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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길을 묻다] 낮아진 기대에 사적연금마저 깬다, 100세 시대 인프라 흔들

조혜경 기자 hkcho@businesspost.co.kr 2024-01-04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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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당신의 노후 계획은 안녕하십니까. 초고령화가 저출산과 맞물려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은 수급자 급증으로 사실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계속 늘고 있다. 부부기준 노년 월 기대 소득 평균치는 300만 원 이상이다. 공적연금이 흔들리며 개인연금시장에 대한 불안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죽을때까지 월 300만 원’을 향한 면밀한 설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신년기획으로 100세 시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노후 계획'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① 초고령화와 저출산, 준비 없으면 실버리스크 점점 더 커진다
② 국민연금만 쳐다보는 한국인, 사실상 세금 될 판
③ 다가오는 연금 고갈, 여야 정쟁에 개혁 시기는 오리무중
④ 낮아진 기대감에 사적연금마저 깬다, '100세 시대' 인프라 흔들
⑤ 청년층에 노후대비는 먼 이야기, 필요성 알지만 현실이 먼저
⑥ 치솟는 노후비용, 사적연금 준비 빠르고 많을수록 좋다
⑦ '연금탑' 이제 필수, 디폴트옵션 연금저축 ISA 최대한 활용을
⑧ [인터뷰] 김동엽 미래에셋 상무 “편안한 노후, 곳간형 자산과 우물형 자산 필요"
⑨ [인터뷰] 신영증권 이사 민주영 "퇴직연금, '꽁돈' 아닌 노후 근간" 

[노후, 길을 묻다] 낮아진 기대에 사적연금마저 깬다, 100세 시대 인프라 흔들
▲ 공적연금의 빈자리를 채워줄 것으로 기대됐던 사적연금이 온전한 노후 장치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이를 해지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사적연금이 공적연금의 빈자리를 채워 편안한 노후를 보내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낮은 가운데 사적연금의 준비가 미흡한 것은 물론 가입된 연금마저 상당수가 해지되고 있다.

2009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노인빈곤율 1위를 놓친 적이 없는 한국에서 사적연금이 제 역할을 발휘할 수 있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2023년 2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노후·은퇴 대비 노력은 지금부터 해야한다’는 설문에 동의한 비율이 베이비부머세대부터 Z세대까지 모두 70%를 넘겼다. 전체 세대의 평균을 내면 80% 수준이다.

노후준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세대와 관계없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노후, 길을 묻다] 낮아진 기대에 사적연금마저 깬다, 100세 시대 인프라 흔들
▲ 모든 세대에서 노후준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보고서 갈무리>
하지만 당장 노후준비가 필요하다는 ‘인식’과 실제 ‘행동’ 사이에는 적잖은 괴리가 있다. 

KB금융 경영연구소의 ‘KB골든라이프보고서’를 보면 52.5%는 노후를 위한 경제적 준비에 대해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연금 보유 현황에서도 실제 노후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체 가구의 91.6%는 국민·공무원·사학·군인연금 등 공적연금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사적연금인 퇴직연금(52.3%), 세액공제형 개인연금(39.7%) 세액비공제형 개인연금(23.0%)을 보유한 가구는 적었다.

사적연금 가운데 퇴직연금 보유 비율이 비교적 높은 것은 사업장에서 가입하게 되는 퇴직연금의 특성상 가입에 일부 강제성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렇다고 퇴직연금이 노후에 소득을 대체해주는 ‘연금’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2021년 기준 퇴직연금 통계에 따르면 55세 요건을 충족한 퇴직연금 계좌 가운데 연금 형식으로 수령된 비율은 4.3%에 그친다. 나머지 95.7%는 일시금으로 수령돼 연금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수준이었다.

55세까지 퇴직금 적립을 이어가지 않고 이직할 때 해지하는 경우도 66.3%로 절반이 넘는다. 이직 등으로 개인형퇴직연금(IRP)에 퇴직금을 입금 받은 사람들 가운데 2022년도에만 98만7천 명이 IRP를 해지했다. 이렇게 퇴직연금에서 누수된 금액 규모는 14조 원에 이른다.

노후준비가 당장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입된 연금마저 해지하는 모순적 현상은 사적연금이 노후생활에 기여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지 않은 영향으로 보인다.

이직 할 때마다 IRP를 해지했다는 직장인 A씨는 “연금이 있으면 좋다는 건 알지만 실질적으로 노후생활비를 마련하려면 은퇴 후에도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어차피 일을 해야 하는데 굳이 사적연금을 가지고 있어야하나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2년 기준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전년과 비교해 8.4%(45만2천 명) 증가한 585만8천 명으로 집계됐다. 65세 이상 인구 고용률은 2021년 기준 34.9%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연금을 받으며 편안하게 보내는 노후보다 ‘일하는 노후’가 점차 당연한 노후의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퇴직연금 수령 현황에서도 이런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연금으로 수령된 계좌의 평균 수령액은 1억8858만 원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시금 수령 계좌의 평균 수령액은 1615만 원으로 연금 수령계좌 적립금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연금으로 받아도 노후생활자금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일시금 수령을 선택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노후, 길을 묻다] 낮아진 기대에 사적연금마저 깬다, 100세 시대 인프라 흔들
▲ 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2023 마포구 노인 일자리 박람회'에 일자리를 구하려는 노인들이 북적이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공적연금의 실효성은 점차 낮아지고 노후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인 14.2%를 훌쩍 넘긴 가운데 노후준비 관점에서 사적연금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사적연금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가입율이 높은 퇴직연금을 중심으로 해지율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퇴직연금이 해지 수순을 밟게 되는 배경에 노후생활자금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 있는 만큼 우선 적립금이 누수되지 않도록 제도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나온다.

보험연구원에서 발간된 ‘공적연금 개혁기 사적연금의 활성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연구원들은 “퇴직연금이 은퇴 후 노후소득원으로 활용되려면 퇴직연금 적립금이 누수 없이 은퇴 시점까지 유지·운용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 중도인출이 제한돼야 한다”고 말했다.

2021년 기준 주택 관련 중도인출이 전체 중도인출 금액의 88.7%를 차지하는 만큼 주택구입이나 임차 시 퇴직연금의 일정 수준까지 추가 대출을 허용하는 등 대안을 고려할 수 있다.

55세 이전에는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IRP를 해지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을 만드는 방안도 제시했다.

연구원들은 “이직 시 퇴직연금 해지는 적립금 누수 측면에서 중도 인출보다 더 큰 문제다”며 “은퇴 연령(55세) 이전에는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IRP에 있는 퇴직연금을 해지해 인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이에 대해 재산권적 분쟁의 소지가 있으므로 이직 시 해지 금지의 원활한 정착을 위해 현행 퇴직소득세 공제율을 대폭 줄여 해지에 대한 부담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수령하면 건강보험료 산정에 반영돼 건강보험료가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이런 부분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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