불황의 해법을 찾아보기로 하고 먼저 이런 질문을 만들었다. ‘정성 들여 만든 책이 왜 잘 안 팔리는가’.

정확한 답을 구하려면 정의부터 정확해야 한다. 먼저 ‘정성 들여 만든’이란 부분이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 책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개 책을 좋아하고, 책 만드는 게 좋아서 이 일을 한다.

창조적 작업이 주는 희열감과 함께 지식 전수자로서 자부심, 독자와 연결이 주는 보람이 그 근원이다. 그렇다면 ‘정성 들여’란 말은 상품으로 내놓은 책들에게는 붙이나마나 한 사족이다.

결국 ‘안 팔린다’가 문제의 핵심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함정이 있다. 불황기에도 여전히 ‘베스트셀러’는 존재한다. 그래서 이 질문에서 ‘책이 안 팔린다’가 아니라 ‘기대만큼 책이 안 팔린다’로 수정했다. 

‘기대만큼’이란 수식어가 붙고 보니 모든 상품과 재화에 공히 적용되는 문제인 마케팅, 즉 파는 실력에 관한 부분과 연결된다. 출판사는 ‘될성부른 책’이란 판단이 들면 책값의 몇십몇백 곱절을 투자해 서점과 SNS에 광고를 돌리고 소문이 나도록 군불을 땐다.

그러나 그 결과가 모두에게 창대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책을 많이 판 출판사도 비용을 많이 써서 그런지 예전처럼 행복한 표정은 아니다. 이 정도로 문제를 정의한 뒤 본격적으로 스스로에게 ‘왜’를 묻기 시작했다.
 
Why 1. 책이 왜 잘 안 팔리나. 

잘 안 팔리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올 4월 내놓은 ‘2023년 출판시장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작년까지 전국 1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서적구입비(명목금액)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중이다. 2023년엔 1만11원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2022년(1만294원)보다 283원(-2.7%) 감소한 것이다. 현상에 대한 원인을 찾기 위해 다음 ‘왜’로 넘어갔다.

Why 2. 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한 원인 분석은 ‘책의 쓸모가 날로 줄어들기 때문’으로 잡았다. 흔히 책을 일러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는데, 세상은 몸의 양식을 챙기기에 바쁘다. ‘독서는 완성된 인간을 만든다’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격언은 생존 자체에 목을 매고 있는 사람들에겐 한가한 얘기다. ‘시간을 초월한 대화’로서 독서가 가능하려면 먹고 사는 문제가 일정 수준 해결되어야 한다. 아니면 그 방법을 알려주는 노하우를 전수하든가. 불황기에 돈 버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나가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게 전부일까. 이보다는 오히려 책을 대신할 수많은 대체재가 도처에 널려 있다는 점을 더 주목해야 한다. 가장 위협적인 상대는 유튜브로 대별되는 영상 콘텐츠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보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승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스마트폰을 본다. 이에 따라 나는 Why 2의 답으로 ‘책보다 더 경쟁력 있는 볼거리가 많다’라고 적었다.

Why 3. 책은 왜 다른 미디어 및 콘텐츠와 경쟁에서 밀리는가.

사람들이 시간을 많이 소비하는 활동과 장소가 사업 기회를 창출한다는 건 비즈니스의 기본상식이다. 온라인 쇼핑에 일격을 당한 유통업체들이 제발 와달라며 오프라인 쇼핑몰에 볼거리를 꾸리고 각종 이벤트를 벌이는 건 바로 ‘시간=돈’이란 공식을 믿기 때문이다. 

출판도 다르지 않다. 독자가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고, 다른 책을 집으면 내 책을 읽을 시간은 사라진다. 그래서 독자에게 간택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출판쟁이들은 시장에 먹히는 이름 있는 저자를 찾아 헤매고, 독자의 지갑을 열게 할 ‘섹시한’ 제목과 표지를 구상하기 위해 불면의 밤을 보낸다.

종이책이 다른 미디어와 경쟁에서 밀리는 1차적인 이유는 만족의 즉각성과 접근성에 있다. 그런데 책을 포함한 인쇄 매체는 상품으로서 약점이 있다. 시간과 함께 몰두를 위해 두뇌를 같이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결정적으로 대부분의 디지털 콘텐츠와 달리 지갑을 열어야 접근할 수 있는 장벽도 있다. 

그러나 ‘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늘어놓은 현상을 ‘바꿀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건 적어도 문제 해결 차원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이들과 전혀 다른 축을 가진 질문으로 방향을 틀었다. 

Why 4. 사람들은 왜 책을 살까.

많은 이들에게 책은 의식주와 같은 필수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뭔가를 읽고 그 내용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정리하는 지적(知的) 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 읽고 쓰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어제보다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고, 이런 개인의 공력이 모여 인류는 진보한다. 

한 때 서점의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재테크 관련 책이 휩쓴 시절이 있었다. 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 나만큼 벌 수 있다’는 노하우를 알려주었고 사람들은 이에 열광했다. 시대의 가치가 된 ‘경제적 자유’를 선도하고 확산시킨 매개체가 책이었다. 책이란 물건이 목숨을 다하지 않은 이유이자 앞으로도 수많은 책이 나올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앞서 살핀 Why들과 논리적 연결점이 떨어지는 얘기를 'Why 5'로 말하고자 한다. 내가 이끌고 있는 출판사 세이코리아는 경제경영서, 그 중에서도 경영자 이야기를 핵심 출간 분야로 삼고 있다.

한국경제의 가장 큰 자산은 공장설비가 아니라 사람, 즉 경영자들이라는 믿음을 갖고 잡은 방향이다. 왜 경영자인가.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왜 중요한가. 이게 Why 5의 질문이다. 

우리가 경영자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들의 콘텐츠가 가진 깊이와 넓이가 가진 상품성 때문이다. 기업이란 조직은 살아 숨쉬는 유기체처럼 자체의 힘으로 진화 발전 변화한다.

조직을 진두지휘하는 경영자는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조직 내부의 힘과 외부 조건을 비벼내는 일을 맡고 있다. 그리고 그의 행위 안에는 많은 출판 카테고리를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와 서사가 담겨 있다.

한 분야에 깊은 전문성을 가진 사상가, 과감한 결단력을 발휘하는 전쟁터의 장군, 여리디 여린 감성의 시인, 시대를 읽는 역사가, 믿음을 이끌어내는 종교인. 편집자의 손을 거쳐 다듬어진 경영자 스토리는 어떤 소설이나 역사서와 비교해도 흥미진진함과 교훈, 감동이 작지 않다.

출판사가 해야 할 일은 책을 읽지 않는 원인을 찾고 그런 세상을 원망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이전보다 더 치열하게 사람들이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찾아내 맛깔나게 만들어내는 일이다. 앞으로 내놓을 경영자 스토리에 큰 관심을 가져주길, 그리고 더 많은 경영자들이 우리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길 기대해 본다. 이강필 세이코리아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