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HMM의 오너 공백기가 길어지고 있다.

해운업은 경영의 구심점인 오너의 존재감이 큰 업종이다. 경기 싸이클에 민감한 특성상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리더십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매각협상 결렬 HMM 오너 공백 장기화, 해운산업 불확실성 확대에 부담 커져

▲ HMM의 오너 공백기가 길어지고 있다.


하지만 HMM은 오너 공백이 길어지면서 미래전략 실행에 제약을 받고 있다. 올해는 해운산업의 불확실성이 늘어나면서 오너 공백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7일 증권업계의 전망을 종합하면 올해 컨테이너해운업계는 △대규모 신조선 인도 △친환경 규제의 시행 △해운동맹 재편 △양대 운하의 통행제한 사태 등이 얽혀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는 선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공급과잉에 따른 운임하락이다. 글로벌 선사들이 호황기에 발주한 신조선이 인도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운임 해운분석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올해 선복량 공급은 9.1% 늘어나는 반면 수요는 2.1% 증가하는데 그친다. 공급과잉이 선사들의 수익성을 악화하는 요인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운임하락 압력은 지정학적 위기와 기후변화로 인해 일시적으로 가라앉고 있다.

홍해 상에서는 후티 반군이 선박을 무차별 공격해 수에즈 운하의 이용이 어려워졌고 파나마의 긴 가뭄으로 파나마 운하의 항행 선박 수가 제한되고 있어서다. 

이로 인해 지난해 12월부터 높아진 운임이 유지되고 있는데 장기운송계약 화주와 운임 협상에서도 유리한 측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사태가 진정된다면 운임은 언제든지 원래 수준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동 분쟁으로 인해 컨테이너 시황 및 운임 예측모형에 따른 2024년 업황 및 HMM 실적 추정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친환경 규제는 해운선사들의 셈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국제해사기구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올해는 탄소집약도지수 제도가 시행한다. 탄소집약도지수는 개별 선박에 탄소배출 효율 등급을 매긴 뒤 낮은 등급 선박의 운항을 제한하는 규제다.

명지운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세계 선박의 탄소집약도 지수 등급 분포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첫 탄소집약도지수 등급 발표에 따라 해운시장이 크게 변화할 것이다”고 전했다. 

탄소집약도지수 시행에 따른 선복량 감소가 예상되지만 그 규모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친환경 규제를 충족시키기 위해 해운선사들이 친환경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HMM은 2022년 발표한 투자 계획에서 △저탄소·친환경 선박 신조에 3조7천억 원 △친환경 설비에 1600억 원 등 친환경 해운 투자계획을 세웠다. 현재까지 메탄올 추진선박 9척을 발주하고 지난해 3분기 GS칼텍스와 바이오 선박유 개발을 위해 실증운항을 실시하면서 이에 대응하고 있다.

HMM이 소속된 해운동맹 디얼라이언스의 입지가 줄어드는 일도 고민거리다.

독일의 해운선사 하팍로이드는 내년 2월 디얼라이언스를 탈퇴해 MSC와 새로운 해운동맹을 출범하기로 했다. 소속 해운사 중 최대 규모의 선사이자 유일한 유럽국적 선사의 이탈로 디얼라이언스의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하다.

HMM은 2020년 디얼라이언스에 가입해 해운동맹의 정식 일원이 됐는데 얼마되지 않아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해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전반적으로 업계의 불확실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HMM에는 경영의 구심점이 될 오너가 없다.

해운업은 오너의 존재가 부각되는 업종으로 해운업이 호황과 불황 주기가 뚜렷한 특성을 지녔다. 장기 불황에는 적자를 감내하다가 호황에 대비해 한발 앞서 투자를 단행하려면 장기적 안목을 지닌 오너의 리더십이 요구된다는 논리다.

조승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2023년 11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해운업종은 공공기관이 하기에는 부적합한 업종이다”며 “오너 경영 내지는 오너의 신임을 받는 전문경영인 하에서 운영하는 게 해운업의 특성이다”고 설명한 것도 이런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채권단 관리체제에 있던 HMM이 투자에 적극적이었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각 선사들의 향후 체급을 가늠할 수 있는 발주잔고에서 드러나고 있다. 
 
매각협상 결렬 HMM 오너 공백 장기화, 해운산업 불확실성 확대에 부담 커져

▲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은 잘못된 해운경기 예측에 기반해 선대 규모를 적극적으로 확장했고 이는 한진해운 파산의 원인이 됐다.


해운분석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HMM의 발주잔고는 26만5천TEU이다.

경쟁선사들이 역사적 호황기에 거둔 이익으로 HMM보다 더 많은 선박을 발주해 선복량 격차는 더욱 벌어질 예정이다.

물론 오너의 존재 자체가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 6위의 해운선사였던 한진해운은 오너경영인의 잘못된 해운경기 예측과 투자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