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는 것을 계기로 방산사업의 외연을 중동으로 확장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동 지역 안보 불안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외교적 지원도 더해지는 만큼 한화그룹의 방산역량을 적극 홍보하며 수주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중동에서 방산사업의 외연을 확대하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20일 외교가와 재계 의견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의 21~26일 4박6일 중동 순방 기간에 안보 관련 논의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중동은 애초 각종 내전과 민족·종교 갈등에 따른 군사적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해 안보에 대한 관심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군사적 대립으로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대립이 촉발한 갈등은 더욱 광범위하게 확대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미 해군 구축함 ‘카니호’는 19일(현지시각) 예멘 후티 반군이 발사한 지상 공격 순항 미사일 3기와 드론들을 요격했다. 예멘으로부터 홍해를 따라 북쪽으로 비행하고 있던 미사일과 드론 등을 미군이 잠재적 위협으로 판단한 것이다.
팻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예맨 후티 반군이 겨냥한 목표물을 확실히 말할 수는 없으나 이스라엘 내부의 표적을 향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 국방부 측 추측이 사실이라면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 갈등에 예멘의 후티 반군의 개입이 시작됐을 수도 있는 셈이다. 후티 반군이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점까지 고려하면 팔레스타인 지역의 국지적 분쟁이 중동 전역에 폭넓게 영향을 미칠 공산도 작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이란과 친밀한 레바논의 무장세력인 ‘헤즈볼라’도 이스라엘과 국지적 전투를 하고 있어 본격적으로 가세할 가능성도 나온다. 곳곳에 확전의 뇌관이 적지 않은 셈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정상 사이 회담에서도 안보 문제가 핵심 의제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양국의 안보협력 논의는 방산협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방산협력을 강화하는 추세인데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방산협력이 한층 더 강화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측은 한국의 무기 전반에 걸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 칼레드 빈 후세인 알 비야리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 정무차관은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3' 참석차 한국을 방문해 한국 무기체계를 둘러보기도 했다.
알 비야리 차관은 당시 “방산 분야에서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력 강화에 중요한 협력국”이라며 “첨단 국방과학기술 협력을 포함해 더 많은 분야로 협력을 확대해 가자”고 말했다.
한화그룹으로서는 이번 정상외교를 중동 방산시장을 공략하는 영업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나 정부기관을 상대하는 방산업 특성상 정상회교 기간 무기 수출과 관련한 실질적 진전이 이뤄지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대한민국 세일즈맨 1호’를 자처하는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도 정부 차원의 방산 세일즈를 통해 성과를 내야할 필요가 크다.
국내 정치에서 각종 악재를 맞으며 인기가 하락하고 있는 만큼 정국운영의 동력이 될 해외 성과가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20일 발표된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 여론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30%로 6개월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부정평가는 긍정평가의 두 배 이상 많은 61%로 집계됐다.
이번 정상외교에 경제사절단으로 합류하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와 군 관계자들을 접촉하며 한화그룹의 방산역량을 홍보하고 이를 실제 수주까지 연결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김 부회장은 특히 그룹 내 방산 계열사들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중심으로 통합하고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통해 육·해·공 통합역량을 갖춘 만큼 사우디아라비아 측이 필요로 하는 방산 수요에 이전보다 원활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스라엘 방산매체 ‘이스라엘디펜스’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왕립해군(RSNF)은 수중 감시와 페르시아만·홍해의 군함 대응을 위해 잠수함 도입을 결정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는 유럽, 중국 방산업체와 함께 한국의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등과 협력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화그룹이 올해 인수를 마친 한화오션은 대우조선해양 시절인 2011년 인도네시아에 잠수함 프로젝트를 따내며 한국의 첫 잠수함 수출을 이끌 정도로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3천 톤급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을 성공적으로 인도한 경험도 지닌다.
이미 한화그룹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와 30억 리얄(약 9865억 원) 규모 방산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김동관 부회장은 이번 중동 방문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국가들과 방산협력을 한 단계 격상하고 이를 굵직한 수주로 연결시키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김 부회장은 최근 폴란드를 비롯해 국내외 곳곳에서 고위 관계자들을 두루 만나며 영업활동을 손수 챙겨 왔다.
▲ 김동관 부회장이 9월5일(현지시간) 폴란드 국제방위산업전시회 한화 전시장에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한화의 첨단기술력과 폴란드 지역 맞춤형 솔루션 등을 설명하고 있다. <한화그룹>
한화그룹은 2030년 글로벌 방산 10위 권 안에 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미국 국방 전문매체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2021년 매출 기준 방산업체 순위에서 한화그룹은 매출 47억8700만 달러로 30위에 머물렀다. 1위인 록히드마틴(644억5800만 달러)은 물론 10위인 L3해리스테크놀로지스(149억2400만 달러)와도 격차가 큰 만큼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한화그룹이 글로벌 방산 톱10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해외사업 확대는 필수불가결한 일인데 중동은 목표 달성을 위해 공략해야 할 주요 시장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해외 시장에서 국내 방산업체들을 찾는 손길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은 희소식이다. 세계적으로 분쟁 소요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선진국 방산업체들만큼 기술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가격 경쟁력도 보유한 곳으로 한국 방산업체들이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국내 방산업계가 중동 지역과 동유럽 주변국으로 추가 수출을 성사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갈등과 대립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당장 전시 편제를 가동해 방산물자를 생산 가능한 국가는 한국이 사실상 유일하다”고 바라봤다. 류근영 기자