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이 신돈인가, '신정국가' 대한민국의 자괴감  
▲ 27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시민과 학생단체가 '비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한 친구가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원문 그대로 인용하면 이렇다.

오늘 수업 중에, “계륵(鷄肋)”을 설명하는데, “그러니까 조조의 입장에서는 군사기밀이 유출된 거잖아요? 누가 유출한 거죠?(양수라는 이름이 나오길 기대하며)” 아이들 왈, “최순실!”

최순실씨 사건으로 온나라가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럽다. 교실수업에서 이 정도는 약과다. 인터넷게시판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관련 각종 패러디가 넘쳐나는 판이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도 마찬가지다.

26일 한 시민이 붙인 것으로 추정되는 대자보 내용은 ‘-신’에 맞춘 라임하며 현상황에 대한 희화화의 수준이 어찌나 창의적인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했다. 제목을 ‘대한민국, 왕정국간 줄 알았는데 신정국가였네’라고 붙인 것인데 이미 사진뉴스로까지 보도된 모양이니 굳이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흥미로운 것은 제목에서 대한민국이 ‘신정국가’라는 조소다. 시쳇말로 ‘웃픈’ 현실이다. 최씨 관련 비리의혹이 터져나올 때마다 여권 내 정치인들 가운데는 “대한민국이 봉건왕정국가도 아니고”라며 일축하는 이도 있었다.

신정국가란 정치와 종교가 일치하는 정치체제를 가리킨다. 신으로 임명받은 대리인이 전권을 행사하는 고대나 전근대에나 가능했던 통치방식이다. 합리성과 시스템이 작동할 수 없고 당연히 민주주의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번 최순실씨 사건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역대 정권 후반기마다 반복됐던 친인척이나 핵심측근의 비리나 국정개입 수준을 넘어선다는 면에서 특이점이 있고 그 때문에 더더욱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고 있다.

최씨가 일개 민간인으로 국정농단을 부린 것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사안인데 이에 더해 그가 무속인이며 부친인 최태민씨와 함께 영생교란 사이비종교와 연결고리가 있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도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전 원내대표는 26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상식적으로 봤을 때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다, 종교적인 것이 있었던 게 아닌가 추측한다"고 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최순실 두 사람의 사교(사이비종교)에 씌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 사이에서 비슷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26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최씨를 신돈과 라스푸틴에 비유하며 현 상황을 성토하는 격앙된 목소리가 이어졌다.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은 “신돈이 공민왕 때의 고려를 망하게 한 사건, 괴승 라스푸틴이 니콜라이 2세 때의 제정 러시아를 망하게 한 사건에 버금가는 상황으로 국민의 분노가 깊다”고 지적했다.

같은당 하태경 의원도 26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최순실씨를 보면 고려를 멸망하게 한 공민왕 때 신돈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난했다.

고려말 승려로 알려진 신돈은 반원개혁정책을 추진했다 노국공주의 죽음으로 실의에 찬 공민왕에게 신임을 얻어 권력을 거머쥐었던 인물이다.

  최순실이 신돈인가, '신정국가' 대한민국의 자괴감  
▲ 최순실씨의 국기문란을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
라스푸틴은 러시아 제정말기인 니콜라이2세 당시 황태자의 혈우병을 치료해준다는 빌미로 황후의 신임을 얻으면서 막후권력을 행사했던 괴승이다.

두 사람 다 역사 속에서 권력의 몰락을 재촉했다.

그동안 최씨가 무속인이고 부친인 최태민씨가 사이비종교집단으로 일컬어지는 영생교 교주라는 얘기가 풍문이나마 공공연하게 떠돌았던 것이 사실이다.

일개 민간인으로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되지 않을 정도의 막후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빚어낸 상황이다.

최씨가 특정종교에 바탕을 둔 무속인이며 대통령의 ‘몸과 마음’을 지배했다는 사실은 이제 더이상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박근혜라는 한 개인의 고아의식을 따져보는 것도 동정론에 호소하려는 시도가 될 뿐이다. 

최씨가 라스푸틴이나 신돈에 버금간다는 비유도 일부 정황은 유사하다 해도 딱 들어맞는다고 볼 수 없다. 홍상수 감독식으로 말하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이유는 한가지다.

대한민국헌법 제1조에 따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사실 때문이다. 고려왕정이나 러시아제정과 달리 대통령의 권력은 온전히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면 다시 내놓는 것이 마땅하다. 

여야 정치권이 특검에 합의했다고 한다.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까지 연루된 측근 비리에서 어김없이 반복된 수순이다. 국가 통치체제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이번 사안이 과연 특검으로 해소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학생들까지 대통령 조롱을 마다하지 않는, 사실상 통치마비의 현 상황이 수습되기는 너무도 쉽지 않아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