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일본에서 AI 반도체 생산도 추진, 핵심 생산거점 다변화 속도

▲ TSMC가 일본 제2 반도체공장에 EUV 장비를 도입해 고사양 반도체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TSMC와 소니, 덴소 합작법인 JASM 건물.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가 일본 구마모토에 건설하는 제2 파운드리 공장에서 차량용 반도체뿐 아니라 소비자용 전자제품 및 슈퍼컴퓨터(HPC)에 쓰이는 반도체도 생산한다.

그동안 대만에 집중되어 있던 EUV(극자외선) 공정 기반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라인을 일본에도 대거 구축해 핵심 생산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목표가 반영됐다.

12일 대만 경제일보 등 외신을 종합하면 TSMC는 일본 파운드리 공장 건설 과정에서 대량의 EUV 장비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네덜란드 ASML이 독점 생산하는 EUV 장비는 7나노 이하 미세공정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쓰인다.

TSMC가 비교적 오래된 구형 공정을 도입하는 구마모토 제1 공장과 달리 제2 공장에는 6나노와 7나노 기술을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안에 가동이 예정된 TSMC의 첫 번째 일본 공장은 소니와 덴소, 토요타 등 현지 주요 고객사가 투자에 참여하는 합작법인 JASM을 통해 설립된다.

자연히 일본 고객사가 필요로 하는 차량용 반도체 및 이미지센서가 주로 생산되는데 이는 주로 구형 공정을 활용하는 만큼 EUV와 같은 신기술을 적용할 필요성이 다소 낮다.

반면 TSMC는 2027년 가동을 목표로 신설하는 제2 반도체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차량을 넘어 소비자용 제품, 슈퍼컴퓨터 등으로 반도체 위탁생산 분야를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새 공장 건설을 계기로 고객사 기반을 다양화할 것이라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TSMC가 특히 슈퍼컴퓨터 관련 반도체를 언급한 것은 일본 공장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생산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 대만에 위치한 공장에서만 제조하던 제품을 일본에서도 생산해 고객사에 공급하며 구마모토 공장을 주요 생산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대만 경제연구원은 닛케이아시아를 통해 TSMC가 제2 공장에서 토요타의 자율주행 차량용 반도체를 제조해 공급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관측을 제시했다.

닛케이아시아는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원활한 정부 지원이 이뤄지고 공장 운영에 드는 비용도 비교적 적다”며 “제1 공장 투자가 순조롭게 진행되며 두 번째 공장 신설에도 탄력이 붙은 것”이라고 바라봤다.
 
TSMC 일본에서 AI 반도체 생산도 추진, 핵심 생산거점 다변화 속도

▲ TSMC가 2023년 8월 공식 링크드인 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미 애리조나주 반도체공장. < TSMC >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모두 400억 달러(약 53조 원)를 들여 2곳의 반도체공장을 건설하려 했지만 최근 첫 번째 공장 가동 시점과 두 번째 공장 투자 예정일을 모두 늦췄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금 제공 규모와 시기가 모두 불투명해진 데다 공장 건설 과정에서 인력 부족 및 현지 노동자와 사측의 반발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TSMC에 선제적으로 보조금 지급 계획을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반도체공장 투자를 유도했고 공장 운영에 필요한 도로 등 인프라 확보에도 힘을 실어 왔다.

TSMC와 일본 기업들이 구마모토에 두 곳의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는 데 들이는 비용은 200억 달러(약 26조5천억 원)에 이른다. 일본 정부에서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을 지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 등 지정학적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 생산거점 다변화를 추진하던 TSMC와 자국 반도체 제조업 활성화를 추진하던 일본 정부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대만 타이페이타임스에 따르면 장중머우 TSMC 창업주를 비롯해 류더인 회장과 웨이저자 CEO 등 TSMC 주요 경영진은 모두 2월 말 열리는 일본 반도체공장 개소식에 참석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본 반도체공장이 TSMC의 전략적 측면에서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TSMC가 일본 정부 지원에 힘입어 7나노 이하 반도체 생산량을 대폭 늘리고 원가 경쟁력도 확보한다면 이는 파운드리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인텔에 모두 부담을 키울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월스트리트저널은 TSMC의 일본 파운드리 투자 확대가 반도체 공급 과잉 리스크를 높이는 무리한 선택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바라봤다.

일본 및 글로벌 고객사 수요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단기간에 생산 능력을 크게 늘리면 공장 가동률이 낮아져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TSMC가 대만과 달리 일본에서는 대규모 파운드리 공장 운영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 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그러나 닛케이아시아는 중국과 대만의 관계 악화, 미국 연말 대선 등 변수를 고려하면 TSMC의 반도체 생산거점 다변화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중국은 대만에 반중 성향의 라이칭더 총통이 당선된 뒤 무력도발을 강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한다면 대만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이어가지 않을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