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4-05-08 15:41:47
확대축소
공유하기
▲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에서 네 번째)이 8일 국회 소통관에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압승의 기세를 몰아 정부와 여당을 향해 각종 쟁점법안 수용을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채 상병 특검법안’을 비롯해 ‘양곡관리법 개정안’,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등도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기 전에 처리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정부와 여당은 다수 의석에 총선 승리까지 더해진 민주당의 거센 움직임을 ‘입법폭주’라 규정하고 반대 논리를 펼치며 쟁점법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에 맞설 마지막 카드는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지만 총선 이후 지지율이 거듭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고민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박주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등 을지로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8일 국회 소통관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함께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21대 국회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정부여당에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은 지난 2일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에 부의된 상태다.
박주민 의원은 “지난해 전세사기특별법을 제정하면서 6개월 뒤 부족한 부분을 보완입법하기로 했지만 약속을 지키고 있지 않다”며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정안의 핵심은 전세사기 피해자인 임차인의 전세보증금 일부를 정부기관이 우선 돌려주고 정부기관은 추후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비용을 보전하는 것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이 전세사기 피해주택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사들인 뒤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선(先)구제’에 문제를 제기하며 개정안을 반대하고 있다. 특정한 사기 피해자에게만 국가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일 “다른 사기 범죄와 범죄 피해자를 어떻게 구제할지, 여러가지 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이 법안에 포함돼있다”며 “예산을 상당히 투입해야 하는 재정적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야의 입장 차가 큰 만큼 법안 수정 논의 등을 통합 개정안 합의 처리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박주민 의원은 이날 소통관에서 기자와 만나 전세사기특별법 여야 합의 가능성과 관련된 질문에 “국민의힘이 개정안의 구체적 내용 수정을 주장한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지만 지금 선구제 방식 자체가 안 된다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다만 윤 대통령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여부는 미지수다. 지난 1일 대구에 거주하는 30대 전세사기 피해자가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면서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전세사기로 사망한 피해자는 지금껏 8명에 이른다.
▲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8일 국회 정문 앞에서 대구에서 사망한 피해자를 추모하며 정부에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통과 협조와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안상미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 정문 앞에서 “지난 1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정부는 책임을 면피하고 있다”며 “더 이상 거짓 논쟁으로 피해자들을 매도하지 말고 개정안 통과를 적극 협조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당이 마지막 본회의에서 강행처리를 벼르고 있는 쟁점법안은 또 있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4월 1호 거부권을 행사했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정부가 상황에 따라 개입해 쌀을 사들여 보관하는 ‘시장격리제’ 대신 ‘목표가격제’ 도입을 뼈대로 한다. 미곡(쌀) 가격이 폭락 또는 폭등하는 경우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매입하거나 정부 관리 양곡을 판매하는 등 대책을 의무적으로 수립·시행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애초 거부권을 행사했던 양곡관리법안 핵심이었던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모두 매입한다’는 내용보다 정부 의무 매입 부분을 이번 개정안에서는 완화했다.
국민의힘은 양곡관리법과 개정안이 공급과잉을 초래할 뿐 아니라 정부의 막대한 재정이 소요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4월18일 입장문을 통해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남는 쌀을 정부가 강제적으로 매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지난해 대통령 재의요구(거부)로 본회의에서 부결, 폐기됐던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박수진 농식품부 식품정책실장은 이날 농산물 수급 안정을 위한 정책 간담회에서 "개정안은 특정 품목 쏠림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수급 불안을 야기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막대한 재정 지출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여당은 물론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도 법률 개정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만큼 양곡관리법 개정안 역시 여야 합의 처리는 어려워 보인다.
여야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건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검법안’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수사결과를 지켜본 뒤 미진하면 특검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그동안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관련자들의 통신기록 보존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특검을 통한 신속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각종 쟁점법안들을 처리하기 위해 21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를 오는 28일 열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채상병 특검법안 본회의를 통과에 항의하며 의사일정 협의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각종 쟁점법안에 관한 여야의 논의는 더욱 어려운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민주당이 본회의에서 의결하면 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임 민정수석에 임명한 김주현 전 법무차관을 소개하기 위해 브리핑실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윤 대통령이 모든 쟁점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총선 참패 이후 지지율이 계속해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리얼미터 기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4월1주차 37.3%를 기록한 뒤 4주 연속 내려가 (32.6%→32.3%→30.2%→30.3%) 30%대 초반까지 밀렸다. 이날 발표된 미디어토마토 여론조사에서도 윤 대통령 지지율은 26.7%까지 하락해 4주 연속 20%대를 기록했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오는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자유로운 질의응답을 받는 등 그동안의 ‘불통’ 이미지를 개선하려 힘쓰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쟁점 법안에 모두 거부권을 행사하면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대통령실이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채상병 특검법안에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상황에서 여론 악화를 우려해 다른 법안들을 수용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이날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는 지를 묻자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