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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평가 3사 과점체제, 30년 만에 깨지나

이규연 기자 nuevacarta@businesspost.co.kr 2016-09-04 09: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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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가 제4 신용평가회사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신용평가회사 3사의 과점체제가 30년 만에 깨질 가능성이 생겼다.

신용평가회사들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신용등급을 ‘뒷북’으로 매긴 만큼 새로운 신용평가회사의 진입을 통해 경쟁을 촉진하고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제4 신용평가회사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기업이 주는 수수료에 의존하는 신용평가회사의 수익구조를 개편하는 등 제도개편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제4 신용평가회사 출현 가능성

4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신용평가회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제4 신용평가회사를 인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는 9월 말에 최종 결론을 내릴 것으로 전해졌다.

  신용평가 3사 과점체제, 30년 만에 깨지나  
▲ 윤인섭 한국기업평가 사장.
금융위 관계자는 “신용평가제도를 선진화하기 위한 여러 대안 가운데 하나로 제4 신용평가회사의 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4 신용평가회사가 허용된다면 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NICE신용평가가 1980년대에 설립된 지 30년 만에 새로운 신용평가회사가 등장하게 된다.

금융위는 제4 신용평가회사를 허용하는 여부를 확정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제4 신용평가회사의 진입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금융권은 파악하고 있다.

금융위가 신용평가회사로 등록한 회사에 대해 3년 동안 조건부 예비인가 기간을 거쳐 본인가를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기존 신용평가회사 3곳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신뢰도에 타격을 받은데다 이제는 과열경쟁 가능성도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형준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7월28일 ‘신용평가산업 공청회’에서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은 요건을 갖췄다면 신규 신용평가회사의 시장 진입을 제한하지 않는다”며 “한국도 신용평가회사 진입규제를 개편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2007년, 유럽연합은 2009년부터 신용평가회사에 대한 등록제를 도입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 새 신용평가회사의 진입에 대한 빗장을 풀었다.

임 위원은 “미국에서 신용평가회사로 공식 등록하려면 신용평가업무를 3년 이상 수행한 뒤 자격을 갖춘 기관투자가로부터 적정성에 대한 확인서를 받아야 한다”며 “한국도 미국과 같은 2단계 인증 과정 등을 신규 신용평가회사의 진입방식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신용평가회사 과점체제의 그늘

제4 신용평가회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NICE신용평가의 과점체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과 맞닿아 있다.

세 신용평가회사의 점유율을 살펴보면 2015년 기준으로 NICE신용평가 35.4%, 한국신용평가 32.7%, 한국기업평가 31.6%로 엇비슷한 수준이다.

  신용평가 3사 과점체제, 30년 만에 깨지나  
▲ 이재홍 한국신용평가 사장.
이 3곳은 비슷한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시장을 사실상 과점해 왔다. 이 때문에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기업의 신용등급을 뒤늦게 내리는 등 ‘감시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신용평가회사들은 올해 들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등 해운회사들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사실상 부도 수준으로 일제히 낮췄다. 해운업황이 악화돼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등에서 용선료 협상과 사채권자 집회 등을 시작한 뒤에야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는데 뒷북을 친 셈이다.

신용평가회사들은 대우조선해양의 회사채 신용등급도 지난해 12월에야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강등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영업부실이 밝혀지고 KDB산업은행에서 4조2천억 원 규모의 자금지원안을 발표한 뒤였다.

금융권 관계자는 “조선·해운업종의 업황악화 조짐이 2010년대 초부터 엿보였지만 신용평가회사들은  2014년에야 신용등급을 차츰 내렸다”며 “현대상선의 회사채 거래가 2013년부터 거의 끊겼던 점 등을 감안하면 신용평가회사의 뒤늦은 움직임이 투자자의 피해를 키웠다”고 말했다.

신용평가회사들이 이런 문제를 노출한 것은 일부 업종에 국한되지 않는다. 곡물가루 제분회사인 동아원의 경우 지난해 말에 회사채 원리금을 만기일에 지급하지 못해 실질적인 부도를 낸 뒤에야 신용평가회사에서 회사채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하향 조정했다.

신용평가회사들이 기업으로부터 재산상 이익을 얻거나 기업의 요청을 받아 등급조정을 연기하는 등 ‘도덕적 해이’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금융위나 금융감독원에 신용평가회사의 신용등급 산정에 대한 문제가 제기돼도 지금과 같은 3사체제에서는 영업정지 등의 제재를 내리기도 힘들다.

현행법에 따르면 기업의 신용등급을 매길 때 신용평가회사 2곳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한 곳이라도 영업정지가 되면 다른 2곳이 시장을 100% 독점하게 되는 셈이다.

위일복 KTB자산운용 팀장은 5월에 열린 한국금융정보학회 심포지엄에서 “추가적인 신용평가회사가 나와 시장에서 장기적인 안목을 키워야 한다”며 “신용등급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제4 신용평가회사의 도입을 원하는 목소리가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 신용평가제도도 개편돼야

4 신용평가회사가 신용평가사들의 신뢰도를 높이려면 신용평가제도의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신용평가회사가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에서 내는 수수료에 전체수익의 90%를 의존하는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3곳의 과점체제가 4곳으로 늘어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용평가 3사 과점체제, 30년 만에 깨지나  
▲ 김용환 NICE신용평가 사장.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신용평가업계의 근본적 문제는 신용평가회사와 기업의 구조적인 힘의 불균형”이라며 “신용평가회사가 수수료에 의존하는 한 신용등급을 잘 주지 않으면 다른 회사로 옮기겠다는 위협에 무력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은 신용평가회사 2곳을 선택한 뒤 수수료를 지급하고 신용등급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신용평가회사가 수수료를 주는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제대로 된 평가결과도 내놓기 힘들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용평가회사들은 2015년 11월에 KDB산업은행으로부터 대우조선해양의 신용등급을 낮추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받았는데 산업은행에게 무언의 압력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은행이 자회사 110여 곳을 거느리고 있는 대형 고객사이기 때문이다.

신용등급평가를 받는 회사들 가운데 투자등급(BBB) 이상인 기업도 2015년 기준으로 전체의 89.9%에 이른다. 신용평가회사들이 기업의 신용등급을 후하게 평가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 때문에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뿐 아니라 회사채를 사들이는 투자자들이 신용평가회사에 수수료를 지급하거나 신용평가회사에 정부나 기업의 의뢰없이 기업의 신용등급을 자체적으로 매기는 독자신용등급 방식도 함께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형준 연구위원은 “지금의 신용평가 의뢰방식은 회사채 발행기업의 영향력 때문에 신용등급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투자자 지급방식이나 무의뢰 방식을 복수로 허용하면 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상장기업 가운데 83%도 독자신용등급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도 지난해 상반기부터 독자신용등급 도입을 검토한 만큼 비교적 긍정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신용평가사의 경쟁을 촉진하고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를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수수료 지급모델의 경우 해외사례가 존재하지 않는 점을 감안해 더욱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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