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 참패 LH 판교 타운하우스, '건축계 노벨상' 소식에 재평가받나

▲ 2024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 <하얏트재단>

[비즈니스포스트] 일본 건축가인 야마모토 리켄이 건축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야마모토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타운하우스와 임대아파트를 직접 설계하면서 공동체를 강조하는 개방적 설계 철학을 반영했다. 주택 공급 당시에는 이러한 부분이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프리츠커상 수상으로 이어져 단지가 재평가받을 계기가 될 수 있을 지 관심을 모은다.

5일(현지시간) 미국 하얏트재단은 야마모토 리켄을 2024년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올해로 53년째를 맞은 프리츠커상은 건축 분야 가운데 가장 높은 권위를 지닌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린다.

하얏트재단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유대 관계를 구축해 경제, 정치, 인프라 및 주택 시스템 등의 다양성 속에서 조화로운 사회를 추구한다’는 점을 이번 선정 이유로 들었다.

톰 프리츠커 하얏트재단 회장은 “야마모토는 단순히 가족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공동체를 창출하는 새로운 건축학 언어를 개발했다”며 “그의 작품은 항상 사회와 연결돼 있으며 인간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분양 참패 LH 판교 타운하우스, '건축계 노벨상' 소식에 재평가받나

▲ 야마모토 리켄이 설계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월든힐스2단지' 전경. <하얏트재단>

하얏트재단은 야마모토의 작품 가운데 특별히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월든힐스2단지를 언급했다.

하얏트재단은 월든힐스2단지를 두고 “혼자 사는 거주자라도 고립돼 거주하지 않도록 보장한다”며 “공용 데크는 이웃 사이 소통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월든힐스2단지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공급한 단독주태형 타운하우스 3개 단지 중 하나다. 야마모토는 국제 현상설계 공모를 거쳐 전용면적 164㎡부터 251㎡, 모두 9동 100세대로 구성된 2단지 설계를 담당했다.

2010년 분양한 월든힐스2단지는 당시 야마모토의 파격적 설계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가장 큰 특징은 각 세대를 출입할 수 있는 현관 층인 2층에 사방으로 통유리를 배치해 투명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여기에 2층에는 각 세대가 연결된 공유 데크도 자리잡고 있다. 이 공간은 입주민들이 교류하는 장소로 활용된다.

야마모토의 설계는 당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현관 층의 사방에 유리가 배치된 점이 거부감을 줄 뿐 아니라 사생활 침해 우려도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러한 영향으로 월든힐스2단지는 초기 흥행 참패를 경험했다. 함께 공급된 1단지와 3단지는 1순위 청약에서 마감됐으나 2단지는 100세대 가운데 94세대가 2011년까지 미분양 상태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입주 뒤 주민들의 반응은 달라졌다. 월든힐스2단지 주민들은 공용 공간을 둔 설계에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주민들이 야마모토에게 이메일로 감사의 뜻을 전하자 2020년 1월 야마모토가 방한해 주민들과 기념행사를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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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모토 리켄이 설계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월든힐스2단지' 2층 공유 데크 모습. <하얏트재단>

한국에는 야마모토가 자신의 철학을 담아 설계한 건축물이 더 있다.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 위치한 임대주택 LH강남3단지가 그것이다.

이 아파트는 2010년 국토교통부가 이 부지를 특별건축구역으로 선정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한 뒤 2012년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저소득층을 위해 지은 임대주택이다. 영구임대주택 192세대와 국민임대주택 873세대 등 모두 165세대로 구성된다.

이 단지에는 현관문이 유리로 된 일명 ‘유리현관문’이 배치됐다. 야마모토는 입주민, 특히 고령자들의 교류를 위해 유리현관문을 설계했다.

유리현관문이 설치된 LH강남3단지는 입주 예정자들의 사생활 침해 우려가 더욱 컸다. 한국토지주택공사도 이런 의견을 고려해 야마모토에 설계수정을 요청했으나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입주민에게 무상으로 유리현관문 시야를 차단할 수 있는 블라인드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야마모토가 고급주택부터 임대주택까지 개방성을 부여한 것은 ‘지역사회권’이라는 개념으로 공동체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지역사회권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삶, 상부상조하는 삶의 긍정적 측면을 극대화한 다기능 주거시설을 뜻한다.

이에 따라 야마모토는 건축물에 ‘투명성’과 ‘공유성’을 투영한다.

야마모토는 유리 등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내부와 외부의 연결을 중요시한다. 내부에서는 외부 환경을 경험하고 외부에서도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또 모든 건축물에 이웃과의 교류를 활발히 할 수 있는 공유 공간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철학은 만남의 장소가 사회적 가치를 달성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야마모토가 설계한 일본 요코하마의 다세대주택(가제보) 역시 테라스와 옥상에 공유 공간을 배치해 이웃과 교류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분양 참패 LH 판교 타운하우스, '건축계 노벨상' 소식에 재평가받나

▲ 야마모토 리켄이 설계한 일본 히로시마 니시 소방서. <하얏트재단>

비주택 건축물에서도 야마모토의 철학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설계한 일본 히로시마 니시 소방서, 도쿄 훗사 시청, 요코스카 미술관, 하코다테 미래대학 등은 모두 내외부 벽의 대다수가 유리로 이루어진 점, 공유 공간이 다수 배치된 점이 특징이다.

야마모토는 1945년 태어나 니혼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했고 도쿄예술대학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제건축학회 학술위원, 나고야조형예술대학 총장 등을 역임했다.

야마모토는 일본 건축가 가운데 9번째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아직 한국에서는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야마모토는 프리츠커상 수상과 관련해 “나에게 공간을 인식한다는 것은 전체 공동체를 인식하는 것”이라며 “현재 설계 접근 방식은 개인정보 보호를 강조하고 사회적 관계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만 우리는 건축물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문화와 삶 전반에 걸쳐 조화를 이루면서도 각 개인의 자유를 존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