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김철중 SK아이이테크놀로지 대표이사 사장이 2개 분기 연속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기조를 굳혀가고 있지만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은 사업환경을 마주하고 있다.
김 사장은 미래 성장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장기적 증설 전략을 짜는 과정에서 전방 산업의 수요 둔화를 비롯한 업황 불확실성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증설 시기와 방법을 놓고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 김철중 SK아이이테크놀로지 대표이사 사장이 증설의 시기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16일 증권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장기 공급계약을 기반으로 안정적으로 배터리 분리막 출하량을 늘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올해 2·3분기에 고객사들과 접촉면을 넓히며 수주기반을 확대했다.
계열사 내 고객사(캡티브)인 SK온과 5년의 장기공급계약을 맺었을 뿐 아니라 북미 업체로 추정되는 고객사와 7년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또 세계 9위 배터리기업인 중국 신왕다와 업무협약을 맺고 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중국 창저우 공장에서 생산하는 배터리 분리막을 공급하기로 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와 신왕디는 중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협력을 지속하기로 했다.
박진수 신영증권 연구원은 “계열사 내 고객사를 포함한 3곳의 장기공급계약을 고려하면 2024년 예상 분리막 출하량은 올해보다 47% 성장할 것”이라며 “현재 증설된 13억㎡ 물량에 대한 수주는 모두 완료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출하량 확대와 더불어 이익 증가세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올해 2분기 분기 기준 영업이익 9억 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한 데 이어 3분기에 이익 규모를 더 확대했다.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822억 원과 79억 원으로 집계됐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2021년 4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6개 분기 연속으로 영업 적자 행진을 지속했다. 하지만 분리막 수요 증가와 함께 가동률이 높아지고 출하량이 늘어 올해 2분기부터 수익성도 좋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맺은 장기공급계약건들을 기반으로 출하량이 안정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익 상승의 방향성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김철중 사장은 실적 가시화에도 불구하고 근심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미래 성장동력 강화를 위해 해외 생산거점을 구축하고 증설을 진행한다는 청사진을 마련해 놓았는데 전방 전기차·배터리 수요가 둔화하고 있는 탓에 증설 계획을 수정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한국 증평·청주, 중국 창저우에 각 1개씩의 분리막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폴란드에도 공장 1곳이 가동 중에 있고 그 외에 2·3·4공장을 통해 생산능력을 더 확대할 계획을 두고 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현재 폴란드 2공장 건설을 거의 마무리한 단계다.
3~4공장은 건설 초기 단계로 완공 목표시점은 2024년이다. 4공장 가동이 시작되면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유럽 최대 규모인 15.4억㎡의 분리막을 생산하게 된다.
문제는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분리막 수요가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전기차 수요 증가세가 둔화한 만큼 배터리와 소재 수요도 함께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박형우 SK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수요둔화가 다수의 업체, 지역으로 확대되며 일부 자동차 제조사들은 전기차 감산을 결정했다”며 “분리막 업황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바라봤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 측도 올해 3분기 실적설명회를 통해 현재까지 확보한 장기공급계약만 놓고 보면 폴란드 2~4공장을 가동하기 충분하지 않은 규모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애초 올해 말 가동을 시작하기로 했던 2공장의 가동 시점도 내년으로 미룬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 증설 일정을 일정 부분 뒤로 미룬 만큼 3·4공장과 관련한 건설 일정이나 북미 생산거점 구축과 같은 추가 증설 전략도 연기되거나 수정될 여지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일단은 증설을 무리하게 강행하기 보다는 기존 생산시설의 내실을 강화하는 데 더 공을 들이며 최적의 증설 시점을 포착하려 할 수도 있다.
▲ SK아이이테크놀로지 폴란드 공장. < SK아이이테크놀로지 >
앞서 김철중 사장은 4월 폴란드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폴란드 공장은 유럽 지역 공략을 목표로 하지만 북미 지역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며 “자동화 등 ‘스마트 팩토리’를 적극적으로 구축해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했다.
김 사장은 업황 불확실성을 고려해 북미시장에 생산거점을 구축하는 계획도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애초 올해 안에 예정돼 있던 북미 투자계획의 공개 시점도 내년 이후로 미뤘다.
북미에 생산거점을 구축하는 계획과 관련해서는 업황 불확실성뿐 아니라 정세 변화 역시 중요한 고려 대상인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 미국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만큼 전기차 전환에 우호적인 미국정부의 정책기조가 바뀔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북미 생산거점 후보 지역으로 미국과 캐나다뿐 아니라 멕시코도 검토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생산시설에 대해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지만 인건비가 높은 반면 멕시코는 저비용 노동력과 상대적으로 낮은 물가를 활용해 경제성을 갖출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북미의 정치지형 변화에 따라 각 지역의 상대적 매력도 역시 바뀔 가능성이 있는 만큼 김 사장으로서는 북미 생산거점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요소들을 다각도로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미에 생산거점을 구축하는 일은 다소 시간 여유가 있는 사안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서 규정하는 배터리 부품의 북미조달 비율이 90%로 조정되는 2028년까지만 생산시설을 갖춰 놓으면 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폴란드 공장에서 북미 시장에 대응할 분리막을 생산하고 있다.
김 사장은 시장 상황에 증설전략을 비롯한 향후 계획을 유연하게 수립함으로써 업황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수익성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권준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구속력 있는 계약(바인딩 계약) 확대와 상업 가동 시점의 전략적 대응으로 실적 가시성을 확보할 것”이라며 “폴란드 2~4공장의 가동 시점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기존 공장의 가동률을 높여 고정비 부담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2024년부터 신규 고객을 확보하며 계열사 내 고객사 비중도 점진적으로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