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28 의장 자베르 석유 판매에 기후총회 이용 의혹, 환경단체 사퇴 촉구

▲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의장인 술탄 알 자베르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 최고경영자가 사익 추구 논란에 휘말렸다. 사진은 자베르 의장이 10월2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국제석유전시회(ADIPEC)'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올해 기후변화 피해가 급증하면서 조만간 열릴 유엔기후총회에서 실효성 있는 합의가 도출될지 여부에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기후총회 의장과 의장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총회를 이용하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적을 초월해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총회 의장이 상업적 이익을 노리면 총회 자체가 실패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 국제 비영리단체들은 의장직 박탈을 요구하고 나섰다. 

27일(현지시각) 주요 외신들은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가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와중에 여러 나라를 상대로 화석연료 사업을 확대하려고 계획한 내부문건이 폭로됐다고 보도했다. 

BBC와 탐사보도매체 기후보고센터(CCR)가 공동으로 입수한 ADNOC 내부문건에 따르면 이 회사는 30일에 열리는 본 회담에 앞서 27개국 정부와 따로 석유·천연가스(LNG) 등 화석연료 사업을 논의하는 회담을 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ADNOC은 올해 1월 COP28 의장으로 선출된 술탄 알 자베르가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맡고 있는 회사로, COP28 주최국인 아랍에미리트의 국영석유회사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 문건에는 “ADNOC는 중국 등 국가와 협력해 호주와 캐나다 등 국가에서 천연가스 채굴을 위한 활동을 논의할 의향이 있다”고 언급돼 있었다.

문건에는 또 콜롬비아 석유 시추 사업을 겨냥한 사전 협력 준비, 독일·이집트 등 13개국 정부와 화석연료 채굴 확대 논의 같은 ADNOC의 다른 사업 확장 계획도 포함됐다.

술탄 알 자베르 의장 역시 이러한 내부문건 내용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정황도 발견됐다.

가디언은 기후보고센터를 통해 공유받은 내부문건 자료에 자베르 의장이 브리핑을 받은 기록이 남아 있었다고 보도했다.

브리핑 자료에 따르면 자베르 의장은 "영국 정부의 해상 풍력 증산 계획에 협력하며 이를 위해 그들의 도움을 적극 요청하겠다"는 보고를 받았다.

자베르 의장은 국영 재생에너지기업 마스다르의 회장도 맡고 있다. 

이에 ADNOC 최고경영자가 COP28 의장을 맡는 건 부적절하다며 자베르 의장의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7일(현지시각) 가디언에 따르면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와 그린피스 등 환경 단체들은 자베르의 의장직을 박탈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카이사 코소넨 그린피스 기후전문가는 “공적 목표와 사적 이익이 충돌하는 이런 상황이 우리가 가장 두려워 했던 것”이라며 “기후회담의 주최 측은 공정성에 입각해 세계 전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근본적으로 기후위기 대처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자베르 의장을 향한 사임 요구는 선임 초기부터 나왔다.

올해 1월 취임 후 5월까지 자베르 의장은 화석연료 감축과 관련해 일체의 발언을 하지 않아 환경단체들의 비난을 샀다. 

기후행동네트워크 등 일부 환경단체들은 자베르 의장이 석유회사의 경영진 자리를 겸임하고 있어 기후목표 달성을 위한 그의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ADNOC가 올해 초부터 화석연료 생산 감축보다는 탄소포집(CCS) 기술 개발과 친환경 에너지 증산 계획만 연이어 내놓은 것도 환경단체들의 의혹에 힘을 실어줬다. 

결국 자베르 의장이 5월 열린 공개 기후담화에서 직접 “화석연료의 감축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화석연료 감축의 필요성을 언급하자 환경단체들은 비난의 강도를 낮췄다.

자베르 의장은 10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환경단체들의 의장직 사임 요구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화석연료 감축을 논의하는 자리의 고위급 위치에 화석연료 등 고배출 업종의 관계자가 없는 것이 오히려 옳지 못하다”는 반박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폭로로 자베르 의장은 더 이상 환경단체들의 의심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COP28 의장 자베르 석유 판매에 기후총회 이용 의혹, 환경단체 사퇴 촉구

▲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국영정유회사(ADNOC) 본사 정문. <아부다비 국영정유회사>

COP28 주최 측은 이러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COP28 대변인은 “입수한 내부문건은 부정확한 자료이며 COP28에서 사용될 예정도 아니었다”며 “BBC 같은 공신력 있는 외신이 이처럼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보도한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반박했다.

아랍에미리트 측의 신뢰성과 별개로 본 회담을 고작 며칠 앞둔 상황에서 주최국의 자격과 진정성이 의심받는 상황은 회담의 성공 여부를 불투명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규정하는 바에 따르면 COP 주최국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공정성'이다. 또 주최국은 '개인적 견해나 신념이 유엔기후변화협약 책임자로서 역할과 기능을 훼손하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

주최국 리더십에 악재는 또 있다. 이번 COP28에서는 2015년 파리협정 이래 처음으로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지켰는지 확인하는 ‘전 지구적 이행 점검’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전 지구적 이행 점검 결과는 비관적으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다시 말해, 인류가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을 2도 아래에서 억제하고 최소한 1.5도를 넘지 않도록 억제하자'는 파리협정의 목표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난 20일 내놓은 '2023 배출 갭 보고서'에서 "각국 정부의 정책들을 집계한 결과 현재 2030년까지 기후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는 감축량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화석연료를 생산할 것으로 분석됐다"며 "현행 기후목표로는 파리협정 목표를 지킬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밝혔다.

자베르 의장 자신도 9월 열린 '2023 아프리카 기후 정상 회의' "나는 (전 지구적 이행점검 결과를) 안 봐도 알 수 있다"며 "우리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주최국이 기후대응 강화보다는 자국의 화석연료 생산 확대를 통한 이익 극대화를 노리고 있다는 것은 기후목표를 향한 참여국들의 단합력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마누엘 비달 전 COP20 의장은 BBC와 인터뷰에서 “COP의 의장이라는 것은 지구를 위해 하나의 정책적 목표를 수립하는 세계의 리더라는 뜻”이라며 “그 어떤 COP 의장이 자신의 사적, 상업적 목표를 위해 COP를 악용한다면 그것이 곧 COP의 실패가 된다”고 강조했다.
 
COP28 의장 자베르 석유 판매에 기후총회 이용 의혹, 환경단체 사퇴 촉구

▲ 로렌스 투비아나 전 프랑스 기후 특사. <위키미디아 커먼스>

각계에서도 이번 소식에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릴 COP를 향해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파리협정의 초안 작성에 참여했던 로렌스 투비아나 전 프랑스 기후특사는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COP의장은 사적 이익보다 회담이 주요 이슈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앤 해리슨 국제앰네스티 기후고문은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알 자베르는 COP28 의장 직을 사퇴해야 한다”며 “내부문건에 따르면 그는 이미 해당 조치들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는데 COP를 이용해 자신의 사업적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시도했다”고 지적했다.

톰 리벳 카낙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 정치고문은 가디언을 통해 “COP 의장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강조하며 “COP 의장의 권위는 사적 이익과 국적을 초월해 협상을 진행한다는 것에서 오기 때문에 이것이 부정되면 그 권위가 급속도로 무너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COP28은 여러 수치와 연구를 통해 지구 온난화가 티핑포인트 즉 돌이킬 수 없는 변곡점을 향해가고 있다는 증거가 나온 후 열리는 첫 기후총회라는 점에서 실효성 있는 합의 도출 여부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은 20일 소식지를 통해 "이번 COP28에서 열리는 첫 전지구적 이행점검이 기후와 관련된 모든 기록들이 경신된 첫 해(The fisrt year with all the broken records)에 진행되는 점검인 만큼 의미가 크다"며 "우리는 이번 전 지구적 이행 점검을 통해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배워서 다음 점검 때 개선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