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중심의 독점적 공급구조를 유지해온 한국 공공주택시장이 변곡점을 맞았다.

정부가 공공주택 사업권한을 민간에 개방해 경쟁체제를 도입하기로 했는데 외국처럼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해선 민간 참여를 얼마나 이끌어 낼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여겨진다.
 
공공주택 연간 10조 혼자 공급해온 LH, 민간 개방으로 시장 변곡점 맞나

▲ 정부가 기존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주도하던 공공주택 사업권한을 민간에 개방해 경쟁체제를 도입한다. 


12일 국토교통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 혁신방안 첫 번째로 공공주택에 민간시행 공공주택 유형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민간건설사업자가 공공주택 공급을 직접 할 수 있도록 해 공공과 민간 가운데 더 우수한 사업자가 더 많은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구조로 시장을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보도자료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자체혁신을 하지 않으면 공공주택시장은 민간 중심의 공급구조로 전환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언급했다.

한국은 주택보급률이 이미 100%를 넘어섰다. 

국가통계포털 자료를 보면 2021년 한국 전국 주택보급률은 102.2%다. 가구 수보다 주택 수가 많다. 

이 때문에 공공주택시장 역시 정부 주도의 양적 안정화가 아닌 다양한 수요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시각은 계속 있어왔다.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등 사회주택 비중이 높은 유럽 국가들은 이미 중앙정부가 아닌 비영리단체, 지방정부 등을 중심으로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 
 
사회주택은 저소득층 주거안정, 저렴한 임대료 등 공익성을 추구하는 주택으로 공공부터 비영리단체, 민간기업 등 다양한 주체가 공급한다. 여기에 공공은 이들이 저렴한 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에 무게를 두고 있다.

‘공공’이 짓는 주택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에 이름도 사회주택이다.

네덜란드는 민간단체인 주택협회가 시세보다 저렴한 사회주택의 주요 공급자다. 

네덜란드는 1980년대 중앙정부 차원에서 사회주택 입주요건과 주택협회의 재정적 독립을 위한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했고 현재는 주택협회가 독립적으로 경영되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주택이 부족하던 20세기 초에는 정부와 지자체 중심의 공공주택 건설이 진행됐지만 주택의 양적 공급이 이뤄진 뒤에는 비영리단체 등 민간 중심의 공급시장이 형성됐다.

정부는 세제 혜택과 보조금 지급 등 프로그램을 통해 민간 공급시장을 활성화했다. 이에 따라 현재는 지자체와 비영리단체가 협력해 저렴한 사회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사회주택의 절반가량은 비영리단체인 주택조합이 공급,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도 1990년대 후반부터 주택공급 규제완화, 금융지원 등을 통해 민간주도 사회주택 공급을 활성화하고 있다.

영국은 등록 공급자제도를 통해 사회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영국은 주택협회, 주택협동조합 등을 포함해 등록 사회임대사업자가 주택청, 지역사회청 등 공공의 승인을 받아 사회주택을 건설하고 운영한다. 정부는 이들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임차인에는 주거보조금을 직접 지급하는 방식으로 민간 공급시장을 키우고 있다.

또 영리조직인 기업도 사회주택사업에서는 이윤을 배당할 수 없게 해 공공성을 보장한다.

다만 이들 국가의 공공주택은 대부분 기업이 노동자들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주택을 공급하던 데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한국 공공주택시장과 차이는 존재한다.

현재 한국 공공주택시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공공주택 공급량의 72%, 지방 주택공사가 28%를 차지하는 등 공공부문이 공급을 독점하고 있다.

토지주택공사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누적으로 공공주택 26만4천 호를 공급했고 2018년부터 2022년까지는 28만4천 호를 혼자 공급했다. 토지주택공사의 공공주택사업 발주규모는 2022년 기준 9조9400억 원으로 연간 10조 원 수준이다.

정부의 공공주택 공급계획을 보면 앞으로도 공급물량 증가가 불가피해 업무가 과중돼 있는 상황이다.
 
공공주택 연간 10조 혼자 공급해온 LH, 민간 개방으로 시장 변곡점 맞나

▲ 김오진 국토교통부 1차관(오른쪽 첫번째)이 1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LH 혁신 및 건설 카르텔 혁파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공공분양, 공공임대 등 공공주택사업자에 민간을 포함해 품질을 높이고 공급물량도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주택경기가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안정적 공급이 가능한 공공주택사업이 민간 건설사들에 매력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주택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면 수익성이 떨어지는 공공주택사업 참여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시선이 나온다.

또 공공주택사업의 공익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 체계가 확실히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지원 없이는 민간 사업자 참여를 유도하기 쉽지 않고 민간 사업자가 참여하더라도 주택품질을 높이기보다 가격만 높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날 토지주택공사 혁신안에서 민간 사업자가 공공주택사업자로 지정되면 주택기금을 지원하고 미분양 매입확약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지원을 해준다고 하지만 공공주택은 민간주택과 비교해 공사비 등이 한정돼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품질개선이 가능할지는 확언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주택사업을 확대하고 싶은 중견건설사 등은 사업기회가 넓어진다는 부분은 긍정적으로 보겠지만 지원제도 등이 구체화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