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최수안 엘앤에프 대표이사 부회장이 배터리 소재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기 위한 투자자금 마련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주력 사업인 배터리 양극재 업황 악화에 따른 실적 부진으로 지난해 실적이 적자로 전환한데다, 투자를 위한 가용 현금도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 최수안 엘앤에프 대표이사 부회장이 배터리 소재 다각화를 위한 투자자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그러나 경쟁사들보다 뒤처진 소재 가치사슬(밸류체인) 역량이 구조적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소재 사업 다각화를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다.
16일 엘앤에프 안팎에 따르면 양극재의 핵심 원료 금속인 리튬의 가격 폭락은 지난해 회사의 적자 전환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엘앤에프는 2023년 연결기준으로 매출 4조6천억 원, 영업손실 2241억 원을 거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2022년과 비교해 매출은 18.4% 늘었지만 영업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앞서 1~3분기 내내 분기 기준 흑자기조를 유지했지만 4분기 대규모 영업손실(2804억 원)이 앞선 3개 분기의 이익 규모를 크게 뛰어넘었다. 리튬 가격 폭락에 따른 재고자산 평가손실 2503억 원이 반영돼 영업손실 폭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전방 업황 악화도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엘앤에프 측은 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에 따라 지난해 양극재 판매량이 당초 계획보다 2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만 최수안 부회장은 큰 폭의 영업 적자를 낸 실적 부진 속에서도 배터리 소재 사업을 다각화해 지속 가능한 사업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최 부회장은 주주들에게 지난해 실적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쓴 주주서한을 통해 “리튬인산철(LFP) 양극재, 음극재, 리튬, 배터리 재활용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회사의 사업 영역을 넓혀가는 준비를 하고 있다”며 “아직 넘어야 할 고비들이 많이 남아 있고 불확실성이 높은 여러 과제들이 있지만 지속 가능한 회사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최 부회장이 배터리 소재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소재 분야의 가치사슬 역량이 뒤처져 있다는 구조적 약점을 극복해야 한다는 경영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엘앤에프와 마찬가지로 양극재 사업을 하는 에코프로비엠과 포스코퓨처엠 등의 경쟁사들은 양극재 앞 단계에 있는 원료와 중간소재 내재화에서 엘앤에프보다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에코프로비엠과 포스코퓨처엠은 각각 그룹 차원에서 원료, 중간소재 제조·조달에 많은 힘을 싣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달리 엘앤에프는 양극재 앞 단계의 원료와 중간소재 확보를 외부에 의존하는 비중이 큰 편이다. 제조원가 측면에서 경쟁사들보다 불리할 수 있는 셈이다.
실제 이런 약점은 엘앤에프의 수익성이 경쟁사보다 낮은 요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엘앤에프가 대규모 영업손실을 낸 4분기 실적을 제외한 2023년 1~3분기 누적 영업이익률은 1.5%로 같은 기간 에코프로비엠의 영업이익률 4.6%에 크게 뒤처져 있다.
이밖에 엘앤에프는 저가형 배터리에 탑재되는 리튬인산철 양극재나 음극재로도 사업을 다각화하며, 배터리 소재 가치사슬을 수평적으로도 확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같은 수평적 가치사슬 확장은 양극재에 편중된 사업구조를 보다 안정화하며 전기차 시장의 성장에 발맞춰 먹거리를 다방면으로 확보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최 부회장이 추진하는 소재 사업 다각화 대부분이 막대한 시설투자를 필요로 하는 만큼 상당한 투자자금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대구 국가산단 내 엘앤에프가 2조5500억 원을 투자해 조성하려는 2차전지 소재 산업단지 위치도. <대구시>
증권업계에서는 소재 사업 다각화뿐 아니라 기존 양극재의 증설을 위해서 5조 원가량의 자본적지출(CAPEX)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엘앤에프가 대구시에 조성하려는 2차전지 소재 산업단지에만도 2조5500억 원의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엘앤에프는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현금·현금성 자산이 약 3333억 원으로, 가용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데다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본 만큼 투자 여력이 더 축소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차입이나 증자와 같은 외부 자금조달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증권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엘앤에프가 지난해 IR(투자자 대상 홍보 활동) 조직을 정비하고 신한자산운용 출신 류승헌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영입한 것도 외부 자금 조달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최 부회장은 배터리 소재 사업 다각화를 위한 자금 조달 방안을 고심하면서 한편으로는 기존 사업의 효율화를 통한 수익성 방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업황 악화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엘앤에프 측은 리튬 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협력사와 협의해 리튬 구매량을 최소화하며 체계적 재고관리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김현태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강도 높은 재고조정이 선제적으로 진행된 만큼 양극재 구매 수요와 가동률은 점차 회복되겠지만, 리튬 가격 약세의 여파가 올해 상반기까지는 평균판매단가(ASP)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엘앤에프는 상반기까지 적자를 지속할 것”이라며 “전기차 구매 수요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들(금리, 보조금 등)이 안정화되는 하반기부터 양극재 가동률과 실적 회복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