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민은 대우건설 대표이사 사장이다. 대우건설 사장 가운데 최초로 대우건설 출신이 아닌 외부 출신이다. 대우건설 주가부양과 더불어 리더십 시험대를 통과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있다.
대우건설 주가 부양은 박창민이 안고있는 가장 우선적 과제다. 대우건설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2017년 10월까지 대우건설을 매각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이 주가가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매각할 경우 수조 원대의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취임 당시 낙하산 인사를 겪은 만큼 튼튼한 리더십도 요구된다. 대우건설 노조는 주주총회와 취임식이 열린 당일에도 대우건설 본사 로비에서 박창민의 사장 취임을 반대했다. 화려한 인맥과 국내 주택분야 강자라는 점에서 주목됐지만 해외경력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창민은 1952년 12월12일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울산대학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다. 중앙대학교 건설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산업개발에 입사해 37년 동안 건설업에 종사했다. 현대산업개발에만 35년 동안 근무하면서 대표이사 사장까지 지냈으며 2016년 대우건설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2012년부터 4년 동안 한국주택협회 회장직을 오랫동안 맡아와 정치권 인사들과 두루 교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주택협회는 80여 개 건설사들을 대변해 업계 의견을 정부와 정치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주택협회장은 자연스레 정관계인사들과 접촉이 잦아지고 친분을 맺을 수밖에 없다.
업계에 따르면 청와대와 새누리당 국토위원회·산자위원회 소속 다선 의원들과 친분이 있다고 한다.
인맥이 넓어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매각을 추진할 때 인수후보와 가교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해외사업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은 약점으로 지목된다.
대우건설 노조가 박창민이 큰 규모의 조직을 이끈 경험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대우건설은 6천 명이 넘는 직원이 근무하는 대규모 조직인 반면에 현대산업개발은 직원 수가 1600명 수준이라는 것이다.
현대산업개발의 사업 가운데 손꼽히는 해운대 아이파크 개발을 주도했으며 영업본부장을 지낼 당시 수원 아이파크시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현대산업개발 사장에 올랐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9년 현대산업개발에 입사했다. 대전광역시시설관리공단 월드컵경기장 현장소장, 경기 용인 수지구 죽전동 아이파크 현장소장, 덕소아이파크 현장소장, 현대산업개발 남부지사 지사장, 현대산업개발 영업본부 재개발 담당을 거쳐 2001년 이사대우로 승진했다.
2002년 상무보를 거쳐 2004년 건축본부 상무로 승진했다.
2010년 영업본부장(부사장)을 거쳐 2011년 3월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2014년 12월 현대산업개발 상임고문으로 물러났다.
2012년 3월부터 제9대 한국주택협회 회장을 지냈다.
2013년 3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제10대 한국주택협회 회장을 지냈다.
2016년 8월 대우건설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 학력
1971년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울산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중앙대학교 건설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 상훈
2015년 주택건설의 날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 상훈
2015년 주택건설의 날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어록
“대우건설은 과거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국내 1위 건설사로 우뚝 섰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저성장 시대에 대비해 우리의 1등 DNA를 되살리고 미래 지향적으로 체질을 개선해 국내 최고를 넘어 세계적인 건설사로 발돋움하겠다.”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공과 학연, 지연의 편견 없이 우수한 인재를 모을 수 있는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존경받는 임원, 선배가 되어 대우건설의 아름다운 전통이 계승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2016/08, 대우건설 대표이사 사장 취임식에서)
“평소 소통에 힘쓰고 동료들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 일을 사랑하고 많은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을 즐겨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2013/11, 임직원과 함께 한 산책 행사에서 직원으로부터 직장생활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
“지난 5년 동안 지나친 공공 위주의 부동산 정책으로 민간주택시장이 붕괴됐다. 민생경제 회복과 서민주거 안정 등을 위해 부동산 시장을 조속히 정상화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2013/03, 제10대 한국주택협회 회장으로 취임하며)
“‘아웃라이어’는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문구에 매료돼 꺼내 든 책이다. 무한경쟁시대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성공을 갈구할 것이다. 경남 마산에서 나고 자란 나 또한 어릴 때부터 ‘남보다 노력해야 성공한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어리숙했던 건축학도에서 건설역군이 됐고 파릇한 신입사원에서 한 건설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됐지만 나는 여전히 아웃라이어를 동경하고 독려한다.”
“나는 매달 사내 초빙 강좌인 ‘지식경영특강’을 통해 이 시대를 이끄는 아웃라이어를 만난다. 악전고투 속에 히말라야 16좌를 완등한 엄홍길 대장이나 치열한 글쓰기로 이가 내려앉고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였다는 김훈 작가의 이야기는 기대를 넘어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들을 통해 나 이외에도 많은 직원이 숨은 재능과 기회를 발견하길 바란다.”(2013/01, 동아일보 ‘명사의 책’ 기고문에서)
“지난 5·10 부동산 대책 이후 기대만큼 주택거래 활성화가 시장에서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히 미분양 주택에 대한 거래활성화를 위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건설의 영향은 국민경제에 예민하게 받아들여진다. 건설과 연관돼 있는 이삿짐, 인테리어 등 서비스업도 같이 살아날 수 있도록 부동산시장이 활발해졌으면 좋겠다.”(2012/05, 한국주택협회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공급해 온 주택은 사는 곳이라는 기능과 더불어 환금성을 지닌 자산으로서 인식이 컸다.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가 지속되며 아파트에 대한 인식이 이용 중심으로 다시 변화하고 있다. 시대 추세에 맞춰 주택공급 방향도 국민 요구에 집중해야 하며 이를 위해 협회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충해 나가는데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2012/03, 제9대 한국주택협회 회장으로 취임하며)
“과거의 성공이 미래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 기업의 생존은 내부의 역량으로 혁신을 이룰 때 가능하다. 전 직원이 서로의 업무이해와 협력에서 더 나아가 융합의 시대로 진화해야만 성장과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2012/01, 시무식에서)
“창사 초기 강북에서 강남으로의 이전은 강남시대로의 변화를 예견한 선택이었다. 이번 용산사옥 이전 또한 ‘비전 2016’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분위기를 쇄신함과 동시에 신용산 시대를 한발 앞서 대비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기 위한 선택이다. 국내와 해외를 모두 아우르는 용산의 상징적 입지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국내외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겠다.”(2011/11, 용산아이파크몰로 사옥 이전 계획을 밝히며)
◆ 평가
2012년부터 4년 동안 한국주택협회 회장직을 오랫동안 맡아와 정치권 인사들과 두루 교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주택협회는 80여 개 건설사들을 대변해 업계 의견을 정부와 정치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주택협회장은 자연스레 정관계인사들과 접촉이 잦아지고 친분을 맺을 수밖에 없다.
업계에 따르면 청와대와 새누리당 국토위원회·산자위원회 소속 다선 의원들과 친분이 있다고 한다.
인맥이 넓어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매각을 추진할 때 인수후보와 가교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해외사업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은 약점으로 지목된다.
대우건설 노조가 박창민이 큰 규모의 조직을 이끈 경험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대우건설은 6천 명이 넘는 직원이 근무하는 대규모 조직인 반면에 현대산업개발은 직원 수가 1600명 수준이라는 것이다.
현대산업개발의 사업 가운데 손꼽히는 해운대 아이파크 개발을 주도했으며 영업본부장을 지낼 당시 수원 아이파크시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현대산업개발 사장에 올랐다.
◆ 기타
제9대 한국주택협회 회장을 지낸 뒤 제10대 한국주택협회 회장에 만장일치로 다시 추대됐다.
2013년 3월 동아일보 ‘명사의 책’이라는 코너에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 라이어’를 추천했다.
현대산업개발 사장 시절 생일을 맞은 직원에게 직접 구입한 책을 선물하거나 출산한 직원에게 미역과 함께 친필 축하카드를 보내는 등 스킨십 경영을 펼쳤다. 당시 임직원들과 산책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